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욱 (상지대 교수)

개화기 때부터 미국은 한국인들에게는 구원자, 시혜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미국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의료, 교육활동 등으로 도움을 주고 소수의 미국 유학생이 생겨나서 미국의 소식을 전하면서 미국은 우리 사회가 쫓아가야 할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일본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은 시기에도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본이 아니라 서양이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델이라고 생각하였고, 서양 중에서도 구체적으로는 미국을 모방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이렇게 지난 100여 년간 미국은 우리에게 모델이 되어 왔다. 그 영향이 매우 컸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미국의 정신적, 문화적 식민지였다고 할만 하다. 따라서 1980년대에 한국사회에서 반미 구호가 처음으로 터져 나왔을 때 한국 사회에서 드디어 미국으로부터 탈식민화가 시작되었다고 평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의 문제는 그 동안 많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의 남동부를 휩쓴 다음에 미국이 보여 준 모습처럼 그 문제가 총체적으로 드러난 경우도 드문 것 같다.
카트리나는 매우 강력한 허리케인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이 치명적인 허리케인 앞에서 대피령을 발동하였을 때 대피하지 못하고 집에 남았거나 슈퍼 돔 등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고, 흑인들이었다. 미국의 계층 문제와 인종 문제가 뉴올리언스의 슈퍼 돔과 컨벤션센터 등에 모인 사람들에 집약되어 드러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허리케인 때문에 도시의 치안이 마비되자 바로 상점에 대한 약탈을 자행하였으며, 방화와 강간도 불사하였다. 이것은 미국 사회의 계층 문제가 단순한 부의 불평등 문제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사회 균열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서로 계층적으로 분리된 사람들 사이에 공동체 의식보다는 개별화된 적대감이 더 큰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재난을 맞이하여 미국 정부가 보인 대처 능력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수만 명을 슈퍼 돔 등에 피신시키면서 음식물과 물 등의 기본적인 구호 물품도 갖추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후 생존자 구출 작업과 구호물품 조달 등에 보인 미국 정부의 대응도 더디게만 보였다. 이는 심각한 관료주의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 비용 때문에 제방 보수와 유지비용이 삭감되었다는 기사는 과연 미국이 무엇을 위하여 전쟁을 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전쟁을 일으키고 남의 나라를 지배하고자 하면서 정작 자기 나라 내부의 재해 대비마저 제대로 못하여 수천 명의 사망자를 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또한 치안 유지와 생존자 구출을 위한 주 방위군 투입도 이라크에 파병한 군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니 하나의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구조적 모순이 총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여전히 강력한 나라이며, 장점도 많은 나라이다. 하지만 앞에서 열거한 사실만으로도 더 이상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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