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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부: (12)소초면 평장리 섬배마을

자연마을을 찾아서 고민교 시민기자l승인2009.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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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초면 평장리 섬배마을.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쳐 평정시켰다고 해서 '평정리'로 불리다가 음운변화로 평장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번 호 자연마을 탐구는 원주 도심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구룡사 방향으로 가다 소초면사무소 앞에서 좌회전해 굴다리를 지나면서 만날 수 있는 평장리 섬배마을을 찾아갔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쳐 평정시켰다고 해서 '평정리'로 불리다가 음운변화로 평장리가 되었다.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신립장군이라는 날랜 장수가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마고선녀의 두상을 산 위에 세우고는 양쪽에 장수화상을 세워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늦은 밤까지 격전을 벌이던 왜군들이 이 화상을 진짜 장수로 오인하는 바람에 대승을 거뒀다는 것이다.

   
 
  ▲ 마을 성황당. 일제 때 신사가 있었지만 해방이 되면서 없애 버리고 다시 성황당을 세웠다  
 

평장리는 치악산복숭아로 잘 알려져 있는 마을로 400여 세대 1천여 명이 살고 있다. 섬배마을은 평장리 4반으로 45가구 정도 된다. 섬처럼 생긴 섬바우가 있어서 섬바우였다가 섬배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꽃다운 열여덟에 시집 왔는데, 그때만 해도 깡촌이었어.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됐던 때라 토담집이 대부분이었구…내가 원주시 새마을부녀회장을 하던 70년대에 새마을사업으로 18가구가 새집을 지었고 5년 전쯤에 현대식으로 지은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지. 마을을 돌아봐서 알겠지만 펜션단지 같잖아" 지중선(75) 노인회장의 말대로 농촌지역 치고는 깨끗하게 단장된 집들이 많다. 한 때 이 마을은 뽕나무 밭이 마을을 덮을 정도로 누에농사를 많이 했었고 주민들이 근면하고 성실해서 어렵게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 우물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약물탕으로 불리는 우물. 옛날에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며 지금도 무속인들이 자주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마을 뒷산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마을 뒷산을 대왕산이라 불렀어. 그런데 뒷산에서 꼴을 베어다 소를 먹이면 소가 병들거나 죽고는 했다는거야. 나무를 해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그 방에서 잔 사람은 병이 걸렸구. 때문에 당시 마을사람들은 대왕산 나무나 풀을 건드리지 않았지. 그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어. 하지만 초등학교 아이들의 단골 소풍장소였지. 산이 높지 않아서 어린아이들이 오르기에 안성맞춤이거든"

마을 뒷산은 어쨌거나 영험한 산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지만, 일제 때 이 산에 신사를 세웠었다고 한다. 마을 성황당이 있었던 곳인데 성황당을 없애 버리고 신사를 만들었는데 해방이 되면서 마을 사람들이 없애 버리고 다시 성황당을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데, 신사에 절하러 다녔어. 강제로 오라니까 간 거지. 해방이 되던 해 동네사람들이 부셔 버렸어" 이상옥(74) 옹의 얘기다. 이후 매년 정월 보름 저녁이면 마을 주민 모두가 이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일본 사람들이 이 영험한 산의 혈을 막는다면서 곳곳에 말뚝을 박았다는 말도 전해진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이 큰 화를 당하거나 재앙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우물과 관련한 얘기도 재미있다. 섬배마을에는 우물이 세 개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애들이 아프면 세 번 우물을 퍼다 먹이는 풍습이 있었어. 우물 앞에서 백배 절을 올리고 지극정성으로 물을 떠다 먹이면 아이가 낫는다고 믿었거든" 지중산 회장의 회고다. 지금은 약물탕이라고 불리는 마을 앞산 우물만 보존되어 있고, 나머지 우물은 형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약물탕은 영험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다고 한다. 심지어 눈먼 장님도 이 물을 먹고 목욕하면 눈을 뜬다는 얘기가 떠돌 정도여서 쌍가마 타고 물 마시러 오는 양반네들도 더러 있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우물 앞에는 무속인들이 가져다 놓았을 법한 술과 제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쓰레기가 생겨서 미관상 좋지는 않지만 그 사람들이 마을사람들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찾아와 관리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이상옥 옹의 말이다.

