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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마을탐구 2부: (6) 원주 이씨 집성촌 호저면 고산리

자연마을을 찾아서 고민교 시민기자l승인200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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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산저수지. 이 저수지가 생긴 후부터 마을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한다.  
 

지대가 높아서 고산이라 부른다. 험한 산지에 골이 깊어 피난지로써 최적의 장소였다.

고산리는 곤이골, 개전동, 송골, 입암을 아우른다. 곤이골은 기해박해(1839) 때 경기도와 서울지역에서 피신한 천주교 교우 세 가족이 삶의 근거지로 택한 곳. 경기도에서 풍수원과 횡성 검두를 거쳐 깊은 산골에 안착했다. '곤란을 당했지만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곤의골(=곤이골)이다. 원주에서 가장 오래된 교우촌으로 곤이골 공소가 있다.

"현재 109가구가 살고 있어요. 벼를 주 작목으로 재배하고 있는데 농가의 60%이상이 작목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벼종자 생산 보급반, 복숭아 배 작목반, 잡곡생산단지, 여성 일손 찾기로 나눠져 있죠. 우리 마을은 대대로 살아온 토박이가 한 50여가구정도 됩니다. 원주이씨 집성촌으로 이씨 일가 36가구가 아직까지 살아요. 6.25 전까지만 해도 훨씬 많았는데, 사변 후 50여 가구만 남았다고 합니다." 김학수(63) 이장의 말이다.

 "그때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이었어. 충북 음성으로 피난 나갔다 오니까 장티푸스가 돌기 시작하더라고. 엄청나게 많이 죽었지. 장사지내면 그 집엔 얼씬도 하지 않을 정도로 민심도 흉흉했으니까. 길바닥에 금 그어 놓고, 소금 뿌려놓고, 그랬어. 그때 무슨 약이 있어야지. 아이들은 길바닥에 떨어진 총알이나 수류탄 때문에도 많이 죽고. 우리 동네 일대가 격전지였거든.

   
 
  ▲ 정면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원진녀 생가가 나온다.  
 

인민군, 중공군이 들어와서 미군과 치열하게 싸웠던 곳이야. 굶어 죽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군대 가서 죽은 사람도 많았잖아. 그때 이후로 마을사람들이 반은 줄었을 거야."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환일(72) 옹의 말이다.

삼마치 고개를 넘지 못하도록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격전지. 그만큼 피해가 컸다고 한다. 단 한 채의 집도 온전하지 못했다. 피난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돌과 흙을 이겨서 토담집을 짓고 살다가 새마을운동으로 지붕을 새로 얹거나, 새 집을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대부분의 집들이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원주이씨 집성촌으로 양반체면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살던 이 마을은 6.25 이후 가난을 면치 못하다가 고산저수지가 생기면서 형편이 좋아졌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는 새농촌건설로 마을에 장승을 세우고, 길도 닦고, 농촌체험 관광객을 유치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 마을로 시집와 50년 넘게 살고 있는 이종월(76) 할머니. "마을길이 저렇게 반듯하게 포장 된 것도 불과 십년도 안됐어. 내가 스물한 살에 시집왔는데 깡촌이었다니까. 우리 집 양반이 경찰이었는데도 어렵게 살기는 마찬가지였어. 횡성 이십리, 원주 삼십리더라고. 소금은 횡성시장에서 사오고, 쌀은 우산동으로 사러 나가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오죽하면 이사람 박순구 씨가 소금지고 오다 울었다고 했을꼬…"  "화로 사가지고 오다가 깨기도 했었다니까. 그 안타까움이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지" 이 할머니는 재를 넘어 원주시내로 나가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렸던 시절을 떠올렸다.

   
 
  ▲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류종규 노인회장 집.  
 

고산저수지 끝 길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다보니 길 오른쪽으로 눈길을 잡는 집이 있다. 류종규(76) 노인회장 집이다. 특이한 돌과 조각들, 울창한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다. 언뜻 보면 음식점으로 오인할 수도 있다.

소초면에서 태어나 살다가 이곳에 정착한지 20여년이 넘었다는 류종규 회장. "조형을 배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돌이 좋고 나무가 좋아 모으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고, 또 나름대로 멋을 내다보니…" 하지만 취미로 보기에는 규모가 대단한데다 조형도 수준급이다. 마을 곳곳에 세워진 돌과 조형물도 모두 류 회장의 손을 거쳤다.

오지 중의 오지인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것은 교통. 버스는 고사하고 자가용 한 대도 들어올 수 없는 소로였다. 류 회장은 동신운수와 면장을 번갈아 만나가며 버스노선을 요청했다.

