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정순 (전 원주여성민우회 사무국장)

아주 오래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아버지는 큰 기침 소리 하나로 집안을 다스렸다. 가장으로서 모든 식솔을 통제하고, 그 가장의 권위에 도전할 때 가차없는 폭력이 이루어지며, 그런 폭력은 가족의 일로 은폐되거나 가장이 알아서 할 일로 치부된다.
그 가장의 권위는 때때로 자신의 부모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그리하여 부모가 구타를 당하는 상황이 발생되기도 한다. 가장이 가족내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였으며, 그런 가장에게 가족은 그의 소유물이었다.

그런데 최근 여성부는 2004년 9월~12월까지 전국 가정폭력실태를 조사했다.
부부폭력 뿐만 아니라 아동과 노인을 포함하고 전국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첫조사였다. 6가구 중 1가구가 배우자에게 맞고 산다고 했고, 신체적 폭력 뿐만 아니라 정신적, 성적 폭력까지 포함하면 비율은 훨씬 높아져 6천여명 응답자의 44.6%에 달한다. 특히 심한 폭력의 경우 남성이 여성에 비해 3배 이상 높고 여성에 의한 남편 폭력의 대부분은 남편의 폭력에 대한 방어적 차원에서 행사되는 것으로 나타나 가정폭력의 대부분은 남성에 의한 폭력임이 드러났다.

또한 아주 더 최근, 인근 강릉에서 여중생이 아버지를 목졸라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구속이후 언론에 드러난 이아무개양의 일기 내용과 주변 친지들의 이야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살인적 폭력에 가족들이 고통받아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죽고 싶을 만큼 아버지의 폭력과 행패에 시달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자가 오히려 아버지를 살해한 천륜을 거스른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도 학교도 지역사회에서도 아무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절망스러운 것은 알고 있었더라도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란 점이다.
자식폭력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정도가 좀 심한 다스림이었고, 부인없이 혼자 자식을 키우며 부모 모시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장의 술주정일 뿐이며, 남의 집안일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 진즉 신고해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고 안타까워 하지만 ‘효’를 위해서는 심청이처럼 목숨까지도 받쳐야 하는 한국사회 속에서 그녀는 ‘아버지를 고소한 패륜아’가 되었을 것이며, 폭력이 일상화되고 무감각한 사회에서 부모를 신고할 만한 수준의 폭력에 누가 공감해줄 수 있을 것인가.
가정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공간인가. 가부장의 살인적 폭력을 합법적으로 보호하는 공간인가. 은밀한 인권유린의 장소인가.
다가오는 가정의 달 5월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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