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국어는 일본어를 의미하였다. 국사는 당연히 일본사를 의미하였고, 국악은 일본 음악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해방이 되어 나라를 되찾게 되자 한국어를 국어로, 한국사를 국사로 부르고, 한국 음악을 국악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어를 한국어라고 부르지 않고 왜 ‘국어’라고 하며, 한국사를 한국사라고 지칭하지 않고 왜 ‘국사’라고 하는지, 또한 한국 음악을 ‘국악’으로 부르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해 반성적으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는 별로 없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역사이기 때문에 한국사는 ‘한국’이라는 고유명사 대신에 ‘국’이라는 보통명사를 붙여 ‘나라의 역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이러한 용어 사용법은 국가주의의 성격이 매우 강했던 일본에서 만들어진 용어를 반성 없이 그대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오랫동안 우리들은 ‘국민’학교를 다녔다. 일제 말기에 전시체제가 되면서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던 것인데, 이 이름에 대해 아무런 반성이 없다가 몇 년 전에서야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일제는 초등교육을 ‘국민’을 만드는 교육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매우 국가주의적인 사고를 했던 것인데,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반성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일제 시대의 국민은 ‘황국신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국가주의적 사고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는 일제시대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더욱 확대재생산된 것이기도 하다. 박정희 시대는 일본이 추구했던 국가주의적 부국강병을 이상적인 국가 발전 모델로 삼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일제시기의 “교육칙어”를 흉내 내어 “국민교육헌장”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 결과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외워야 했고,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국가주의의 사회 분위기는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이는 정치적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영역에도 광범위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에도 태극기를 휘두르고, ‘국가’의 명예를 드높였다고 생각하고, 다른 나라와 축구 시합이 벌어졌을 때에도 ‘국가’의 명예를 위해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너무 편리하게 ‘국익’을 거론한다. 이라크 파병도 ‘국익’을 위해서라고 하고, 다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것도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와 관련한 MBC의 ‘PD 수첩’ 사태에서도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국익’이 거론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국가주의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가 허위 자료에 기초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연구를 위한 난자 채취 과정에서의 윤리 문제나 연구의 진위를 둘러 싼 문제제기에서 ‘국익’을 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국익’을 위해서는 윤리 문제도 덮어두어야 하고, 진위에 대한 문제제기도 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러한 국가주의의 그림자는 언제쯤 사라질 수 있을까.

◇공제욱 (상지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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