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산성 전투의 원충갑

합단적이 산악마 50필과 군사 400명으로 겹겹이 산성을 에워싸고 노략질하거늘 원충갑이 결사대를 조직, 적중에 들어가 크게 전과를 올리고 적이 사람을 시켜 항복을 권하거늘 이의 목을 베고 그 글을 머리에 매어 던지니 적은 또다시 포로로 잡은 여자 두명을 보내 달래거늘 이들을 역시 베어 버리고 말았다.

이때 적은 북을 치고 소리를 지르며 나와서 백계(百計:갖은 짓을 다하여)칠때 화살이 빗발치듯 하여 성이 함락되려할 때 흥원창 판관 조신이 성을 나와 함께 싸우매 원충갑이 급히 달려 동쪽 봉우리에 올라 일급(一級)을 베니 적이 점점 어지러워 지는등 10전 10승함으로써 적의 예봉을 꺾고 말았다.

적은 이로부터 사기가 떨어져 패퇴하고 말았으니 모두다 원충갑의 용맹과 지혜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원충갑이 남다른 작전과 용맹으로 승첩한 전과도 중요하거니와 그가 대세의 흐름을 예리하게 읽어내고 이에 따라 과감하고 민활하게 대응했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그는 충렬왕 편에 서서 목숨을 걸고 그 체제를 유지하고 확보하기 위하여 충성을 바쳤고 충렬왕과 충선왕의 부자간의 탈권 싸움에서는 쿠빌라이칸 즉 원나라왕의 보잘 것 없는 일개 부마(駙馬)일 뿐이었던 충렬왕이 아니라 쿠빌라이칸의 피를 직접 받고 쿠빌라이칸의 왕후의 증손녀인 보타시린 공주를 아내로 맞아 이미 몽골 세계칸국 권력 핵심에 오른 이지르부카 번왕(藩王) 편에 확고히 섰다.

그리하여 당시에 권력에서 소외된 한미한 원충갑의 가계에도 불구하고 또 그 자신도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향공진사인 백년서생(百年書生)이 그 시대의 주류인 중앙의 최고사령관 응양군(鷹揚軍)의 상호군(上護軍)이 되어 개경의 핵심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충렬왕 24년(1298) 정월 무신(戊申)에 교(敎)하기를 “합단이 난입할때에 주군(州郡)이 바람결에 맞아 항복하는데 오직 원주만이 외로운 성으로 적의 칼날을 꺾었도다. 그런 뒤에야 제성(諸城:모든 성)이 이를 본받아 적의 무리를 소탕하여 삼한(三韓)의 재안(再安:다시 편안해지다)을 이루고 선제(先帝:돌아가신 선황제)의 한노(恨怒:한스러운 노여움)를 갚았으니 그 공은 만세에 있기가 어렵도다.”

그 방호별감판서(防護別監判書)로 치사(致死:크게 세운 공)한 복규(卜奎)와 전사중낭장(戰士中郎將) 원충갑과 그 읍의 군수와 장이(長吏)로 공을 이룬 자는 비록 이미 포상(褒賞)하였으나 오히려 미흡한 바가 있으니 마땅히 탁용(擢用:발탁하여 인재를 씀)을 가하여 후인을 권려(勸勵:권하고 힘쓰다)할 것이며 그 고을의 통상적인 요역(遙役:부역)과 잡공(雜貢:세금)도 마땅히 삼년간 면제할 것이다.

무려 삼년간 세금과 부역을 면제시켰으니 그 공로가 어떠했는지 짐작이 간다. 한 역사학자는 몽골군과 싸워서 죽은 영령들을 추모하는 기념식이 장엄하고도 비장한 분위기속에서 조포와 함께 해마다 숙연하게 치러져 오고있음을 본다.

1231년 서부전선인 황해도 평주와 1253년 9월 20일 동부전선춘천의 봉의산성 도성(屠成) 그리고 1291년 1월 21일의 영원산성 일대의 결사항전이 있던 날에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사이렌을 울려 묵념을 하고 조기든 승전기념 깃발이든 게양해본 적이 있는가? 오죽하면 정사(正史)에 날짜까지 기록해 남겼을까마는 나를 나 되어 오게 한 조상의 삶을 보는 후예들의 눈은 너무나도 캄캄하게 감겨만 있다.

<687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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