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장애아동을 둔 부모가 겪어야 하는 부담과 책임,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뇌사 상태에 빠진 중증장애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떼내 숨지게 한 아버지의 사연이 세상을 안타깝게 했다.
　장애아동은 신변처리나 착·탈의, 보조기 사용, 일상적인 의사소통, 이동 등의 도움 이외에도 학습과 문제행동 관리, 적응행동 촉진, 또래관계 형성 등의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며 이는 곧 장애아동을 둔 가정의 해체 원인이 된다.
　원주시 장애인 인구율은 4.7%라고 하지만 장애인 관련 예산(2007년 예산 5천450억원 중 장애인 예산은 38억원(0.7%))은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 복지 개선이 단순히 시설 지원과 기능 보완에 머물를 게 아니라, 장애아들이 생활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상남도의 장애인도우미뱅크와 같은 지원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장애아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지원이 보다 확대돼야 자연스럽게 장애인 복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시설 보냈는데 구타 흔적이…
　남편과 사별한 후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최은영 씨에게는 8살과 9살 된 두 아들이 있다.
　최씨는 잠시도 첫 아이 민우(가명)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민우는 발달장애 1급이다. 눈에서 안보이면 엄마는 불안하다. 높은데 올라갔다 떨어져 병원신세를 여러번 졌고, 자동차가 위험한 것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한순간도 돌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기에 급한 일이 있으면 멀리 사는 친정이나 시댁에 아이를 맡겼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 모두 스트레스로 병이 났다. 더는 아이를 맡길 처지가 못됐다. 그렇다고 아이 옆에만 붙어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일을 해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민우 중심으로 모든 생활이 돌아가다 보니 아직 어린 둘째 아이를 제대로 돌볼 겨를이 없다. 그러다보니 둘째 아이마저 다른 또래 아이들 보다 발달이 더딜 수 밖에 없게 됐다.
　오랜 고민끝에 민우(당시 6살)를 장애아동들이 지내는 시설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시설에서 교육과 치료를 병행하며 아이를 보살펴 준다고 하니 천만 다행이었다. 그래도 옆에서 돌봐주지 못하는 민우한테 미안해 집으로 오는 내내 눈물이 났다.
　얼마 후 시설로 아이를 만나러 갔었다. 아이가 의자에 묶여있고 다리에는 멍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맞은 흔적이었다. 아이를 잘 돌봐주겠다는 처음 얘기와는 달리 찾아갈 때마다 아이에겐 맞은 흔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활이 힘들어도 시설에 아이를 맡기는 것은 엄마로써 더는 못할 짓이라는 생각에 다시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9살이 된 민우는 여전히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지만 올해부터는 학교도 다니고 있다. 학교에 있는 만큼은 민우엄마가 다른 일을 할 수가 있다. 민우 엄마는 "학교수업이 끝난 아이를 저녁 때까지 맘놓고 맡길 만한 곳이 있었으면 한다"며 "비장애아동을 위한 방과후 활동은 많지만 민우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 "급한 일로 집을 비울 때 두 아이를 대신 돌봐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상남도 장애인부모회는 이러한 어려움을 함께 하는 부모들의 모임이다.
　자녀의 장애로 사회에 다가서기를 어려워하고 주저했던 경남의 장애인 부모들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배제와 소외를 받으며 그늘지게 지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함께 모임을 갖고 활동하게 된 것이다. 
　부모회는 2004년 장애인 교육차별에 항의하며 23일간의 점거 단식 농성을 벌였고, 장애인 차별철폐를 위한 정책 제안 및 투쟁, 교육인적자원부 앞 장애인 교육권 학보 투쟁 결의대회 등을 진행했다.
　그 결과 2005년 6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돕고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얻어냈다. 바로 도우미뱅크다. 도우미 뱅크는 중앙과 지방의 언론을 통해 알려졌으며 서울, 울산, 충북, 광주 등에서 자료를 요청하고 있다. 9월말 기준 경남장애인도우미뱅트 이용자 수는 4만2천여명에 달한다. 타 시도 장애인단체들은 해당 시도지사 면담시 1순위 요구사업이 도우미뱅크라고 한다.

도우미뱅크로 '만사 OK'
　경상남도 장애인 도우미뱅크의 모토는 '1577-0420만 누르면 장애인 문제는 만사 OK’이다. 또, 우리사회에서 가장 소외받고 힘든 이들의 소박한 꿈을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도우미 뱅크의 설립 취지다.
　경남장애인부모회 윤종술 회장은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내가 건강한 만큼 지역 사회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지역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죽으면 살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혼자서도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우미뱅크 도움을 받고 있는 김동해 씨는 "발달장애인 두아이를 형편이 어려워 치료센터도 못보내고 우리 부부는 집에서 아이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었다"며 "도우미뱅크에서 파견된 치료 자격증을 보유한 도우미가 집까지 찾아와 아이들과 놀아주고 치료교육을 도와줘 우리 두 부부는 자유와 가족 간의 화목, 희망을 선물받았다"고 말했다.

