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죽음이란 어둡고, 어둡고, 캄캄한 나락이다. 까마귀의 그 음산한 검은 빛깔과도 같이. 그리고 흑색(黑色)에 치중하는 그들 문화의 편린이 잡힐 듯도 하다. 내가 일본을 생각할 때는 검은빛에서 시작된다."

　여유작작하다/ 사람 사는 언저리 아니면 못사는 주제에/ 사람의 눈치쯤 아랑곳없이/ 정거장 둘레를 어슬렁거리다가도/ 지갑을 줍듯 먹이만 보면/ 스윽 달아난다.
　
　장호(章湖) 시인의 시집(詩集) <동경까마귀> 속의 시 한 구절이다.
　일본(日本)에는 까마귀가 많다고 한다. 소설(小說)이나 시(俳句)에도 까마귀는 곧잘 나타난다. 유행가, 동요, 심지어 자장가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처럼 혐오감으로 그 새를 대하지 않는 모양이고 그들 정서 속에 녹아들어 있는 듯 보인다. 우리민족의 정서를 은근과 멋이라고들 하지만 자연스럽고 그윽하고 점잖은 것으로 은근을 풀이할 수 있을 것 같고 멋은 덴디즘의 외형, 형식과는 다르게 정신적 사치스러움과 다소의 해학도 포함이 되어있지 않나싶은데 따라서 여유가 있고 낙천적이며 공간 지향 동적(動的)인데 비하여 쓸쓸하고 상심(傷心)의 뜻을 가진 와비(侘)와 쓸쓸하고 한적한 뜻의 사비(寂), 숙명적이며 허무한 모노노아와래(物の哀れ), 어의(語意)의 전달이 충분한지 모르겠으나 대체로 그렇게 집약되는 일본인(日本人)들의 정서에는 짙은 우수와 허무주의가 깔려있다. 그리고 감상주의의 소지이기도 하며 정적(靜的)이요 평면(平面), 지상(地上)지향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어둡다. 해서 고목(枯木)에 앉은 겨울까마귀는 그들 정서의 근사치며 우리의 경쾌한 새타령과는 대조적이다.
　
　그림장이 이중섭은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민둥산 붉은 흙을 비행기에서 내다보고서/ 눈물이 나더라고 말했지만/ 중략(中略) 부산 영주동 까치집이 내다보이는 우리 집에 와서도 그랬고/ 정릉 골짜기 까치집이 있는 하숙집에서도 그랬듯이/ 까치만 쳐다보면 늘 그는 입을 반푼이처럼 헤벌레하고 있었것다.
　    <까마귀에 쫓겨 온 이중섭(李仲燮)>
　
　까마귀와 까치의 대비는 민족과 민족간의 숨막히게 다른 뉘앙스를 느끼게 하지만 화가 이중섭의 개인적 고뇌, 민족적 슬픔, 내 산천(山川)에 대한 짙고 애틋한 애정이 느껴져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일제하(日帝下)에서 살아본 사람이면 내 자신의 눈물 내 자신의 몸짓으로 착각하게 되는 구절이다.
　
　일본사람들이 내어놓고 울음보를 터뜨리는 일이 없는 것은/ 까마귀가 대신 다 울어줘서 그런건 아닌지 몰라/ 관동대진재 45년의 패망 이후/ 일본 사람들이 늘 속이 거북하다는 것은/ 제대로 한번 울어본 적이 없어선지도 몰라
　    <까마귀에 쫓겨 온 이중섭(李仲燮)>
　
　우리나라에서는 흔해빠진 그 통곡이 일본에서는 흔치가 않다. 일본의 문학작품(文學作品) 속에서 통곡이라는 말에 부딪치게 되면 아주 특이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딘지 모르게 고답적(高踏的)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다. 땅을 치며 통곡하는 원초적인 것,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독무대 같은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다. 분출되기보다 안으로, 안으로 밀어 넣으며 슬픔을 구속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실상 그들의 통곡에는 소리가 없는 것으로 표현되기 일수이며 소리 없는 통곡, 그러니까 흐느낌과 비슷하고 오히려 나끼사게부(泣き呼ぶ, 울부짖음)가 우리네 통곡과 가깝지만 역시 통곡과 울부짖음은 다르고 통털어 그들의 울음을 생각할 때 소리가 없는 것이 특징이며 또 별로 울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에 대한 인상이다.

