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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청년, 지역에 서다

원주투데이l승인20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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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주청년센터가 올해 4월 관내 대학생 4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졸업 후 원주에 취업하겠다는 비율이 8.4%에 불과했다. 70.8%는 수도권 취업을 희망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대학생 중 21%는 연고지가 원주였고 지역출신 대학생 중에서도 상당수가 수도권에서 취업할 곳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고령화로 인해 도시가 점점 노령화되는 추세에서 청년층이 취업 때문에 원주를 떠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지역의 불리한 여건과 환경 속에서도 지역에 남거나, 지역으로 찾아와 묵묵히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 인재들도 있다. 본지는 창간 18주년을 맞아 '청년 지역에 서다'라는 주제로 4명의 젊은 인재를 만나 인터뷰 했다.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개척하며 미래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청년, 다시 돌아올 청년들의 희망을 그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엿보기로 한다.

호저면 무장1리서 소 키우는 윤경수(37) 씨
타지 떠돌다 귀촌 어릴 적 꿈 이뤄

   
▲ 6년간 제약회사에 근무하다 사표를 내고 고향인 무장리로 돌아와 소 40두를 키우며 농사를 짓고 있는 윤경수 씨.


호저면 무장1리 넓은 논밭 가운데 우뚝 솟은 축사가 있다. 축사 옆엔 120㎡ 남짓한 단층 주택이 있고 주변은 온통 논밭이다.

축사엔 40두 남짓한 소들이 한가롭게 여물을 뜯고 있다. 많은 소들이 배가 불룩 한 것으로 보아 올 겨울에는 식구가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호저면 무장1리 윤경수(37) 이장. 무장1리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되면서 인생의 절반을 타지를 떠돌다 3년 전 돌아온 귀촌 청년이다. "좀 더 일찍 돌아오지 못한 게 안타깝다"는 윤 이장의 부모는 무장1리에서 소규모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어렸을 때 도 소가 있었지만 한 두마리 뿐이었고 소에게 여물을 먹이는 일과 들로 몰고 나가 풀을 뜯게 하는 건이 윤 이장 몫이었다. 농사를 짓겠다는 꿈은 이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윤 이장은 "두어마리가 아닌 많은 소를 키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 윤경수 이장과 아들 재용(6) 군(왼쪽), 수용(10) 군,
윤 이장의 꿈은 학교 진학과 장교 임관으로 원주를 떠나며 잠시 미뤄졌다. 춘천을 시작으로 경기도 이천을 거쳐 전남 광주까지 돌다가 지난 2005년 원주 단계동에 정착했다. 윤 이장은 "고향인 무장리에서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아내의 반대로 소를 키우는 꿈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아내 이경자(36) 씨는 원주 토박이지만 농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쉽사리 농사일에 덤벼들 수 없었다. 그 후 6년간 제약회사에 근무하면서도 윤 이장은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자 막무가내로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는 강경책을 선택했다.

2011년 무장리로 돌아와 부모님께 물려받은 작은 땅에 축사와 집을 짓고 지금은 6만여㎡의 논밭에서 40두의 소를 키우고 있다. 한결같이 성실한 윤 이장을 지켜 본 주위의 도움이 컸다. 귀촌을 반대하던 부인 이 씨도 자외선 알레르기가 있지만 일손이 부족할 때면 개의치 않고 농사일을 도왔다.

윤 이장은 "어렸을 때 무장리에 살았던 것을 기억해 준 어르신들과 선배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상황에 이를 수 있었다"며 "특히 가족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농사를 짓거나 소를 키울 순 없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또 "올해는 젊은 일꾼으로 뽑혀 농사일과 축사일, 이장일로 바쁘다"며 "이장으로서의 역할은 지역 어르신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윤 이장이 농사를 짓는 땅은 대부분 임대받은 토지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는 6천여㎡에 불과하니 90%가 임대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셈이다.

윤 이장은 임대 토지가 나오면 계속해서 농사규모를 확장할 생각이다. 사육중인 소 40두를 200두까지 늘린 뒤 식당을 운영해 자신이 키운 소를 식당에서 팔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윤 이장은 사는게 힘들 때마다 '농사나 지어볼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갖는 도시민들에게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매스컴이나 언론에서 농업인들의 결과물에 대한 미화가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고 지적한 윤 이장은 "귀촌을 희망한다면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진행하는 예비귀촌인 교육을 받고, 상담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나는 막무가내로 도전했지만 어떤 가축이나 작물을 키울지에 대한 분명한 선택과 발로 뛰는 고민이 수반된 후 철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민성 기자

학곡리에서 변화 일으킨 원용대(32) 씨
밤호박마을 이끄는 농촌리더로

   
▲ 장례식장 등에 부침개 등을 납품하는 관동식품을 설립·운영하고 있는 원용대 씨는 마을 특산품인 밤호박 판로개척을 위해 주민들과 함께 밤호박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소초면 학곡1리 치악산 밤호박 마을에는 주민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젊은 청년이 있다. 바로 원용대(32) 씨다.

