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역연고의 유명 프로농구 선수에 의한 여고생 성폭행 사건과 조사과정에서 검사에 의한 피해자 인권침해 여부는 그렇잖아도 무더운 날씨에 짜증을 더하고 있다. 성폭행에 대한 고소, 피해자 가족의 인권위 제소, 여성단체의 성명서 발표, 무혐의 발표, 법무부 여성정책 담당관의 원주 방문 등 며칠 사이에 숨가쁘게 진행되어 온 사건과 함께 무성하게 피어오르는 설왕설래 많은 논란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이중적 성규범과 성차별적인 남성중심적 성문화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마음이 편치 않다.
‘서로 좋아서 한 거 아니냐’ ‘돈 뜯어내려고 하는 꽃뱀이다’ ‘잘 나가는 창창한 선수를 망치려고 한다’ ‘여지껏 있다가 이제와 문제제기 한다는 건 다 돈이 원인이 아니냐’는 등 프로농구 관련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댓글들은 비단 농구를 좋아해서 농구 잘하는 선수를 좋아하고 그래서 농구선수를 일방적으로 편들고 싶어하는 일부 네티즌들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남성의 성충동은 당연한 것이므로 여성이 자신의 성을 지키지 못한 것은 스스로의 잘못이라는 남성중심적 성의식은 피해자에게 오히려 책임을 묻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여성에 대한 순결이데올로기는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에 더해져 성문화가 개방적이고 자유로와졌다는 오늘날까지 여전히 ‘더럽혀진 성’으로 낙인찍히게 되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지켜야 할 ‘정조’를 강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남성중심적 성문화와 여성에게만 강조되어지는 순결이데올로기는 사회통념으로 작용하여 수사과정이나 소송과정 전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성폭력피해자가 또 다시 2차 피해를 겪게 되고 인격을 침해당한다는 사실은 이미 공론화되어 있다. 지난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력 사건 당시 경찰의 비인격적 수사과정이 불거져 나온 것은 사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고소한다는 것은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사회적 시선과 맞서 이후 벌어질 수 많은 불이익을 감내할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성폭력범죄 신고율이 6.1%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시 사법기관이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나, 정말 강간이 발생했나, 화간이 아닌가, 저항을 얼마나 했는가” 하는 등 피해여성의 경험과 시각이 배제된 남성중심적인 ‘피해자다움’이라는 기준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고 강제성을 의심한다는 것이다.
강간 피해자가 어느 정도 저항했는가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강간 당시 정황에 따라 다른데, 다양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물리적인 개념으로 폭행과 협박의 정도를 해석하는 것은 여성에게 죽음을 불사한 저항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죽음을 불사한 저항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적 보호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과 국가가 성폭력에 직면한 여성들에게 목숨을 건 저항을 요구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다.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검찰이 대질신문조차 저어하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현장검증이라는 이름으로 2차 피해를 가한 것은 명백한 범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양여중생 사건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위의 사법기관에 의한 성폭력피해자의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네티즌들과 원주시민들이 왜 침묵하는지 너무 궁금하다.
.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루 8분만 해도 살 빠진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