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순 (전 원주여성민우회  사무국장)

공교롭게도 살면서 한 번도 사립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었다. 딱 한번 고등학교 시절, 학교 체육대회 때 가장행렬을 잘 해보려는 욕심에 풍물복과 풍물이 필요했고 마침 관내 남자고등학교에 풍물반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 무턱대고 반 아이들 몇 명과 남학교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난데없는 여학생들의 방문을 받은 남학교 아이들의 난리굿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지만 더욱 기억에 남는 건 교무실 풍경이었다. 우리 학교의 무겁고 근엄한 교무실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활기가 넘치는 듯 했다.
특히 무게 잡지 않고 농담도 잘 하시는 젊고 친철하신 선생님들이 많아 비록 목적했던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우린 모두 사립학교는 선생님들이 모두 젊고 활기차다는 일반화의 오류를 진실인 것처럼 여긴 적이 있다.
이러한 나의 선입견은 사립학교의 부정과 부패, 비리가 사회적으로 불거지고 여론화 되어지는 과정에서 여지없이 부서지고 깨질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우리 지역에 있는 상지학원의 문제를 지켜보면서 국가가 일방적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국가의 지배이념을 강요하기 위한 도구로 학교 교육을 이용하는 부정적 측면이나 한 개인이 자신의 돈을 투자해 학교를 설립하고 그를 통해 교육자라는 명예를 얻고 돈벌이를 하는 수단으로 학교를 도구화하는 문제나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방자치의 핵심이 지역문제에 대한 주민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는 것이듯 사학 자율성의 핵심은 교육주체인 학생, 교사, 교수들에게 자율이 보장되고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학의 설립자가 학교 설립을 위해 재산을 출연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회적 기부 행위로서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출연행위가 설립자나 그 후손에게 학교를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마음대로 경영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어디까지나 공공의 재산이며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을 지칠 줄 모르고 벌이고 있는 곳이 바로 상지학원이다. 어릴적 원주에 상지학원이란 존재를 잘 모르고 지났으나 요즘 상지학원은 내가 사는 원주의 또 다른 자랑꺼리가 되었다.

전국의 수많은 대학이 사학비리 문제로 몸살을 앓고 학교 구성원과 재단과의 싸움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지학원은 학생, 교수, 직원, 시민사회의 끈질긴 노력과 헌신으로 사학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라 언론에 자주 나오는 내노라 하는 교수님들이 상지학원에 계시고, 전국구 인물들이 관선이사, 정이사를 하고 있고, ‘싸우며 공부하노라’하는 전투적 구호처럼 일만 생기면 언제나 맨 앞에서 학교를 지키고 있는 학생들, 매월 기본금의 10% 가까이를 군말없이 또박또박 떼어 발전기금을 마련해 가고 있는 교수와 직원들, 누구보다 학교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문들, 대학운영의 새로운 모델을 몸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사회 제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 활동을 벌여 나가는 시민운동이 지향해 나갈 길을 앞서서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이다. 지역주민이 되어 박수만 치고 있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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