섬배마을 사람들은 어느 마을 못지않게 단합이 잘 된다. 단 한 집을 제외하면 모두 65세 이상인데다 수십년을 같이 살았기 때문에 뱃속까지 아는 처지다. "마을 공동으로 들깨와 콩을 심고, 벼 28가마니를 수확했어. 이것으로 매일 모여 밥해 먹고, 저녁만 되면 노인회관으로 모이니까 심심할 새가 없어. 실버타운이 따로 필요 없어. 너냐 나냐 할 것 없이 서로 의지하고 살거든. 그리고 매년 해외여행을 가는데 일본 네 번, 중국도 네 번, 홍콩 태국 싱가폴, 안가본데가 별로 없어. 늙어가면서 오히려 재미가 쏠쏠해" 지중산 노인회장의 마을자랑이 끝이 없다.

60여년 마을 지킨 열녀 최종석 할머니

시집와서 1년만에 남편을 여의고 60여년간 이 마을을 지켜온 할머니를 만났다. 올해 78세인 최종석(78) 할머니는 18세 동짓달에 시집와서 19세 동짓달에 남편을 여의고 여태껏 혼자 살았다고 한다. "임신을 했는지도 몰랐어. 남편이 잘못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앞이 캄캄하더라구. 배가 점점 불러오니까 애기 가진 것을 알았지. 낳고 보니 아들이라 참, 감사하면서도 마음고생 많았어. 시할머니에 시부모 모시고 남편도 없이 맏며느리로 살았으니까. 시누이도 결혼해서야 나가고, 시동생들도 그랬지. 바로 밑 시동생 내외와 18년 동안 함께 살았어. 다행히 아들이 잘 자라주었어. 횡성우체국장으로 퇴임해서 지금은 아들내외와 같이 살고 있어." 옛날 같으면 나라에서 열녀비를 하사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 경주김씨 상촌공파 사당.  
 

경주김씨 상촌공파 터 잡고 살던 마을 지금은 10가구만 남아

대대로 경주김씨가 터를 잡고 살던 마을이다. 상촌공파 16대 종손인 김성종(72) 씨가 터를 지키고 있다.  "사당 지은 지는 한 20년 넘었어. 매년 음력 10월 첫째주 일요일이면 이 동네 김서방네들은 다 제사를 지내러 오지. 동네가 들썩들썩해. 하지만 위세 당당하던 김 씨네도 이젠 옛말이 되었어. 이젠 고작 10여 가구밖에 남지 않았거든"

시제를 지낼 때는 아직도 도포입고 갓을 쓴다고 한다. 집안의 종손들이 맨 앞에 나와 함께 제사를 지내는데, 참가자 수가 갈수록 줄고 있다고. 이제 섬배마을도 경주김씨 집성촌이라는 말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그나마 남아있는 후손들도 노인들뿐이어서 대를 이어 눌러 살 젊은이가 없기 때문이다.

   
 
  ▲ 조영길(68) 서광옥(66) 부부가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솜틀공장 내부.  
 

명맥 이어가고 있는 '솜틀'

어린 시절 두툼한 목화솜 넣은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 자면 한 번도 뒤척이지 않았다. 찬바람 쌩쌩 부는 추위에도 목화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춥지 않았다.

섬배마을에는 목화이불 재료인 솜을 만드는 곳이 있다. 조영길(68) 서광옥(66) 부부가 20여 년째 운영하고 있는 솜틀공장이다. "지금이야 어디 목화재배하고 솜 트는 집이 많이 있나요. 대형 공장에서 얼마나 잘 만들어져 나오는데… 우리도 처음에는 솜만 틀었는데, 7년 전부터 300평 정도 밭에 목화도 재배하고 있어요."

"그런데 참 의외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솜이불 모를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시집갈 때 가져간 솜이불을 딸이 가져와서 얇게 틀어가는 거예요. 심지어는 목화를 집에서 조금씩 재배해서 7년 동안 모은 솜으로 이불을 해 간 젊은 여선생도 있었어요. 솜이불이 좋다는 걸 알게 된거죠." 서광옥 씨의 얘기다.

고민교 시민기자

 


고민교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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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초면 평장리 섬배마을.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쳐 평정시켰다고 해서 '평정리'로 불리다가 음운변화로 평장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성황당. 일제 때 신사가 있었지만 해방이 되면서 없애 버리고 다시 성황당을 세웠다

경주김씨 상촌공파 사당.

우물물을 마시면 병이 낫는다고 해서 약물탕으로 불리는 우물. 옛날에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으며 지금도 무속인들이 자주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조영길(68) 서광옥(66) 부부가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솜틀공장 내부.

지중선 노인회장

이상옥 씨

최종석 씨

서광옥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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