　통곡이 없는 민족, 울지 않는 민족, 왜 울지 않을까? 슬픔도 마치 실루엣 같이 소리가 없다. 너무나 정적이다. 본시부터 그러했을까? 그들이라고 울지 않을 리 없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칼로 상징되는 그들의 역사 탓일 것이다. 사실 일본(日本)이 이웃에 끼친 피해의 규모가 크고 참혹함도 자심한 것이었지만 그들 스스로, 동족들 목 줄기에 들이댄 칼의 세월이 훨씬 길다. 그리고 그 참혹함도 타민족에 대한 것에 못지않았다. 예(例)를 하나 들자면 일본 정신을 의식화(意識化)한 것 중에 하라끼리(切腹)라는 게 있다. 나는 그것을 몬데가네로 표현한 적이 있지만 일종의 새티즘과 매조히즘의 복합으로 보아도 과히 틀리지는 않으리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혹은 강자(强者)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지는 그것은 한 개인(個人)의 고통(苦痛)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하라끼리(切腹)는 자기 고통의 하수인(下手人)이 자기 자신이며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게 되는 잔인무도한 의식이다. 식순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장(現場)은 또 얼마나 추악한가. 동맥을 끊는 목이 있고 심장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복부(腹部)인가. 생선 배 갈라 내장 꺼내는 것 같이, 복부(腹部)이기 때문에 절명(絶命)  에는 시간이 걸리고 이른바 가이샤크(介錯)라 해서 칼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배 가른 사람의 목을 쳐주는데 두 번 죽음이다. 자살은 일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용감한 사람만이 자살하는 것도 아니다. 흉악한 범죄자도 자살하고 천하의 독부(毒婦)도 자살하고 삶을 이길 수 없는 무력(無力)한 사람도 자살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고통이 적은 방법을 취하는 것이 본능이다. 추악하고 잔혹하고 야만적인 그 자살 방법에 일본은 그야말로 긴란(金鄂),돈수(緞子), 비단을 휘감아서 미화(美化)하고 일본 정신의 표본으로 자랑한다.

　일본을 모르는 사람 중에도 뭐 그게 대단한 죽음의 철학(哲學)인양 현혹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런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체념과 마조히즘이 그 장본(張本)이다. 체념이라는 말에서 생각이 나는데 우리들에게는 체념이 그리 오래된 말은 아닌성싶다. 어릴 적에 늘 낯설지 않게 들어온 말에는 포한, 한 그리고 체념이라는 말 대신 단념이라는 말이 있었다. 재미나는 것은 체념과 한과 단념 이 세 가지 말이 지닌 뜻과 그 뉘앙스다. 체념에는 최소한도의 타협이 있다. 운명에 순종하며 살아남으려는, 체념한 대상에서 방향을 바꾸려는 계산이 있다. 한(恨)은 소망을 이루지 못한 소망이 저애된 슬픔이다. 그러나 체념과는 다르며 소망을 연장해본다.

　자신의 미래(未來)를 향해 자식을 향해 또 내세(來世)를 향해, 해서 포한(抱恨)은 풀어야 하는 것이다. 단념은 끊는 것이다. 타협이 아닌 끊어버리는 그 자체, 체념과 같은 타협이나 순종이 없다. 일본에는 아끼라메(체념)라는 순수한 일본말이 있고 그 말은 일상(日常)에서 흔히 쓰인다. 또 그 비슷한 말에 간넹(觀念)이 있는데 자신을 달래는 뜻이 포함된 아끼라메와는 달리 외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으로 스스로를 끊어버리는 단념(斷念)과도 다소 다른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포한이나 단념이 주체적(主體的)이라면 아끼라메(체념)나 간넹(觀念)은 타의(他意)에 의한 것이다. 하라끼리(切腹)는 간넹(觀念)의 행위이며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들의 현실, 종교(宗敎)에 있어서 신(神)은 내세(來世)에 대한 약속을 한다. 일본의 신(神)은 내세(來世)에 대한 약속이 없다, 신국(神國)의 대본신(大本神) 아마테라스(天照)도 현인신(現人神)인 왕(王)들도 내세(來世)에 대한 약속을 못했다. 아시하라라는 일본국(日本國)은 만세일계(万世一系) 아마테라스(天照)의 자손이 다스릴 것이란 말 밖에, 아마테라스(天照)는 종교적 말씀이 없었다. 일본역사에서 모노노아와래(物の哀れ)와 맥(脈)을 같이 하는 허무적 내세관(來世觀)을 심어준 것은 불교(佛敎)다.

　그러나 힘으로 형식(形式)으로 대부분 변질되었고 내세관(來世觀)은 가냘프게 연명한 것 같다. 그러나 카톨릭은 일본의 정신계를 뒤집어엎을 뻔 했다. 순수하게 힘차게 하라끼리(切腹)와는 전혀 다른 순교를, 그러나 시마바라(島原)의 난에서 카톨릭은 철저히 분쇄되고 전멸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단 한번의 기회가 아니었나싶다.

　하여간 일본에서의 죽음이란 어둡고, 어둡고, 캄캄한 나락이다. 까마귀의 그 음산한 검은 빛깔과도 같이. 그리고 흑색(黑色)  에 치중하는 그들 문화의 편린이 잡힐듯도 하다. 내가 일본을 생각할 때는 검은빛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