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를 변화하려는 움직임
제17대 국회에서 현재 계류 중인 지방자치법 일부 개정 법률안 중 지방의회와 관련한 것이 12건에 이른다. 지방의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바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는데 맥락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행정사무감사와 서류제출 요구 규정 등을 보완해 감시와 통제 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겸직금지 확대 등을 통해 영리활동을 현재보다 제한하자는 내용이다. 지방의원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돌리자는 개정안도 제출돼 있으나 전반적으로는 효율적 운영을 통한 지방의회 권한 강화와 지방의원의 전문성을 강화하자는 게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법률안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될 가능성도 있지만 18대 국회에서도 이처럼 지방의회를 변화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될 전망이다. 2007년 기준 전국 지방의회가 의결한 예산규모는 160조원에 이른다. 이 하나만을 놓고 보더라도 지방의회의 효율성과 권한, 전문성 강화는 시대적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회기 아니면 권한도 없다"
원주시의회는 지난해 12월 올해 회기운영 계획을 확정했는데 전체 회의 일수를 80일로 확정했다. 임시회 여섯 번에 39일, 정례회 두 번에 41일이다.
지난해 10월 의정비 논란에 휩싸였을 때 의정비 인상 반대 논리 중 하나가 회의 일수였다. 1년에 회의 일수가 80일밖에 안되기 때문에 의정비를 과다하게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원주시의회는 회기 일수는 80일이지만 의정활동은 1년 내내 하는 게 현실이라는 반대 논리를 폈다.
회기(會期)란 집회나 회의 따위가 열리는 시기를 말하는 것으로 의회는 이 시기에 각종 의안을 심의·의결하는 등 각종 권한을 행사한다. 의회는 합의제 기관이어서 회기가 아니면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의결, 서류제출 요구, 행정사무 감사와 조사 등 모든 권한행사는 회기 중에만 이뤄질 수 있다.
박찬숙(한나라당) 국회의원은 휴회 중에도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서류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았다. 신명(대통합민주신당) 국회의원은 더 나아가 폐회 중에도 서류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제안한 상태다. 모두 회기가 아니면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현행 법률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도이다.

"관행을 깨면 권한은 배가된다"
현행 지방자치법으로는 회기가 아니면 의회가 사실상 권한행사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관행을 깬다면 이 역시 극복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법에서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지방자치법 제47조(개회·휴회·폐회와 회의일수) 제2항에는 "연간 회의 총일수와 정례회 및 임시회의 회기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한다"고 돼 있다. 회의 일수를 자율화해 놓은 것이다.
상지대 행정학과 박기관 교수가 지난해 8월 발표한 논문 '지방의회 의정활동 성과의 비교 분석과 평가 - 원주시와 춘천시 의회의 15년간 의정활동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3~4대 원주시의회 총회기 일수는 317일과 315일이며, 연평균 회기는 79.2일, 78.7일이다. 총 의안 심의 건수는 366건과 299건으로 1일 평균 심의 건수로 따지면 각각 3.96건과 4.9건으로 나타났다. 1~4대까지 전체 회기 평균 일수는 224일이고 년 회기 평균은 70.7일로 집계됐다.
연간 회의 총일수를 80일로 규정한 개정 전 지방자치법에 따라 이처럼 의회가 운영됐던 것인데 회의 일수로 지방의회의 권한을 제약한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그러나 현재는 연간 회의 총 일수를 조례로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그럼에도 '원주시의회 회기와 그 운영 등에 관한 조례'는 아직도 연간 회의 총 일수를 80일 이내로 규정하고 있으며 부득이할 때에만 10일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회의 총 일수가 늘어나면 집행부가 의회의 견제를 받느라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현재까지의 관행을 깨고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심도 있는 고민을 통해 회의 일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회의 일수, 권한확대 전제해야"
80일로 돼 있는 회의 일수를 늘려도 처리할 수 있는 안건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판은 회의 일수를 늘리는 것과 의회 권한 확대를 연동하면 잠재울 수 있다.
지방자치법 제39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지방의회 의결권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본보 1월 7일 자 4면 보도) 원주시의회 모 의원은 "원주시의회 의결사항에 관한 조례를 발의할 계획"이라며 "위법하지 않은 범위에서 의결할 수 있는 사항을 광범위하게 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같은 내용이 현실화되면 집행부로서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봉착할 수 있고 행정 집행이 둔화하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지만 주민 이익 측면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현상이다.
해당 의원은 "집행부가 계획하고 집행하는 다양한 행정행위 중에는 주민합의는 고사하고 주민의견 청취조차 이뤄지지 않은 게 상당수"라며 "이런 내용을 의회 의결사항으로 정해 놓으면 공론화 과정을 통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대안 제시는 물론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의회 의결을 거쳐야 집행할 수 있는 사업이 현재보다 늘어난다면 회의 일수 또한 자동으로 늘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방의회 권한의 한 축인 조사권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39조 제2항에는 지방의회가 폐회 또는 휴회 중 조사의 발의가 있으면 지방의회의 집회 또는 재개의 요구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의회가 조사권을 행사하면 할수록 자연스럽게 회의일수 또한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처럼 시의회가 의결권 확대 등 권한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회의 일수를 80일이 아닌 그 이상으로 정해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내년에 또다시 의정비 논란에 휩싸인다 해도 주민들은 의회가 보여준 모습만큼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 것이다.

전제돼야 할 책임성
지방자치법 제65조(회의의 공개)에는 "지방의회의 회의는 공개한다. 다만, 의원 3명 이상이 발의하고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한 경우 또는 의장이 사회의 안녕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원주시의회 위원회 회의 과정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효율적인 의사진행을 위해 잠시 정회토록 하겠습니다."라는 것이다. 문제는 가장 결정적인 의사 결정은 정회과정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본예산이나 추가경정예산 계수조정 과정은 아예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떤 이유 때문에 해당 사업 예산이 삭감 또는 증액됐는지, 어떤 의원이 어떤 논리로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아무도 모른다. 민주성, 합리성, 객관성 모두 실종되고 오직 나눠 먹기 혹은 편 가르기 성이 짙은 결과만 남는다.
원주시 한 공무원은 "자신에게 돌아올 비판의 목소리를 없애고자 의원들 간 담합을 형성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이라며 정책실명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책임성이 담보되지 않은 한 권한확대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방의회 권한 확대를 통한 지방자치 발전과 이를 담보할 책임성 증대 방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