장애인도우미뱅크란?　장애인과 가족의 적극적인 사회참여와 완전한 사회통합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경남장애인부모회가 제안한 사업을 경상남도가 적극적으로 수렴해 경상남도와 20개 시군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 장애 영역별 특성에 맞춤한 지원서비스를 제공하여 중증장애인들의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도우미뱅크의 운영 프로그램은 크게 활동보조, 외출지원, 교육지원, 가사간병지원 취탁가정 지원으로 나누어 진다.
　상남도에 거주하는 법정장애인으로 등록된 모든 영역의 1급, 2급 장애인 그리고 정신지체, 발달장애 3급 장애인과 보호자가 이용할 수 있다. 비용은 이용자 30%, 도·시군 70%를 부담하며,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는 무료이다.

도우미뱅크=희망뱅크

"자활후견기관도 외면한 일을…"

　하동군 하동읍 비파리 컨테이너 박스에 사는 장00(58)입니다. 독거자로 중증장애 1급으로 척추와 목, 허리가 굳어 활동을 못합니다. 4년전 구두수선에 필요한 봉제를 배우려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부주의로 공사장에서 떨어져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좌추 고관절에 인공관절을 넣어 땅바닥에 앉지 못하고 땅에 있는 물건을 줍지도, 허리를 굽히지도 못합니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하고 퇴원해서 집에 오니 집 안팎이 돼지우리 같았습니다. 컨테이너 집 안은 쥐의 천국이 집안 살림살이는 쥐똥과 오줌으로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고, 마당에는 풀이 키를 넘는 숲이 되어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방에 신을 신고 들어가서 쥐와 같이 며칠을 잤습니다.
　허리를 굽히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하동읍사무소에 부탁을 했더니 공공사업 노무자가 와서 풀을 베 주었습니다. 자활후견기관에 부탁했더니 와보고는 자기들은 간병도우미이지 가사도우미가 아니라고 하면서 그냥 가버렸습니다. 그러던 중 경남 장애인 도우미뱅크를 알게 되었습니다.
　도우미뱅크를 통하여 도우미 선생님 두분이 오셨고, 그분들은 집안청소, 주방청소, 마당청소까지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쓰레기가 트럭 한차가 넘었습니다. 도우미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제는 제법 사람 사는 집 같아 너무 좋습니다.

"가족 모두가 행복해졌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지체장애 1급입니다. 자식들이 있지만 모두 각자의 가정과 직장 생활에 어머니 곁에서 돌봐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아들·며느리가 함께 있다고 해도 모두 직장생활 하느라 가사는 엉망인 채로 생활하고 있었는데 도우미뱅크 덕분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돌봐 드리지 못하면서 친정에 갈때마다 가슴이 아팠는데, 이제는 친정에 가도 깔끔하게 정돈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생활하시는 부모님을 뵈면 참 좋답니다. 우리 어머니를 돕는 도우미는 하는 일에 구분을 안 하고 밑반찬도 준비해 놓고 가시니 딸로서 안심도 되고요. 도우미뱅크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새벽 같이 나갔다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올케가 안쓰러웠는데 도우미 뱅크에서 도움을 주시고 부터는 올케에게도 미안함이 덜하게 되었답니다. 우리 가족이 다소나마 안정을 찾게 돼 다행이구요. 어머니께서 수년간 1급 장애인으로 생활하시니 동생내외는 너무 힘든 생활을 했거든요.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약값으로 지출하는 돈이 올케 월급만큼 되었으니까요.
　일주일에 두 번 어머니를 도와주시니 올케에게 덜 미안하고 가족 말고도 돌볼 사람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도 가끔 볼일도 보시고 휴식시간을 가지실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한글조차 모르던 손자가 공부에 의욕을…

　우리 손자는 정신지체장애 2급 판정을 받아 중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도 국문 해독이 안돼 이름 석자를 쓰기가 힘들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 도우미뱅크에서 선생님을 추천해 주셔서 2~3일에 한 번씩 선생님이 오셔서 공부를 가르쳐 주신 덕분에 공부를 해보겠다는 의욕을 갖는 것 같고 선생님이 안 오셔도 공부를 한다고 책을 펴고 앉아 있는 것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나기도 하고 기쁩니다.
　이 모두가 도우미뱅크가 있고 우리 손자에게 선생님을 보내주신 덕분이란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는 반복이 되면 국문해독이라도 하지 않겠나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답니다. 

"같은 처지지만 도울 수 있어 보람"

　하동에서 사는 강윤희라고 합니다. 저 역시 장애 2급이지만 줄곧 장애인도우미 역할을 하다 지금은 잠시 활동을 쉬고 있습니다. 2급 장애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제 일을 제가 할 만큼 재활이 되었고 다른 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을 만큼도 돼 용기를 내 도우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도우미뱅크에서는 일할 수 있는 장애인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저는 2급 장애인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갔는데 참 좋아하셨고, 저도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내가 일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과 동료 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