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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부: (4)신림면 송계리 삼송·도룡마을

자연마을을 찾아서 고민교 시민기자l승인20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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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정보화마을 지정되며 180도 변신
유리온실서 재배한 파프리카·토마토 인기 

   
 
  ▲ 송계리 삼송마을 전경.  
 

 황둔찐빵으로 더 유명한 송계리는 언론에 자주 노출되었던 동네라 낯설지 않다. 도로 양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찐빵가게들과 슈퍼를 보노라면 도시의 번화가 한쪽을 뚝 떼어다 놓은 것 같다. "황둔리와 송계리가 같이 속해 있는 곳 이예요. 송계리 주민들이 70~80%쯤 되고 황둔리 주민은 20% 조금 넘을 거예요. 옛날부터 이 지역을 황둔이라고 뭉뚱그려 불렀기 때문에 황둔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은 송계리 주민들이 훨씬 많이 살고 있죠." 송계1리 박종진(58) 이장은 말한다.

송계리는 치악산 자락 해발 650m 솔치고개와 싸리재 사이에 위치한 준 고랭지대다. 서마니강이 있고 자연경관이 뛰어나 여름이면 관광객들로 발디딜틈 없다. 주변에 아름다운 펜션이 많이 생겨 숙박하기에도 좋다. 1973년 정도까지만 해도 1개리에 80~100여 가구가 살았는데, 지금은 60여 가구정도가 산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계야, 도룡, 삼거리, 삼송, 유치, 호봉산, 후

   
 
     
 

동을 병합하여 송계리라 했다. 삼송과 계야의 이름을 한자씩 따서 송계리다. 삼송마을은 옛날부터 소나무가 많은 곳이었다고 한다. 계야마을은 송계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옛날에 기와를 구웠다고 해서 '기와'의 방언인 '개와'가 '개야'로 발음되고 한자로 정착되면서 계야가 되었다고.

또 마을에 계수나무가 아주 많아 계야라 했다고도 전한다. 6.25때까지도 계수나무의 고사목이 있었는데 마을이 불타면서 계수나무도 불에 탔다고 한다. 송계1리와 2리와 나눠져 있다. 송계1리는 삼송마을과 도룡마을인데, 황둔찐빵으로 유명한 곳은 삼송마을이다.

도룡마을에 터를 잡은지 50년이 넘었다는 이순배(79) 할머니는 "삼송마을이야 새로 지은 집들이 많은데, 우리 마을은 난리 겪고 새로 지은 집들로 지붕만 개량한 집이 많아요. 유신 때는 슬레이트로 바꾸고, 기와로 바꾸고, 뭐 그랬지요.

현대식으로 새로 지은 집들도 있지만 우리같이 노인들만 사는 집들은 그냥 옛날 그대로지 뭐."라고 말한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지만 참 어려운 세상 살았어요. 하지만 우리 마을은 참 재미있게 잘 노는 마을로 통했어요. 살기야 어려웠지만 자주 모여서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밤새도록 얘기하곤 했지요. 농번기 때는 서로 도와서 일해주고, 농한기 때는 틈만 나면 모여서 음식해서 나눠먹고 춤추고 그랬지요." 김추월(73)할머니의 말이다. "그러게나 말이예요. 노래하나 끝내주는 저 할멈 요새 영 재미가 없다네요. 호호호" 이순배(79)할머니의 웃음이 주름골을 따라 환하게 피어난다. "요새는 마을에 젊은이가 없잖아요. 찐빵으로 소문이 나는 바람에 외지에서 장사하러 이사들 왔는데 봐야 모르는 사람들뿐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 우리 같은 노인들뿐이지요." 라고 말하는 김추월 할머니. 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대대로 살아온 마을 주민들이 외지인들에게 땅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자식들은 도시에 살고 노인들은 농사짓기 버거워 싼값에 팔았는데 지금 땅값이 엄청나게 올랐다.

