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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부: (15)판부면 금대2리

자연마을을 찾차서-치악산 골짜기에 자리잡은 천혜의 요새 고민교 객원기자l승인201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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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여동에서 내려다 본 금대철교.  
 

 판부면 금대2리는 2개의 마을(일룬동과 한여동)과 3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내에서 가다보면 왼쪽 언덕 위에 자리잡은 마을이 한여동이고, 오른쪽 금대터널 뒤쪽이 일룬동마을이다. 일룬동이라는 지명을 얻게 된 것은 골짜기에 있는 논이라고 해서 실(谷)+논(畓)→실논→실론→일론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 한 "임진왜란 당시 김제갑 장군이 이 골짜기에서 왜병을 크게 무찔렀는데, 계곡에 핏물이 흘렀다고 해서 흘른, 흘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영길(60) 이장의 설명이다.

금대유원지를 포함하고 있는 일룬동은 유원지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 들어온 집들이 대부분이다. 치악산국립공원 매표소까지 군데군데 민박을 겸한 음식점이 자리잡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는 원주시민 대부분이 금대계곡으로 놀러들 왔었지요. 차가 많이 없던 시절이었으니까 버스타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계곡에 발 담그고 삼겹살을 구워먹을 수가 있었거든요." 백종구(70) 씨가 전한다. "요즘에는 국립공원 규제도 강화된데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상권이 거의 죽었어요.

외지에서 소문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다 차에 먹을거리를 준비해가지고 오거든요." 장사도 잘 안되지만, 쓰레기를 잔뜩 버리고 가는 통에 일주일만 방치하면 계곡이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고.

이사 온 지 10년 됐다는 이한일(61) 부녀회장은 "금대유원지를 많이 찾지 않은 이유가 볼거리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계곡만 좋다 뿐이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시설이나 꽃밭이라든가 하는 부대시설이 하나도 없잖아요. 그리고 버스도 한 시간에 2대가 고작이예요. 시내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저녁에 술 한 잔 마시러 왔다가 30분씩이나 버스를 기다려 본 사람들은 다신 안 오거든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여름 한 철만이라도 한 시간에 4대로 늘려줬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길을 만들기 위해 작년에 매실나무를 심기는 했지만 계곡 끝까지 심으려면 턱없이 모자란단다.

일룬동이 금대계곡(일명 길아천계곡)을 위주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면, 한여동은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온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내가 15살에 시집왔거든. 일본놈들이 잡아 갈까봐 빨리 시집가라고 해서 밤에 도둑처럼 왔어. 그래도 가마는 타고 왔지. 참 가난한 시절이었다네. 지금은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 몰라. 감사해야 할 일이야." 올해로 88세 된다는 전재순 할머니는 기력도 좋고 건강하다. 매일 노인정에 나와서 고스톱도 치고 수다도 떠는 등 낭만적으로 살기 때문에 늙지 않는다며 비결을 귀뜸한다.

한여동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서 발전 가능성이 더딘 편이다. "금대2리가 한 80여 가구 되는데 일룬동하고 반반이예요. 토박이들은 거의가 한여동 사는 사람들인데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지요. 논도 별로 없고 주로 밭농사를 하는데, 그러다보니 가난할 수밖에 없죠. 시내하고 아주 가까운 지역이라 도시의 혜택을 받을 법도 한데 그렇지를 못해요. 보시다시피 도로도 좁은 언덕동네인데다가 낡은 집들도 많고…." 공광택(71) 노인회장은 말한다.

"논은 없고 밭만 있으니 어떻게 해. 아이들 가르치려면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지. 채소를 키워서 시내에 내다 팔았어. 꼭두새벽에 채소를 이고 걸어서 갔다가 걸어서 돌아오면 녹초가 돼. 그래도 쉬지 못하고 일만 하고 살아서 지금은 안 아픈 곳이 없어." 김옥림(81) 할머니는 잘 걷지도 못한다. 다행히 효심이 지극한 자식들 덕에 몸 아픈 것만 아니면 노후는 편안한 편이라고. "내가 옥림이 언니 덕에 오늘까지 잘 살고 있어요. 서울 살다가 이사 온 지 20년이 넘었는데, 지금도 새벽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요. 다 언니한테 보고 배운 덕이죠." 노경녀(73) 할머니가 김 할머니를 추켜세운다.