춘천이 고향인 원 씨는 어머니의 고향인 학곡1리로 7살 때 이사를 왔다. 학곡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원주중학교에 입학했다. 공부보다는 운동에 관심이 많아 원주공고에 진학해 축구부 활동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다.

원 씨는 유년시절부터 남다른 생각을 많이 했다. 운동을 좋아했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어 관동대학교에 입학했다. 생전 처음 접하는 경영학을 전공으로 택했고 경영에 관한 이론을 쌓았다. 국군 정보사에 입대해 원 씨는 사업에 눈을 뜨게 된다. 군 장성의 운전병으로 있다 보니 무역, 세관 등의 정보를 접했고 자연스레 경영을 터득했다.

복학해 학업을 마친 뒤에는 프랜차이즈사업에 뛰어들었다. IMF로 인해 실직자가 늘면서 붕어빵, 어묵, 떡볶이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늘어날 때였다. 원 씨는 부침개, 전 등을 이용한 상품화를 모색했다. 관동식품을 설립하고 1년 동안 고속도로 휴게소를 찾아 영업을 했다.

하지만 초보 사업자의 생소한 상품을 거래할 사업주는 없었다. 끈질기게 설득하고 식품에 대한 품질 향상을 통해 원주의료원 장례식장 등에 식품을 공급하면서 사업은 성장했다.

사업을 하면서도 늘 지역에 관심이 많았다. 원 씨는 "시골에 살다보니 주민들이 고령이어서 마을 일을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마을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게 됐다. 주민들이 애써 가꾼 밤호박이 활로를 찾을 수 없자 농업기술센터와 강원도산업경제진흥원의 도움을 받아 학곡1리 밤호박 행사를 개최했고 대성공을 거뒀다.

주민들의 신뢰를 얻은 원 씨는 밤호박마을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안정적인 식품 제조·가공을 위한 저장고 및 선별장을 조성하고, 관련 상품을 전시·판매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농민들이 행정 정보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사업에 대한 정보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원 씨는 "작목반을 구성해 영농 법인을 결성하고 치악산 밤호박 마을이 안전행정부 마을기업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고 말했다. 오는 25일부터 3일간 밤호박 마을 페스티벌을 개최할 계획이다.

원 씨는 농촌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는 믿음을 갖고 농민들의 머리가 되어 활약하고 있다. 강원프랜차이즈협회 감사, 불교신도연합회 사무차장, 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사무국장, 교학초등학교운영위원장, 학곡자율방범대사무장, 마을기업사업단장 등 맡고 있는 직책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

젊은 층이 모두들 도시로 떠나는 마당에 시골에서 작은 변화를 꿈꾸고 이를 실현하고 있는 원 씨의 꿈은 농업 전반에 관련된 RIS사업단을 만드는 것. 농민들이 농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컨설팅 기구와 원주드림랜드를 이용한 사회적 경제 모델의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것이다.

원 씨는 지갑에 '무슨 일이나 '정성껏 하는' 습관을 몸에 붙이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천박한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이다'는 문구를 늘 간직하고 다닌다. 원 씨의 꿈은 지역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박성준 기자

(주)디엔비소프트 송석용(28) 대표
창업 2년만에 수억원 매출 올려

   
▲ 주)디엔비소프트 송석용 대표는 도내에서 첫 손 꼽히는 IT업체로 회사를 성장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라대 원주에너지기술센터 2층. 100㎡ 남짓한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대여섯 명의 프로그래머가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이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은 기업의 전사자원관리프로그램(ERP).

직원 출퇴근과 같은 인사관리부터 전 직원의 업무를 A부터 Z까지 가능케 해주는 첨단 기술이다. 회사가 설립된지는 얼마 안됐지만 8명의 직원이 수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프로그램을 해외로 수출한다.

놀라운 것은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 28세의 여성이라는 점. (주)디엔비소프트 송석용 대표는 2011년 회사를 창립해 강원도청을 비롯한 관공서와 국내 주요 대학들을 상대로 프로그램 제작·판매, 유지·관리 일을 해오고 있다.

송 대표가 소프트웨어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인하공업전문대학에 야간과정으로 컴퓨터 관련 학부과정을 수강하고 주간에 아르바이트로 프로그램회사에서 일한 것이 시작이 됐다.

인천에 본사를 둔 회사에서 자동차관련 프로그램을 강원지역 업체에 납품했고, 이를 유지관리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원주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일하는 도중 전문지식과 경력을 쌓았지만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동료들과 함께 회사를 창립하게 됐다.

송 대표는 "IT 산업이 다른 제조업과 비교해 고부가가치를 내긴 하지만 망하는 기업도 많다"며 "당시 회사가 어려워 안정적인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나만의 회사를 차려 정직하게 돈을 벌고, 정직하게 사용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른 창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송 대표도 처음에는 자금 조달 문제로 힘들어 했다. 하지만 강원도산업경제진흥원과 같은 곳에서 조언을 받고 지역에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 심지어 은행에서 창업지원 프로그램 혜택을 받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 직장에서 좋은 인연을 맺은 직장 동료들이 선뜻 회사에 합류하게 되면서 회사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송 대표는 "사무실 한 켠에 컴퓨터 한 대로 시작한 기업인데 같이 일하시던 분들이 직원으로 참여해주셔서 기술적인 문제들이 해결됐다"며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들은 삼십대 중반이면 경력이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직원들과 함께 오래도록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겠다는 공통의 비전이 성장 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섬세함, 밀어붙이는 송 대표 특유의 추진력이 빛을 발휘해 사업 첫 해 9건의 프로그램저작권을 등록했고, 이듬해에는 싱가포르 한국국제학교 인트라넷시스템 개발 수주에 성공했다.

