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순 전 원주여성민우회  사무국장

대학졸업 후 10여년을 사북에서 산 적이 있다. 석탄산업 합리화 방안에 따라 광산이 문을 닫게 되자 지역주민들은 생존권보장을 요구하며 핵폐기물처리장이라도 유치하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싸웠고 1995년 12월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기 쫌 전에 나는 원주로 이사를 나왔다. 그 후 2000년 10월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내국인 출입 카지노가 내가 살던 그곳에 개장되었다.
인생막장이라는 탄광,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동네, 양계장인지 사람 사는 곳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사택, 빨래를 널면 탄가루가 묻어나고 아이들 그림에 까맣게 표현되던 개천. 그렇지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도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 장사밑천이라도 마련하려 애쓰고 자식들이라도 공부시켜 도회지로 내보내려 애쓰던 사람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곳엔.
그러나 지금 그곳엔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 잭팟의 환호와 쪽박의 탄식이 교차하고 전당포와 모텔이 아직 철거되지 않은 사택의 슬래트 지붕 위로 비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강원랜드는 최근 4년간 연 2천억원대의 순이익을 냈고 땅 좀 가지고 있던 지주들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은 땅 값에 돈방석에 올라앉게 되었고, 광산에서 탄을 캐던 사람들은 강원랜드에서 곡괭이 대신 빗자루를 들게 되었다. 그 조차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강원랜드에서 배달해 주는 도시락으로 연명하고 아이들은 전당포와 모텔과 룸싸롱이 즐비한 거리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누구는 얼마를 날려 자살을 하고 누구는 얼마를 땡겨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만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그런데 생명의 도시, 건강의 도시 원주에도 도박장이 들어설지도 모른다고 한다. 현재도 한 집 건너 한 집이 룸싸롱에 모텔에 성인오락장인 단계동에 이젠 화상경마장이 들어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화상경마장의 수입을 통하여 지역경제를 회생시키고 세수를 확보하며, 고용 및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충남 천안의 경우 화상경마장과 경륜장이 있는 건물에는 남성전용 휴게소와 안마시술소 등이 자리 잡고 있고 도박중독이나 고리대금업 또는 범죄 등과 같은 역기능이 훨씬 더 심각하다. 한국청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카지노 개장 이전인 1998년 정선군 청소년 범죄의 46%를 차지했던 고한 사북 남면 지역의 소년범죄는 꾸준히 증가해 2002년에는 83%에 이르렀다고 한다.
화상경마장 신설의 경우 건물주는 인근 주민들로부터 ‘장외발매장 개설 찬성동의서’를 받아야 하고 교통영향평가도 받아야 하고 학교보건법상 저촉 여부를 교육청에 의뢰해야 하는 과정을 거쳐 마사회와 임대계약을 체결하고 농림부에 화상경마장 승인신청을 하는데 이때 농림부는 지자체의 의견을 물어 설치여부를 결정하도록 되어있다. 이렇게 절차와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한 것은 그만큼 화상경마장이 미치는 위해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공식적으로 반대의견을 표명한 것에 대하여 중앙행정부서가 승인결정을 내리는 것은 국민을 도박산업에 몰아 넣고 지역주민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돈벌이에만 눈이 먼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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