일룬동이 치악산 자락에 있다면, 한여동은 백운산 자락에 있다. 백운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옆에는 금대2리 할매집이 자리하고 있다. 욕쟁이 할머니로도 유명한 안언년(85) 할머니의 한 많은 사연이 서린 집이다. "청량리가 고향이야. 이 마을에 내려 온지도 벌써 32년이나 되었네 그려. 서울서 잘 살다가 이 마을로 이사 온지 두 달도 안돼서 남편이 저 세상 갔어. 5남매를 혼자서 키우려니 정말 죽을 노릇이었지. 살려니까 생전 모르던 심한 욕도 하게 되더라고. 돈 내밀면서 같이 살자는 남자들도 있었지만 애들 때문에 한 눈 한번 안 팔았어. 죽도록 일만했지. 그래서 일궈 놓은 게 바로 이집이야." 지금은 세를 주고 조그만 방에서 혼자살고 있다. 젊었을 당시 상당한 미모와 뽀얀 피부를 가진 깍쟁이 서울 아줌마로, 동네 아줌마들의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음직하다.
 
나무, 돌, 숯

치악산과 백운산을 양 옆에 끼고 있는 마을주민들에게 산은 생계수단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나무를 한 짐씩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어요. 그때만 해도 차가 거의 없었으니까 지게지고 다녔지요. 나무장사도 수입이 괜찮았지만, 나무도시락 밑바닥에 까는 종이처럼 얇은 나무가 돈은 더 됐어요. 백운산에는 좋은 나무가 참 많았거든요. 새벽이슬 먹고 산에 올라가면 큰 나무 하나를 골라잡아 아주 얇게 자르기를 밤까지 했죠. 한 지게를 만들려면 얼마나 많이 잘라야 했겠어요. 품은 들어도 그게 돈이 많이 되니까 불법인줄 알면서도 산으로 안 들어갈 수 없었지요." 박영길 이장의 회고다. 원주시내에서 가까워 시민들이 금대리 일대로 나무를 많이 하러 왔단다. 보일러가 보급되기 전의 일이다. 원주시민들 등살에 금대주민들은 백운산이나 치악산의 깊은 산속까지 나무를 하러 다녔다고 한다.

박영길 이장은 또, "좋은 나무가 많다보니 자연 숯을 구워 파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대량으로 숯 굽는 공장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산 속에 들어가서 조금씩 구워가지고 나와서 내다파는 식이었지요.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좋은 나무를 발견하면, 근처에다 구덩이를 파요. 거기다가 불을 때서 숯을 굽는 거예요. 산불위험이 많기는 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요."라고 회상한다.

"방구들 놓을 때 들어가는 돌이 백운산에는 참 많았어요. 정개돌이라고 하는데, 금대계곡 옆에 돌을 진열해 놓고 파는 사람들이 즐비했었지요. 백운산 돌 좋다는 입소문에 전국에서 사러들 왔었으니까." 원주시로 승격되기 전 원성군이었을 당시 군청의 건설과에 재직하다 정년퇴임한 백종구 씨의 회고다. 방구들에 들어가는 돌은 단단해야만 하는데 이상하게 치악산에서 나오는 돌은 마땅하지 않았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서 부역을 많이 했었어요. 산에다 나무도 심고, 하천의 제방 축대도 하고, 산도 개간했는데 그때 품값으로 밀가루 3.6kg을 배당했지요. 당시 밀가루 1포대에 21kg이었는데, 3일 일하면 1포대를 줬던 기억이 나네요."
 
또아리굴

     
 
  ▲ 사진 왼쪽 부분에 보이는 굴이 일명 또아리 굴. 시멘트 기둥은 지금은 철거돼 사라진 금대철교 교각이다.  
 

금대리의 명소인 또아리굴은 회전터널로 루프식이다. 아낙네들이 물동이를 일 때 받치던 또아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길이가 1천970m로 원형을 그려 한 바퀴 돌아서 간다. "또아리굴의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면 천연동굴이 있어요. 기찻길 때문에 개발을 못하고 있는데 옛날에는 종유석이 참 많았었죠. 70년대쯤인가 외지인들이 몰래 들어와서는 종유석 밑동을 전부 잘라서 가져가 버렸어요. 화장품 원료로 사용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어느 날 모두 사라져 버렸더라구요. 어렸을 때라 잘 몰랐지만 마을주민들도 특별히 그 동굴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관리를 못해 잃어버렸지만, 지금 있는 것을 가지고도 개발가능성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박영길 이장의 주장이다.