도룡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 곳곳에 비닐하우스가 눈에 많이 띈다. 한 두동이 아니라 제법 규모가 있는 하우스다. 이 마을 영흥영농의 유리온실 파프리카는 유명하다. 유리온실은 빛 투과율이 좋아 색깔이 맑고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 헝가리고추라고도 불리는 파프리카는 비타민 C가 레몬보다 3배 많고, 비타민 A와 비타민 E도 풍부해 감기예방과 항산화 작용에 효과적이다.

또 피부탄력과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수요가 늘고 있다. "지금 심어진 것은 토마토인데, 작년 12월에 심어서 수확을 거의 마쳤어요. 1차 파프리카를 4월에 심었고 토마토 수확이 끝나면 그 자리에다 파프리카를 심게 되죠. 10월 말에서 11월까지 따게 되는데, 이때 마을 주민들이 총 동원됩니다." 박종진 이장의 말이다. 작년에 백합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단지가 새로 들어섰다. 모두 개인소유이기는 하지만 농가수입이 짭짤하다.

송계리는 수입 면에서 크게 찐빵과, 비닐하우스 특수작물 재배, 그리고 정보화마을로 인한 체험으로 나누어진다. 농산물 대량재배와 최첨단 정보화시스템으로 무장한 송계리는 '강원도 우수마을'에 도전장을 냈다.

농산물 대량재배와 최첨단 정보화시스템으로 무장한 송계1리는 최근 '강원도 새농어촌 건설운동 우수마을'에 도전장을 냈다. 마을주민 모두가 합심하여 마을 환경을 바꿔 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삼송마을과 1사1촌 결연을 맺고있는 금융보안연구원 직원들이 평일인데도 단체로 현장체험을 나왔다.  
 

2000년 정보화마을 지정되며 180도 변신
유리온실서 재배한 파프리카·토마토 인기

"뭐 심는 거예요?"
"참깨 심는 중입니다!"
평균연령 31세라는 금융보안연구원들이 주말도 아닌 평일에 단체로 현장체험을 나왔다. "요즘 젊은이들이 주말에 일하러 가자고하면 싫어하죠. 그래서 최소한의 인원만 사무실에 남기고 평일을 이용해서 체험하러 왔습니다." 정성순(57)원장의 말이다. 올해로 두 번째 체험이란다.

"작년에 직원들이 참깨를 직접심고, 깨를 베고 터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 깨로 여기 있는 방앗간에서 기름을 짜 갔는데 인기가 최고였다고 합니다. 저희가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거든요. 깨는 기계로 수확하기가 참 힘들어요. 기계로 했다가는 수확의 반이 날아가 버리고 말죠." 박종진(58) 이장의 설명이다.

"농사일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일한지 5분 만에 눈앞이 노랗다는 직원들도 있고, 허리가 아파 일어서지도 못하겠다는 직원들도 있어요. 직접 체험해 보니까 농부들 고생한 걸 알겠나봐요.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정성순 원장의 귀뜸이다. 오전 10부터 시작된 참깨심기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굽은 허리 펴고 마당에 돗자리 깔고 앉아 할머니의 따스한 손으로 만들어준 산채비빔밥, 이보다 더 맛있는 밥이 또 있을까!

금융보안연구원의 의뢰를 받아 농협이 맺어준 1사1촌 인연으로 올 초에는 여의도에 있는 연구원을 마을 주민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황기섭 신림면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신림면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90%가 원주시내 일대의 시장에서 판매됩니다. 다른 곳의 농산물과 차별화가 많이 되지요. 그런 만큼 오늘 심은 깨도 최상품이 될 것입니다."

정보화마을 제1호

'정보 오지'를 없애기 위해 시작됐던 정보화마을은 2000년 황둔·송계 정보화시범마을이 제1호다. 강원도가 중점적으로 도입했던 시책을 2001년 행정안전부가 특수시책으로 채택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강원도 50개 마을을 비롯해 전국 367개 정보화 마을이 있다.

2001년 400만원에 불과했던 강원도 정보화마을의 소득창출 규모가 2008년 20억 원으로 불었다. 경기불황 속에서도 주민이 주도하는 정보화마을이 소득창출의 주춧돌이 되고 있는 것. 조간신문조차 제 날짜에 배달되지 않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에서 대표적인 성공 정보화마을로 안착했다.

