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삶의 잔해를 소각하며 쉴 수 있는 광장 없어 아쉬움

바람 부는 날이면 지하철을 타고 도시를 배회하는 시인이 생각난다. 그건 지하철이 있는 도회지의 얘기다. 머리 무거울 때마다 나는 길카페가 있는 행구동을 찾는다. 종이커피 한 잔 뽑아들고 연극용 소품같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면 원주가 내뿜는 도심의 불빛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름밤의 행구동은 더운 머리를 식히기에 좋다. 관음사 쪽에서 공짜로 쏟아지는 바람을 등에 지고 앉으면 복잡한 상념도 일순간에 구조조정된다.


제헌절을 맞이하여 집집마다 국기를 달라는 아파트 구내방송이 사적 공간의 적막을 여지없이 깬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인 여당대표가 검찰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평창올림픽 유치 실패가 김 아무개와 관계있다는 국회 특위의 결론이 내려졌음에도 나라 안은 조용하다. 원주도 조용하다. 평창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저항이 있었으나 그냥 수그러드는 모양이다. 진실의 실체도 일련의 이해관계 위에서만 조정된다. 우린 역시 진실로부터 120킬로미터 도는 90분 이상 떨어져 살고 있다. 좁혀 지지 않는 서울과 원주의 지리적 거리만큼 말이다.


영화관에서 본영화와 관계없는 광고를 많이 상영한다고 극장주인을 고소한 젊은이가 있다. 그가 요즘 시대에 맞는 영웅이다.


자기 주장을 공론화 할 수 있는 조직을 갖지 못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다. 이런 청년을 통해 넓은 플래카드와 집단적 의사에 묻혀버리는 작은 주장들이 설 자리를 찾아야 한다.


자기의견을 가진 이런 청년이야말로 무심코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다.

대중 가요 한 곡조 불러도 스스로 공인으로 자처하는 세상이다. 그에 비한다면 보편적 의미의 공인들이 가졌던 권위와 역할은 많이 무너졌다. 공인이라는 말처럼 역겹게 들리는 말이 없다. 거기엔 강제된 권위 혹은 권력에 빌붙는 완장의식이 보이기 때문이다.


보라. 하다못해 아파트부녀회장에게도 잡상인들의 입출을 제어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권한은 쓰임에 따라 권력으로 변질된다. 어딜 가나 완장과 명함에 굶주린 사람들이 많다. 총론보다 각론이 복잡하고, 중앙보다 지방이 야릇하고, 본부보다 지부가 어지러운 것도 무릇 권력의 지방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양태들이다. 외국의 어떤 대학총장은 자전거 타고 출근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총장이 출근하면 휘하들이 도열하여 인사하고 자동차 문을 여닫으며 영접한다.


저녁마다 원주종합운동장 트랙을 묵묵히 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을 위해서든 트랙을 도는 사람들의 물결은 엄숙한 자기수행이다. 운동장 주변에선 인라인스케이트의 행렬이 이어진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젊음들이 자발적으로 집결했는지 놀랍다. 그러고 보면 원주엔 단계택지와 같은 도락의 밀실은 있는지 모르되 정치적 권력과 소문의 외방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이 삶의 잔해를 소각하며 즐기거나 쉴 수 있는 광장은 없다. 장미공원도 ‘장미’의 공원이지 시민의 공간으로는 아쉬움이 많다.


바람부는 날이면 지하철을 타고 마음을 쉬는 시인처럼 중앙과 지방의 다양한 권력과 가짜 진실로부터 시달리는 원주시민들도 마음 눕히고 쉬는 정서적 공간이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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