5대~12대 황주익 문화원장 재직시절 개발을 하려고 여러모로 노력을 많이 했으나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문화원장님 많이 따라 다녔어요. 절더러 어디 사냐고 물으시길래 금대리 산다고 했더니, 금대리 뜻이 뭐냐고 되물으시더라고요. 모른다고 했더니 금대리 살면서 그것도 모르냐고 하시면서, 금 항아리 묻혀있는 곳이라고 알려주시는 거예요." 박영길 이장은 황주익 문화원장을 따라 원주시내 곳곳을 다니면서 지역문화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6.25 동란 때 국군 및 지역민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했던 또아리굴! 그동안 소외되었지만, 지금이라도 원주시에서 적극 개발해 관광 상품화를 기대해본다.
 
영원사

   
 
  ▲ 나라를 지켜냈던 국토수호의 현장 영원산성.  
 

영원골 안에 있는 조계종 사찰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폐사되어 있다가 1964년 김병준 주지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런 까닭에 창건 당시의 유물은 거의 없다. 대웅전과 산신각 겸 삼성각에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은 팔각지붕에 평기와를 올렸는데 정면3칸, 측면2칸이다. 삼성각도 같은 모양으로 지붕은 한식 골기와를 얹었다. 영원사 정원에는 200년 된 능금나무가 단정하게 서 있다.
 
영원산성, 금대산성, 해미산성
치악산 골에 자리 잡은 일룬동은 천혜의 요새다. 올라가기는 매우 가파른데, 올라가서 보면 사람들이 많이 기거할 수 있는 넓은 평지와 풍부한 물이 있다. 산성을 쌓고 왜적을 방어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원주에서 오다보면 금대초등학교 뒤쪽으로 해미산성이 있고, 금대계곡을 따라 영원사 위쪽으로 영원산성이, 영원사 앞길로 깊이 들어가면 금대산성이 있다. 금대산성은 금대리 국립공원매표소에서 바라다 보이는 산의 해발 500~627m에 쌓은 산성으로 그 모양은 아메바와 유사하다. 터만 남아있고 성곽은 거의 사라진 상태.

영원산성은 국토수호의 현장이다. 외적을 물리친 격전의 장소이고 나라를 지켜낸 터전이다.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신라 문무왕대에 축조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원주의 중요한 방어시설로 고려시대 충렬왕 17년(1291)에는 합단이 침입해와 원충갑이 이 성에서 10여 차례나 적의 공략을 막았다고 한다. 조선 중기에 폐지된 것으로 보이나, 다시 임진왜란 때 수축되었다. 1592년 원주목사 김제갑이 왜병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1594년에 다시 수축했으나 18세기 중반 경에 폐지된 것으로 전해진다.

영원산성은 지리적으로 깊은 산 속에 위치해 있어서 적을 방어하기가 쉽다. 적이 침입해 오기 위해서는 금대리 긴 계곡을 들어와야 하는 반면, 수비하는 쪽에서는 길아치에서 가리파쪽과 반곡쪽의 관측이 용이하고 또 신림쪽과 부곡, 행구 쪽과 교통할 수 있다. 둘레는 3천749척으로 성안에 우물 하나와 샘 다섯 개가 있었다고 한다. 금대산성이나 해미산성과 서로 의지하여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 원주와 이웃마을 주민들이 이곳에 들어와서 지켰다고 한다. 현재 산성의 둘레는 4㎞에 달하며 다듬지 않은 돌덩이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모습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해미산성에는 방석 같이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방석소나무가 있다. "보호가치가 있는 나무인데 국립공원 안에 있어서 보호수 지정이 어렵나 봐요. 10년도 넘게 주민들이 풀을 깎고 나무도 가꾸고 있는데 한계가 있죠." 박영길 이장은 안타까워한다.

고민교 객원기자


고민교 객원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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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 부분에 보이는 굴이 일명 또아리 굴. 시멘트 기둥은 지금은 철거돼 사라진 금대철교 교각이다.

나라를 지켜냈던 국토수호의 현장 영원산성.

한여동에서 내려다 본 금대철교.

박영길(60)이장

공광택(71) 노인회장

이한일(61) 부녀회장

백종구(70) 씨

전재순(88) 씨

안언녕(85) 씨

김옥림(81) 씨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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