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가 큰 문제의식 없이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기부금품법)'을 위반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금품이란 환영금품, 축하금품, 찬조금품 등 명칭이 어떠하든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전이나 물품을 말한다.

기부금품법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자·출연해 설립한 법인·단체는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다. 단, 자발적인 기부금품은 기부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를 접수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 민간협력과 양승주 주무관은 "자발적 기탁이나 기증이면 기부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접수할 수 있다"며 "도서관법에는 누구든지 도서관의 설립이나 시설·운영 지원을 위해 금전 또는 재산을 도서관에 기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처럼 개별법에서 허용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발적인 기부금품이라도 이를 접수하려면 기부심사위원회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자발적 기부금품이라도 접수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다. 원주시 사정은 어떨까?

정체불명의 '용거북상'

시청 정문을 나오면 오른편에 '용거북상'이 있다. 원주시는 지난해 8월 15일 안내석을 통해 "우리 시에 화재 등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고 거북이 용이 되어 승천하듯 원주의 무궁한 발전을 염원하는 뜻으로 용거북상을 안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용거북상은 시 예산으로 제작한 게 아니다. 누가 언제 얼마를 들여 제작했고 언제 갖다 놓았는지 불분명하다. 안내석만 시 예산으로 제작한 것이다.

원주시 관계자는 "누가 제작해 갖다 놓았는지는 알지만,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자발적 기증인지도 모르고 외부에서는 누가 기증한 것인지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기부금품이다. 자발적 기탁이나 기증이라도 해도 기부심사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것이어서 기부금품법을 위반한 것이다.

'헌수·헌품, 기부금품법 위반'

원주시는 신청사 입주 전인 지난 2006년 4월 보도자료를 통해 "원주시는 신청사 조성에 소요되는 조경수를 시민이 직접 기념식수에 참여하도록 하여, 민·관이 하나 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신청사 푸른 광장 1천266㎡에 식재할 기념식수 신청을 오는 9월 30일까지 접수한다"라고 밝혔다. 원주시는 기념식수 수종과 규격도 정해 주었다. 시청 정문 앞,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3그루의 소나무 역시 이를 통해 받은 것이다.

행안부 양승주 주무관은 "자치단체가 공문이나 서신, 광고 등을 통해 기부금품을 모집하면 위법"이라고 밝혔다. 광고를 한데다 기부심사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것이다. 이 밖에도 원주시는 신청사 입주 당시 개인 또는 업체로부터 상당수의 미술품을 기증받아 현재 청사에 전시해 놓고 있는데, 이 역시 기부금품법을 위반한 것이다. 기부금품 모집 시기를 정한 곳도 아니고 기부심사위원회를 운영한 것도 아니다. 원주시 관계자는 "기부심사위원회를 거쳐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의회, 시청사 모형도 역시 법 위반

원주시의회 청사 로비에는 지난 3월 원주시 모형도가 설치됐다. 원주시 동 지역을 4만분의 1로 축소한 것으로 아파트 건설업체가 모델하우스에 설치했던 것을 시의회에 무상으로 기증한 것이다. 이전 비용만 1천만원이 소요되는 고가의 모형도. 원주시의회에는 이를 기증받고 건설업체에 감사패까지 전달했다. 하지만, 이 또한 기부심사위원회를 거치지 않은, 적법하지 않은 기증품이다.

기증된 기부금품 관리도 허술

기부금품법에는 기부금품 장부·서류의 비치, 공개의무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자발적인 기탁금품을 접수한 경우에도 시·도지사를 거쳐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통보하거나 보고하게 돼 있다. 하지만, 원주시는 관리대장조차 없다. 공무원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통해 기부금품을 받아 청사에 전시해 놓은 예도 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미술품이나 나무 등을 기증한 사람은 자신이 기증한 물품이 오랫동안 잘 관리되며 후대에도 길이 전해지는 것을 원할 텐데, 관리대장조차 없다는 것은 기증·기탁자의 뜻에 반하는 것이고 합법적인 기탁·기증행위도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부심사위원회 운영, 따뚜축제가 유일

원주시는 외부인사가 포함된 기부심사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기부금품을 심사한 것은 따뚜축제가 유일하다. 축제 때 들어오는 각종 기부금과 협찬품 등을 심사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기부금품에 대한 심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시 담당 부서 관계자는 "1년에 한 번 정도, 따뚜축제 할 때만 심사위원회를 운영해 왔다"며 "기부금품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관리하는 부서가 아니어서 각 부서에서 요청이 들어오면 심사위원회를 운영한다"고 밝혔다. 자발적이라는 것 때문에 법 규정을 경시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위법해소와 적법관리 시스템 필요

행안부 양승주 주무관은 "인사와 예산을 실질적으로 자치단체가 통제하는 출자·출연 기관이라도 자발적 기탁·기증을 위해서는 기부심사위원회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경북 경산시의회는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기부금품 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시 기부금품 전반에 대한 조사를 한 바 있다. 시가 단오제 행사를 하면서 은행과 기업으로부터 기부금과 행사 배너, 홍보 아치 등을 받은 게 기부금품법을 위반했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그림 로비라는 말이 생겨났듯이 자발성에 근거한 기부금품이라도 투명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공정하지 못한 행정이나 비리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며 "시뿐만 아니라 시가 출자·출연한 단체에 대한 기부금품 관리가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위법을 없애고 각종 기부금품을 적법하게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