영양 남씨 집성촌

송계리는 영양 남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던 마을이다. 정보화마을이 시작된 2000년부터 4년 동안 송계리 이장을 지냈던 남한순(62) 씨는 5대째 살고 있다. 종친회가 있어서 매년 제사도 지내고 모임도 갖는다고 한다.

"내가 해령공파 25대 손이예요. 언제부터 정확하게 이 마을에 뿌리를 내렸는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5대째 살고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요. 우리 아들도 여기서 살고 있고요. 참 산골마을이었는데 2000년 정보화마을이 되면서 180도 달라졌지요."

컴퓨터 농사꾼 심재근씨가, 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은 한국통신 모델이 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것도 이쯤이다. "아이고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김대중 대통령하고 전국 최초로 화상통화 한다고 20일이나 꼬박 연습했다니까요. 정보화마을 추진위원장이었으니까요. 방송 나가고 나서 1년간 기자들이 취재 오는데 피해 다니느라 혼났지요." 남한순 씨의 회상이다. 마을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좋은데 유명세를 치르는 일은 무척 힘든 고역이었다고 한다.

"아니…세상에 이런 일이…"
'돌 캐는 할아버지' 박동래 옹 유명인사

   
 
  ▲ 박동래 옹  
 

도룡마을엔 또 하나의 큰 변화가 생기고 있다. 작년 4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 돌 캐는 할아버지 박동래(77) 옹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텔레비전에 나오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어요. 텔레비전 나오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올라가 봤지요. 대단하더라구요." 박수용(58) 씨의 말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바위가 발견됐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마을에 들어와 산지 17년 되었다는 박동래 부부의 집이 폐가를 지나 마을 맨 꼭대기 집이라 내왕이 많지 않다고.

"우리 밭이 산 밑이잖아요. 그래서 땅을 좀 개간하려고 포크레인을 불렀어요. 그런데 포크레인 기사가 바위가 큰 게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해요. 땅위로 바위가 조금 나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큰 바위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죠. 깰까 하다가 아무래도 깨는 것은 무리다 싶어서 살살 팠죠. 그랬더니 이런 모습이 나오더라구요." 처음에는 그저 그런 바위려니 생각하고 흙을 팠는데 모양이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흙을 파고 빗자루로 쓸고 한 것이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내 땅이니까 천천히 더 파야지요. 저번에 강원대 교수님들이 오셔서 첨단장비로 뭔가를 측정하시더니 과학적 가치가 높은 돌이래요. 깊이가 몇 백 미터 정도는 더 되는 것 같다고 하고요." 박동래 옹의 얘기다.

   
 
     
 

바위를 파내면서 쌓인 흙은 할아버지가 손수레로 바로 옆에 있는 밭에 뿌렸다고 한다.

"내가 원주 태장동에 살았어요. 건축 노동하다 보니까 젊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사는 게 싫더라구요. 그래서 여기로 이살 왔지요. 생기는 건 없는데 그냥 마음 편하고 고민거리가 없어 좋기는 하지요. 농사지어서 우리부부 먹고 사는 거지 다른 게 뭐 있겠어요."

건축 일을 해서 그런지 손수 자재를 사다가 지었다는 집이 제법 멋스럽다. "텔레비전 나가고 나서 생기는 것 없이 귀찮아지기도 했어요. 그냥 재미삼아 한 일인데 사람들이 찾아와서 묻곤 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낭비되지요." 망태기 하나 메고 지게 둘러맨 욕심 없는 농부의 모습. 시골에 사는 아버지의 모습과 하나가 된다. 

고민교 시민기자


고민교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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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리 삼송마을 전경.


이순배 할머니

김추월 할머니

박동래 옹

삼송마을과 1사1촌 결연을 맺고있는 금융보안연구원 직원들이 평일인데도 단체로 현장체험을 나왔다.

백합을 심은 비닐하우스.

유리온실에서 쑥쑥 자라고 있는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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