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의 발자취에 커다란 흔적을 남긴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이 토지의 향기를 맡기위해 서울로 가게 된 것은 단순한 운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선생님의 권유로 햇빛 내리쬐던 지난 6일 서울행 버스에 오른 나는 원주에선 볼 수 없었던 창밖 풍경에 감탄만 연발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서대문 형무소. 멋들어진 붉은 건물의 담장을 보고 '멋있다.'라는 말을 내뱉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그 좁은 입구를 들어가 보니 방금 생각한 것을 반성하게 만든 풍경이 펼쳐졌다. 한 평도 되지않는 작은 독방에 빛이라고는 환기구 밖에 없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싸우다가 돌아가신 열사들의 모습이 떠올라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고문 받는 열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네킹들의 입에서는 비명과 통곡이 멈추지 않는 듯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 감옥을 둘러는 동안 일본의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행동에 분노가 멈추질 않았다. 내가 들어가기에도 너무 작은 벽장이나 상자에 가두거나 손톱을 바늘로 찌르는 고문과 전기 고문에 이르기까지. 그 동안 독립의 중요성도 모르고 있던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은 곳은 사형장이였다. 수많은 열사들이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던 그 곳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독립의 중요성도 모르고 조국에 대한 충성과 사랑도 느끼질 못했던 나는 새삼 이분들이 진정 본받아야 하는 분들이구나 하고 느꼈다.

그 다음 향한 곳은 독립문. 동양과 서양의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룬 하얗고 아름다운 독립문은 도로 근처에 우뚝 서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놀란 것은 독립문은 일본에 대한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독립협회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서재필이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는 것과 그가 '서재필'이라고 당당히 서명한 적이 없다고 한 것은 그를 존경하고 있던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내가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해 정말 아무 것도 몰랐구나 하는 반성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독립문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 가슴이 미어졌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 이런 사실을 알리고 우리가 올바른 역사를 배워야한다는 생각을 품게 만들어 주었다.

점심을 먹고 도착한 곳은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경복궁. 잠시 우리지역 문화재인 지광국사현묘탑을 구경할 수 있었다. 평소 탑에 관심이 없던 나도 둥근 곡선과 사각형, 아름다운 문양들이 조화를 이룬 고귀한 모습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이 문화재는 원주에서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 진 뒤 다시 반환되고 6.25 때는 1만여 조각으로 부셔지는 등 수많은 고난을 겪은 것이라서 그런지 부분 부분 틈에서는 신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일본 말고도 다른 열강들도 가져가고 싶어 했을까.'하고 우리 문화의 자부심과 우수성도 느꼈지만 한 편으로는 약소 국가의 서러움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은 예전에 몇 번 와봐서 친숙했는데 입구인 광화문은 수리 중이어서 아쉽게 들어갈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흥례문을 넘어 그 주변의 영제교를 둘러보았다. 잔잔한 햇살이 비춰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근정문을 넘어서니 장엄한 2층 궁궐이 나타났다.

근정전은 남녀노소, 외국인과 내국인을 가리지 않고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임금의 부지런한 자세가 정치의 으뜸이라는 뜻을 담고있는 이 곳은 천정에선 용이 하늘로 올라가고 사방신과 십이지신이 근엄히 지키고 있었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은 근정전 월래에 있던 해치였다. 에전에 왔을 때는 잘 몰랐는데 이 새끼를 품고 있던 해치는 '대를 이어 지켜 나가겠다.'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왕이 집무를 보던 사정전과 교과서에서도 실려있던 수정전을 나오고 나니 호숫가에 대범히 서있는 경회루가 보였다. 국내 최대의 누각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았다.

잔잔히 고여있는 물은 근처에 있는 버드나무와 잘 어울렸고 우리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모두의 기억 속에 남을 사진을 찍었다. 발길을 돌려 찾은 강녕전은 내 방의 볓 십배인 것처럼 보였는데 왕이 생활하는 곳이었던 이 곳은 특히하게 용마루가 없었다. 선생님들로부터 왕이 있는 곳이라 하늘을 막으면 안된다는 설과 관리들이 왕의 침소를 구분하기 위해서라는 등 재미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당비의 침소인 교태전, 아름다운 자경전의 꽃담장과 굴뚝을 보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릴 배웅하는 동십자각을 돌아 코엑스로 향했다.

코엑스에서는 국제 기록문화 전시회를 관람했다. '기록으로 만나는 세계'라는 주제답게 전세계 모든 기록을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유럽, 미국을 거쳐 자랑스러운 토지의 친필 원고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인권선언문' 원본이었다.

시민혁명의 상징이자 민주주의의 첫 발걸음인 인권선언문이 내 눈 앞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눈을 떼질 못했다. 그 밖에도 서양 인쇄술에 영향을 끼친 구텐베르크 성경을 비롯해 그림형제의 책들,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실록 등 세계의 진귀한 기록물들이 많이 있었다. 옆 체험전에서는 탁본을 하거나 점자 명함을 만들고 옥새도 찍어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역사를 많이 안다고 자부했지만 생각 외로 모르는 것이 많았고 무엇보다 소설 토지에 이런 배경들이 있었구나 하는 것도 알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후에 다시한번 이 곳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좀 더 많이 공부해 이 문화재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