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성 호
(베스트 영어학원 원장)

푹 숙인 얼굴, 처진 어깨, 상담 내내 눈을 한 번도 맞추지 않은 채 앉아서 묵묵부답하던 그 아이가 나가며 내뱉은 말은 내게 다소 충격적이었다. “죽지 않을 정도로만 가르쳐 주시죠.”
물론 영어를 잘하고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아이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처럼 엄마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옮겨 다니는 아이들도 상당수 만나게 된다.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먼저, 우리의 아이들이 너무 지쳐 있는 듯하다. 유치부에서 고등학교까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속에서 영어는 더 이상 흥미 진진한  또 다른 언어세계, 즉 전혀 다른 문화와 의식을 가진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하게 하는 신통방통한 도구가 아니다. 단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풀어버려야 하는 골치 아픈 숙제 거리인 것이다. 종종 아이들은 마냥 신기해 한다. 정말 미국에는 학원이 없냐고….
나의 미국인 친구도 놀라워 한다. 정말 고3은 새벽 1시가 되어야 집에 돌아올 수 있느냐고….
둘째, 영어는 막연히 어렵다고 생각을 한다. 아니 종종 우리 스스로 영어를 더욱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영어를 영어식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말에 무조건 영어를 꿰다 맞춰 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온갖 화려한 수사어구로 뒤덮인 문장을 그대로 단어만 영어로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야말로 영어에 삿갓을 씌우고 두루마기를 입히려고 하는 셈이다. 이러한 표현법으로는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며 이것이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만다.
셋째, 우리 모두 영어에 대해 조급증을 갖고 있는 듯하다. 언어의 향상은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와 시간이 요구되어짐을 머리로는 이해하나 내심 단기간 내에 엄청난 효과를 기대한다.
미국에서 태어나 만2~3살부터 유치원(preschool)에 맡겨졌던 나의 두 아이들도 자신의 장난감을 빼앗는 백인 친구에게 “That’s mine”(내꺼야)이란 의사표현을 입 밖으로 꺼내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1년 365일 영어에 노출 되었던 그들에게도…. 하물며 하루에 고작 2시간 정도의 원어민과의 대화로 또는 기타 영어 학습으로 얼마나 빠른 효과를 기대하겠는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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