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철(행구동·78) 할머니의 하루 일과는 쓰레기 줍는 일부터 시작된다. 남편 김현래(77) 옹에게 아침밥을 차려준 뒤 운동화를 신고 행구동 원주공고까지 걷는 정 할머니 손에는 쓰레기봉투와 집게가 들려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7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면서 이제는 일과가 됐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남편과 함께 가톨릭종합사회복지관을 찾는다. 복지관에서 지역주민에게 제공하는 무료도시락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음식 만들기와 설거지 등을 담당하고, 복지관을 찾아오지 못하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도시락 배달을 한다. 남편이 차를 몰고 정 할머니는 도시락을 배달한다. 도시락 봉사만 10년째다. 정 할머니가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었다.

정 할머니는 유년시절부터 남을 돕는 일을 좋아했다. 마을에 있는 우물가를 찾아가 청소를 하고, 동네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곤 했다. 정 할머니의 어머니는 타인의 삶에 관여하는 정 할머니를 혼내곤 했지만 본인은 남을 돌보는 일이 좋았다고 한다. 결혼 후 5대 장손의 며느리이자 5남매의 어머니로 힘겹게 살아 왔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 동안 정작 본인은 가족 뒷바라지로 인해 고독하고 외로웠다. 유년시절 봉사하는 습관으로 인해 주변사람들은 정 할머니를 좋게 평가했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밖에 나가 활동하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큰 힘이 됐다.

한평생 교직에 몸담았던 남편은 성격이 온화하고 자상했다. 자식들이 모두 출가하자 정 할머니에게 찾아온 건 우울증이었다. 평생 남을 위해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오진 못했다.

지난 2003년에는 척추수술을 받아 인공뼈를 삽입하는 큰 수술도 받았다. 담당 의사는 치료와 함께 신앙생활을 권유했다. 정 할머니는 그 후 복지관을 찾아 봉사를 하게 됐다. 복지관 가족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남편는 은혜학교 회장을 역임하는 등 부부의 봉사는 눈에 띄었다.

정 할머니는 봉사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했고 도지사 금장, 은장, 봉사 왕을 수여받았으며 원주시자원봉사센터가 추천해 청와대에서 감사의 선물도 받았다. 정 할머니는 "상을 받기 위해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닌 나의 행복을 만들어가기 위해 봉사를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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