길만 넓히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이사 온 지 1년 만에 류 회장의 집 앞까지 버스가 다니게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72번 곤이골 가는 버스의 종착지다. 

   
 
  ▲ 집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비석.  
 

최시형 교주 숨겨준 원진녀  생가 보존

천도교 2대 교주인 최시형이 숨어살았던 곳으로 송골마을에 있다. 이웃마을 주민이 신고해 발각되었다고 한다.

"내가 원진녀 씨 바로 아랫집에 살았는데, 누가 밀고 했는지 어른들이 쉬쉬해서 알지 못해요. 하지만 경찰들이 숨겨준 원진녀 씨나 마을주민들은 피해를 입지 않았어요." 반순구(67) 씨 얘기다. "최 교주가 숨어들어오면서 창이나 칼 같은 전쟁도구들을 많이 가져왔던가 봐요. 원진녀 씨의 두 아들이 그것을 전부 땅에 파묻었다고 들었는데, 어딘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두 아들도 다 죽었거든요."

작년에 원주시 지원금으로 원진녀 생가를 복원했다. 고산리에는 천도교 신자들이 없지만,  성지순례하려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누구든 볼 수 있도록 상시 개방하고 있다. 집 오른쪽에는 1990년 4월 치악고미술동우회에서 세운 비석이 있다. 글은 김대호가 짓고 글씨는 장일순 선생이 썼다.

 

 
 
  ▲ 지난해 복원한 원진녀 씨 생가와 원진녀 생가 내부.  
 

남근 모양을 한 '선바위'

멀리서 보면 남근모양으로 울창한 나무 틈에 우뚝 서 있다. 옛날 한 옹기장수가 이 바위 옆을 지나는데 바위가 자기 앞으로 넘어질 것만 같았다. 어서 지나가야지, 하는 바쁜 마음에 그만 발을 헛디뎌 옹기를 모두 깨뜨리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옹기 조각이 나온다고 한다. 선바위 옆에는 약수가 있다.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험이 있어서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한 사람이 가면 한 사람 먹을 양이 나오고, 열 사람이 가면 열 사람 먹을 양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물이 똑똑 떨어지기 때문에 인내는 필수!

4대째 이어온 고니골 농장

4대째 누에를 키워 온 고니골 농장이 있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곳에 터를 잡은 조상들이 누에농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다. 하지만 산업화로 대다수 누에농사를 중단했는데 고니골 농장 조영준 대표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배운 것이라곤 누에치는 것밖에 없어서" 계속했다는 조 대표는 누에와 뽕잎으로 여러 가지 건강식품을 만들어 판매하면서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누에농가로 손꼽히고 있다. 1990년부터는 매년 뽕나무와 누에를 이용한 건강음식 시식회를 개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동생 조영록 씨까지 가세해 오디를 이용한 식품을 개발하고 있다.

고산리 젖줄, 고산저수지

고산저수지는 아랫마을까지 마르지 않게 하는 젖줄이다. 이 일대는 매우 건조한 지역으로 모내기철이 되면 물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1980년에 완성되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물이 마르지 않았죠. 이 동네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는데, 저수지 생기고 나서 얼마나 마을이 살기 좋아졌는지 몰라요. 일단 모내기 때 물 걱정하지 않아 얼마나 좋은지… 물고기도 많아서 수시로 낚시도 하러 다니고. 단풍이 저수지 물에 비치면 술 한 잔 안하고는 못 배기죠. 또 꽁꽁 언 저수지에서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썰매를 타는 모습이라니! 저수지는 우리 마을의 놀이터이자 정신적인 버팀목입니다."

해바라기 농장 새소득원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해바라기 농장이 있다. 야산 9천 평에 해바라기만 심었다. "해바라기 기름이 수익성이 좋더라구요. 올해는 괜찮았는데 작년에는 작황에 실패했어요.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동네기금으로 사용합니다."

해바라기와 함께 화초, 호박, 수세미, 조롱박 등 다양한 식물터널도 꾸몄다. 해바라기 밭에서 사진 찍기, 사생대회, 염색체험 등을 개최하고 있다.

고민교 객원기자


고민교 시민기자  wonjutoday@hanmi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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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원진녀 생가가 나온다.

고산저수지. 이 저수지가 생긴 후부터 마을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한다.

김학수(63) 이장

류종규(76) 노인회장

이환일(72) 옹

이종원(76) 할머니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류종규 노인회장 집.

집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비석.

지난해 복원한 원진녀 씨 생가.

원진녀 생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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