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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부: (10)흥업면 승안동마을(대안1리)

자연마을을 찾아서 고민교 시민기자l승인200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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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곽도로에서 내려다 본 승안동 마을.  
 

옛날엔 돼니에 마방(馬房)이 있었다는데…

명복산 속에 포근히 안겨 있는 승안동 마을을 찾아간다. 크게 이름 있는 산도 아니요, 그렇다고 주변에 아름다운 계곡도 없다. 특별한 관광자원은 없지만 2002년 새 농어촌 건설운동 우수마을(강원도), 2004년 녹색농촌체험마을(농림부), 2007년 참 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금상마을(행자부)로 선정되었다. 잘 살아보자는 주민들의 단합된 마음과 그에 따른 실천이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녹색농촌체험관 입구에 들어서면 솟대가 먼저 반긴다. 100여 세대 주민들이 모두 하나씩 만든 것으로 주민들의 단합된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폐차를 이용해 그림책 버스도서관도 만들었다. 체험관 바로 옆 저장창고 벽면은 화려한 벽화로 장식돼 있다. 주민들이 직접 자재를 구입해 만든 지압공원도 보인다. 농촌관광마을로 키우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 한 눈에 느껴진다.

   
 
  ▲ 오랜 세월을 견디며 이 마을을 지켜온 돌담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지금은 옛날처럼 활기차 보이진 않는다.  젊었던 주민들도 세월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세월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어디 인간뿐이랴! 솟대도, 벽면의 그림도 세월 따라 없어지기도 하고 빛도 바랬다. 

승안동은 대안1리의 다른 이름이다. 도선 국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大安百川은 來落公이요 五峰四隣은 巨寶水'라 읊고 세번 돌아보았다고 해서 대안리(大安里), 삼성동(三省洞)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승안동은 돼니(되 안같이 아늑한 마을), 동돌미(동돌이 있는 마을), 새말(새로 생긴 마을)의 총칭이다. 처음에는 되 승(升)자를 썼는데,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언제부턴가 오를 승(昇)자를 쓰면서 승안이 되었다.

   
 
  ▲ 주민들이 만들어 세운 솟대가 인상적이다.  
 

동돌미에 가장 많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1998년 천수답을 수리안전답으로 경지정리하면서 너른 보뜰이 되었다. "옛날부터 마을이 편안하다고들 했는데, 6.26때 원주사람들이 우리 마을로 많이들 피난 왔었어요. 그때는 어려서 낯선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신기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이 편안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어왔던 것 같아요. 성당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도 싶구요" 권문식(71) 노인회장의 말이다.

"그때는 다들 가난했던 시절이라 나도 뒷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팔고는 했지요. 지게로 지거나, 소 등짝에 짊어지기도 하고, 길이 뭐 제대로 있었어야지… 사람 겨우 다닐만한 소로가 전부여서 나무 팔아 소금 사서 짊어지고 오고…"

명봉산 고개를 넘으면 문막이다. 옛날 문막장은 원주장보다도 컸다고 한다. 구경거리가 별로 없었던 시절, 시장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장 큰 즐거움을 주는 곳이었다. "옛날에  동네 어른들한테 들은 얘긴데, 돼니는 아주 큰 주막거리였다고 해요. 돼니고개를 넘으면 바로 문막이니까 원주, 영월, 제천사람들이 이곳에서 쉬어갔대요. 주막집이 일곱이나 있었구요. 마방도 있었다네요."

지금의 버스정류장 주변이 문막을 통해 한양으로 오르내리면서 봇짐 풀고 쉬어가던 주막거리란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중간 마을쯤으로 생각하면 맞을 거예요. 그냥 고개를 넘자니 밤이 깊어지겠고… 에라 여기서 쉬어가자, 뭐 그 지점이 돼니였던 것 같아요. 7월 7일이면 씨름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니 지금보다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던 것 같아요." 문막 동화골로 다니던 옛길은 임도로 사용되고 있다.

