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22일에 ‘진실, 화해를 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가 공식 출범하였다. 오랜 진통 끝에 탄생한 위원회인 만큼 기대가 크다. 이 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들을 따지자면 수없이 많을 것이다. ‘해방 이후 국가폭력 피해자 모임’이라는 단체는 여운형 암살, 진보당 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형 등 16개의 사건을 진상규명해 달라고 공동 신청을 했다고 한다. 이런 사건들을 다 다룰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진화위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화위가 해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나는 오직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만이라도 제대로 다룬다고 한다면 큰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시기의 민간인 학살은 원주지역에서도 발생하였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 범국민위원회’가 작년 말에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원주지역에서도 한국전쟁 직후 원주형무소 재소자 180여명에 대한 학살, 그리고 문막읍에서 한국전쟁 기간 중 발생한  부역혐의자 20여명에 대한 학살, 반곡동 유만 마을과 횡성군 갑천면 동막골에서의 부역혐의자에 대한 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은 보도연맹원 관련자 학살사건일 것이다. 한 때 좌익 혐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을 한국전쟁 직후 한국 정부에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아무런 재판 절차도 없이 무자비하게 학살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발생한 가장 치욕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이후 50년 이상이 지나도록 이러한 학살에 대해 침묵해 왔고, 학살 자체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사실을 은폐해 왔다. 이 당시 학살된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은 그 동안 행방불명자로 취급되어 왔고, 또한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자라 하여 월북자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한 연좌제로 한 동안 그 유가족들이 입은 피해는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보고 싶지 않고, 감추고 싶은 일일지라도, 다시는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러한 자신의 과거와 대면해야 한다.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관련자의 반성도 이루어질 수 있고,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교육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빨갱이’ 혐의 하나만으로 아무런 증거도 없이 타인의 목숨을 빼앗고도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사유방식 그것을 청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현재 진화위의 규모와 인력은 다른 사건은 제쳐 두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만을 다룬다고 해도 턱 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구성되고 있는 모양이다. 50년이 지나서 이루어지는 과거사 정리가 또 다시 미진한 것이 되지 않도록 진화위의 규모와 인력을 대폭 확대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권 유린과 생명 경시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우리 사회에 남길 수 있도록 말이다.

공제욱  상지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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