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報恩)의 상원사 종(鐘)


주지스님은 이 옳지 못한 생각을 작은 부인과 의논했을때 좋다고 응하여 절반으로 종을 만들었다. 높다란 종각을 짓고 종을 매달으니 황룡사의 신종만은 못하지만 나라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염원하는 기복(祈福: 복을 비는 것)의 종으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드디어 거창한 타종식 순서가 되었다. 시주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신종이라하니 호기심도 컸고 그동안 수고한 스님 노고에 칭찬이 자자했다. 무명천으로 둘러친 포장이 벗겨지고 맨 처음의 타종은 스님이 손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웬일인가? 종소리가 나지 않았다.


모여 있던 모든 시주자들이 얼굴이 창백해지고 술렁대기 시작하였다. 불길한 징조라며 서로서로 눈짓하며 스님이 흑심을 가졌기에 그렇다고 항의가 일어날려고 할때 공중에서 은은한 부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스님에 대한 저주의 목소리였다. 그 순간 스님은 곁에 있던 작은 부인과 함께 구렁이가 되어 어느때든지 이 종이 울릴 때까지 저주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구렁이가 다시 인도환생을 하려면 우원 상원사의 종을 울려야 되기 때문에 조건을 나그네에게 제시한 것이다.


수백년을 두고 구렁이로 살아왔는데 종이 울리면 숟가락을 시주한 공양주의 후손들에게 음향보시(音響布施:소리로써 기쁘게 해주는 봉사)되어 전생 우리들(구렁이)의 억겁이 모두 풀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해원(解願)하려 했다. 죽음만을 기다리는 나그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멀리서 ‘뗑’하는 종소리가 들려 오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는 귀를 의심하고 있을때 구렁이도 눈을 번쩍거리며 목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또다시 ‘뗑’하고 두번째 종소리가 났다. 그리고 세번째는 아주 적게 그러나 분명하게 또 ‘뗑’하고 울렸다. 세번 종소리를 듣고 난 구렁이는 스르르 몸을 풀어주었다.


“약속대로 내가 너를 놓아준다. 빈절의 종이 울리다니 너는 하늘이 낸 사람일 것이요 하늘이 너 죽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하고 사라졌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나그네는 종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헌 절간을 찾아갔다. 인적이 없는 헌 절간은 먼지로 뒤덮혀 있는데 종각이 있는 곳에 가 종 밑을 살펴보니 꿩 두 마리가 죽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두 마리의 꿩이 머리가 깨어져 있었다. 생각해보니 새벽의 기적은 꿩들의 보은의 종소리였다. 한 쌍의 꿩은 자기를 살려준 은혜를 갚기 위하여 머리가 깨지도록 종을 치고 죽은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꿩의 시체를 거두어 애통한 마음으로 묻어주고 보은한 꿩의 무덤이라 했다. 이때부터 적악산(赤岳山)에 꿩 ‘치’(稚)자를 넣어 치악산(雉岳山)이라 했다.


나그네가 하루저녁 고생한 집도 사실은 집이 아니고 상원사 산식각 바로 밑에 있는 큰 바위굴이 있었는데 구렁이의 유혹으로 바위굴이 집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법당 벽에는 나그네의 몸을 구렁이가 칭칭 감고 있는 그림과 꿩이 날아드는 모습, 머리로 종을 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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