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욱  (상지대 사회학 교수)

최근 몇 년 사이에 자살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유난히 많았다. 유명인의 자살 소식도 많았고, 그 영향 때문인지 성적을 비관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자살을 비롯하여 경제적 문제로 인한 일반 서민들의 자살 소식까지 그 빈도가 이 전보다 많아진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자살은 수많은 개인적인 사연들이 원인이 되고 또한 심리적, 정신적 원인이 크기 때문에 순전히 개인적, 정신적 요인들이 자살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자살은 오래 전부터 사회학의 주제가 되어 왔다. 이에 대해서는 뒤르켐(Durkheim)이라는 사회학자의 고전적인 연구가 있다. 조금 딱딱한 얘기이지만 여기서 뒤르켐의 얘기를 간략하게나마 해보려 한다. 뒤르켐은 개인들이 지나치게 고립되어 있는 집단이 자살률이 높다고 보았고, 이와 반대로 개인들이 사회집단에 지나치게 밀착되어 있는 집단도 자살률이 높다고 보았다. 꿈 많은 처녀, 총각들의 자살은 전자에 해당하며, 요즈음 이라크에서 많이 일어나는 자살 폭탄 테러의 자살은 후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뒤르켐이 가장 관심을 갖고 분석했던 자살은 아노미(Anomie)적 자살이라는 것이었다. 뒤르켐은 자신이 살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프랑스 사회도 아노미적 자살이 팽배했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아노미란 무규범 상태를 말하는데, 뒤르켐이 관심을 두었던 것은 개인의 상태가 아니라 사회의 상태였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자체가 사회를 지탱해 주는 규범이 무너진 상태에서 자살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서양의 전통 사회에서는 기독교 규범이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더 이상 기독교 규범은 과거와 같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신할만한 규범은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유교 규범이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었지만, 유교 규범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지 이미 오래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신할만한 사회적 규범이 생겨나지 않았다.

모든 자살 소식이 다 안타까운 것이지만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 더욱 착잡해진다. 한국의 중·고등학생들의 자살을 뒤르켐의 방식으로 분석한다면 세 가지 자살 유형이 중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학 입시와 성적에 시달리는 측면에서는 사회집단에 지나치게 밀착된 것이 원인이 되는 측면이 있고, 진정한 친구나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동아리 활동 등 유대 활동이 드물다는 측면에서는 지나친 고립이 원인인 측면이 있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아노미적 자살의 측면이다. 한국 사회 자체가 아노미의 문제를 갖고 있지만, 학교도 그러한 문제에 전혀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학교가 학생들에게 사회적 규범을 갖게 하는 방법은 청소년이 되면서 각자 자신의 인생관, 세계관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철학 교육, 윤리 교육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학생들은 암기 위주의 입시에만 매달리고 있다. 언제 가능해질지 알 수 없지만 우리도 프랑스의 바깔로리아처럼 대학입학 자격시험에서 논술식 철학 시험이 제일 중요해지는 때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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