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일 박경리문학공원 내 옛집을 찾은 외국인 작가들.

   박경리 선생 작품과 삶에 깊은 관심
 "영문 안내문과 영상물 없어 아쉬워"

　한국이 낳은 대문호 고 박경리 선생은 숨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 후배작가들의 뒷바라지에 매달렸다. 사재를 털어 흥업면 매지리에 토지문화관을 건립하고 창작실을 지어 편하게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입주한 작가들이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작가들을 먹이기위해 새벽마다 텃밭에서 키운 유기농 채소와 손수 채취한 나물로 반찬을 만들어 놓곤 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도 문화관 간사를 불러 작가들의 먹을거리를 걱정했다는 일화는 당시 선생을 문안했던 문인들의 입을 통해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선생이 가신 지금은 외동딸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최근 토지문화관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 부군 김지하 시인과 아예 원주로 이사를 했다. 토지문화관에는 매년 작가 수십여명이 3~4개월씩 머물며 글을 쓰거나 작품을 구상한다. 이곳에 입주하기 위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기다린 사람들이다. 대부분 국내 작가들이지만 일부 외국인 작가도 있다.

　선생은 생전 "외국인 작가들에게 집필공간을 제공하면 그들의 작품을 통해 자연스럽게 원주와 한국을 세계에 알릴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원주시도 선생의 이런 의지를 높이 사 지난 2007년부터 해외작가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토지문화관에 머물고 있는 외국인 작가는 러시아 교포인 박 미카일 씨와 스위스 교포인 후남 슬리만 씨를 포함해 프랑스인 호살린과 싱가폴인 수첸, 인도인 수산 등 모두 5명. 이중 수첸과 수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호살린은 원주시의 지원을 받아 토지문화관에 입주했다.

　지난달 29일 이들에게 뜻 깊은 시간이 주어졌다. 토지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배려로 원주 곳곳의 문화를 탐방하는 시간이 마련된 것. 법천사지와 남한강 산책로를 걷고 오크밸리 조각공원을 관람한 후 치악산 구룡사와 인근에 있는 한지공예관, 옻칠기박물관에도 들렀다. 하지만 이날 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머문 곳은 역시 선생의 옛집이 보존된 박경리문학공원이었다.

　최석홍 해설사의 안내로 선생의 집필실과 공원 전시실 등을 관람한 이들은 선생의 문학과 삶에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선생이 일군 텃밭과 직접 지은 옷가지를 보고 감탄을 감추지 못했고 전시된 작품과 원고를 보고나선 "영문판이나 불어판 '토지'를 구입할 수 없겠느냐"며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따끔한 지적도 잊지 않았다. 스위스 교포작가 후남 슬리먼(Hoo-Nam Seelmann) 씨는 "박경리 선생은 외국에서 활동하는 교포작가 뿐 아니라 현지 작가들에게도 큰 존경을 받는 분"이라며 "앞으로 외국인들의 방문이 늘어날텐데 전시실에 영문 안내문과 영상물 정도는 갖춰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경리 선생의 '시장과 전장' 불어판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는 호살린(56·Roselyne Sibille) 씨는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비치해 두고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프랑스 내에서도 꽤 인지도 높은 시인이자 두 곳의 대학에서 문예창작과 시를 강의하고 있는 그녀는 "지인(화가 방혜자 씨)의 권유도 있었지만 박경리 선생의 문학과 삶에 깊은 인상을 받아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면서 원주의 첫 느낌에 대해서는 "깨끗하고 현대적인 도시지만 조금만 교외로 나오면 자연을 접할 수 있고, 전통과 현대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호살린 씨는 "보름전부터 원주와 박경리 선생, 토지문화관에 관련된 작품을 쓰고 있다"며 "작품이 완성되면 친구인 방혜자 씨의 그림을 담아 시화전을 열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부 곽길상 코디네이터는 "외국인 작가들이 원주에 머물면서 선생의 문학과 시민들의 활기찬 일상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면서 "이들이 받은 긍정적인 느낌은 이들의 입과 작품을 통해 더 널리 알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