마을 앞으로 원주시 외곽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내가 16살에 시집올 때만 해도 길이 좁았지. 토끼길이라고 할 밖에. 하지만 외길은 아니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는 길이 여럿 있었어요. 다른 마을도 그렇듯이 새마을운동하면서 길을 넓혔지요. 지금은 얼마나 교통이 좋은지…" 비닐하우스에서 고추를 다듬는 최봉순(86) 할머니의 말이다. 최 할머니는 70년 째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뒤를 이어 큰아들 내외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함께 살고 있다고 하니 이 마을의 산증인인 셈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면 돌담 쌓은 집들이 많다. 6.25의 화마에도 형태를 유지하며 남아있는 오래된 집들이다. 그 중에는 지은지 100년이 넘는 집도 있다고 한다. 한 마을에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세월의 간격을 마을 군데군데 남아있는 돌담들이 메워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일손이 한가한 날이면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인다. 나눠먹을 음식을 싸오기도 하고, 직접 해 먹기도 한다. 주민들간 유대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마을 좋기로 소문이 나면서 외지에서 이사 오는 사람들도 늘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이 마을주민들과 쉽게 융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체험 우수마을로 알려지면서 마을 방문객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다보니 아예 여기서 살려고 들어온 사람들도 꽤 있는데, 생각보다 주민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더라구요. 아시다시피 우리 마을은 체험행사가 많아서 주민들 손이 많이 필요하고 대부분 공동참여로 해결하고 있는데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은 참석을 잘 안합니다. 대부분 직장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마을에 들어와 살면 기존 주민들과 어우러져 살아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 돼 안타깝습니다." 권 노인회장의 말이다.

승안동마을은 오리농법으로 유명하다. 매년 6월 6일에 열리는 '오리방사 축제'와 조엄밤고구마 캐기, 밤 따기 체험 등으로 마을은 항상 분주하다. 

   
 
  ▲ 풍수원성당 다음으로 오래된 대안리 공소.  
 

 100년 세월 묻어있는 대안리 공소

1900년대 초에 성당건물 건립
지금도 40여가구가 천주교인

타임머신 타고 100년 전으로 가면 이런 모습의 집들을 많이 볼 수 있을까? 승안동마을에는 풍수원성당 다음으로 오래된 성당인 대안리 공소가 있다. 1892년에 설립됐으며 성당건물은 1900∼1906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곳 역시 박해를 피해 들어온 천주교인들에 의해 건립됐다. "대를 이어 이곳에 살고 있는 천주교 신자들이 꽤 있지요. 주민 110여 가구 중 40여 가구 정도가 천주교인들입니다." 신영규 이장의 말이다.

"권씨네가 9대를 내려오고 있고, 안씨네가 6,7대쯤 될 것이고, 노씨네가 5,6대를 내려오고 있을 겁니다. '장작불에 쌀밥 먹는 곳'이 우리 마을이다 보니 한 번 들어오면 웬만해서는 나가지 않지요." 권문식 노인회장이 거들었다.

올해 82세인 김대흠 옹이 대안리 공소와 관련한 얘기를 기억해 냈다. "나는 이곳에서 5대째 살고 있지요. 성당을 지을 당시 얘기를 어른들한테 들었었는데…성당을 지으려고 하니까 교우들이 별로 없어서 일손이 딸리고, 또 재목도 돈도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함께 참여하는 등 모든 마을주민들이 함께 나서 이 공소를 지었다고 해요. 소초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저 아래 너른 공터에다 내려다 놓으면, 이곳까지는 등짐 져서 날랐다고 해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겠지요." 대안리 공소는 마을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물이 말랐지만 작은 냇가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이니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기와를 얹었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초가집이었어요. 매년 이엉을 새로 얹어야 하니까 몹시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학순 주교님께 호소를 했지요. 그랬더니 기와를 주시더라구요. 하지만 찻길이 있나, 도구가 있나, 교우들이 모두 등짐으로 기와를 져 날랐지요. 대안리 공소는 교우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대안리 공소는 6·25전쟁 때는 인민군 막사로, 전쟁 후에는 미군 구호물자 배급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1986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한 것으로  2004년 12월 등록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됐다. 1900년대 목조 구조식 한옥성당으로는 원주에서 유일한 곳이다.

   
 
  ▲ 2006년에 제작한 길이 4m짜리 짚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4m짜리 집신 보유

2006년 주민 김대흠 옹 제작

조선후기까지 민초들이 신었던 신발 짚신이 승안동마을에서 거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2006년 이 마을 김대흠 옹(81)이 만든 것으로 길이 4m에 폭 1.5m로 초대형이다. 국내에서 만들어진 짚신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이 짚신은 김 옹이 하루 8시간씩 15일 동안 작업해 완성했다고 한다.  짚신이 완성될 당시 마을잔치를 여는 등 떠들석 했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창고에 방치돼 있다.

고민교 시민기자


고민교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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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곽도로에서 내려다 본 승안동 마을.

오랜 세월을 견디며 이 마을을 지켜온 돌담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주민들이 만들어 세운 솟대가 인상적이다.

풍수원성당 다음으로 오래된 대안리 공소.

2006년에 제작한 길이 4m짜리 짚신.

권문식 노인회장(71)

김대흠 씨(82)

최봉순 씨(86)

신영규 이장(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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