인천 출신이지만 원주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도 틈틈이 했다. 강릉원주대를 중심으로 관내 IT기업들이 결성한 원주IT협의회에서 기업간 정보 및 기술교류에 힘썼고, 한라대에 강의를 나가 실무과정에 필요한 기술을 대학생들에게 강의했다.

송 대표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와 같이 원주지역 IT업체들도 서로간의 기술교류를 활성화 시켜 생존해 나갈 때 지역 IT산업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회사 직원들과 함께 강원도에서 제일가는 IT업체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최다니엘 기자

지엔비 메디택 권기범(34) 대표
지역이지만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 노력 

   
▲ 권기범 대표는 비전을 가지고 길을 찾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태장농공단지에 있는 지엔비 메디텍(재활 운동치료 장비 판매) 권기범 대표(34)는 외부에서 들어와 창업해 원주에서 성실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청년 벤처창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에서 학업을 마치고 재활치료와 의료기기 유통회사 경험을 가지고 창업을 위해 원주로 내려왔다.

권 대표는 "청년 취업이 지속적인 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젊은 친구들이 일을 아예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다"며 "지방이든, 수도권이든 스스로 비전을 가지고 노력하며 길을 찾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복대 작업치료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도 포천 보건소에서 재활치료사업 담당자로 처음 사회에 발을 들였다. 계약직 공무원 신분으로 환자들의 재활치료를 돕고, 필요하면 치료관련 유관기관과 환자를 연계해 주는 일이었다.

이 일을 하며 값비싼 재활치료장비에 의존하는 현실을 보면서 국산 의료장비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면서 창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우선 재활치료장비를 수입해 판매하는 회사에 취업해 2년간 경험을 쌓았다. 원주와의 인연은 그때 맺었다. 원주 의료기기업체가 생산한 제품들도 같이 유통시키게 된 것.

이미 원주는 의료기기 산업에 특화가 돼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수도권 관련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원주가 의료기기 관련 일을 하기에는 좋다는 인식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창업을 위해 원주로 내려오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다. 비전도 뚜렷했기 때문에 지방에서 일한다는 것에 대한 주변의 인식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권 대표는 "요즘 대학 졸업자들이 소위 좋은 일자리라고 말하는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취업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맹목적으로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을 하는 것은 잘못된 사회적 풍토"라고 강력히 꼬집었다.

원주에서 인재를 찾다보면 결국 급여, 복리, 생활환경 등이 그들을 지방에서 정착하게 만드는 취업 요소는 아니며, 결국은 주변의 인식, 사회적인 환경이 무조건적으로 인재들을 서울 및 수도권, 대도시로 발길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느낀다. 오히려 창업을 하려고 하는 경우 지방의 환경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권 대표는 "수도권이나 대도시는 창업관련 유관기관의 지원제도에 참여하는 것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방에서 관련기관 지원을 받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면서 "특히 창업을 하는 경우 지방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적인 측면에서 낫다"고 말한다.

메디텍 지엔비의 경우 2010년 11월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예비벤처기업인증을 받고 설립했다. 2011년 7월 예비기술 청년창업자 육성사업에 선정, 강릉원주대 녹색기술산학협력중심대학에 가족회사로 가입했으며, 2012년에는 중소기업청 R&D 창업성장과제 선정, 산업단지공단 R&D 시작품제작지원사업 선정되는 등 다양한 지원제도를 활용해 사업을 정착 시킬 수 있었다. 물론 재활치료 현장과 유통 등을 경험하면서 쌓은 '초기 창업에 실패하지 않는 노하우'도 있었다.

권 대표는 "기술 창업의 경우 대부분 연구개발 단계에서 자금줄이 끊겨 망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라며 "초기에 자금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초기 회사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경영자의 마인드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엔비 메디텍은 권 대표가 수입산 재활치료기기 유통 경험을 통해 초기 수익구조를 수입산 제품과 자체생산 제품을 병행 유통·판매하면서 자금을 유통시킬 수 있었고, 시스템도 초기 구축단계에서 ERP, CRM, 그룹웨어 시스템을 갖춰 회사 성장에 따라 시스템을 무리없이 가져갈 수 있었다.

현재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지엔비 메디텍은 내년도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스마트 폰을 활용, 이용자 중심의 편의성을 강조한 새로운 재활운동치료기를 개발 중에 있기 때문이다. 5년째가 되는 해에는 자가공장을 원주에 설립해 본격적인 자체 의료기기 생산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권 대표는 "원주에서 사업을 하면서 생산공장이 부족해 아직 인프라면에서 아쉬움을 느낀다"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식이나 환경이 아니고 어디에서든지 비전을 세우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자세"라고 말했다.

심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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