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세 현 (상지영서대 문예창작과 교수)

문화가 없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사는 것이 아닌가? 라는 강한 회의가 표백된 우리 학과 학생의 독백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을 본 순간 나는 선생으로서 측은지심이 발동되었다. 흔히들 대학에 입학하여 일말의 부적응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 경우도 거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여겨졌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대학에 입학하여 무엇엔가 집중하고 매진하리라 여겼는데, 막상 몰입의 대상을 찾지 못해 허둥거리다가 개처럼 게을러지려 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성 발언이었다.


학과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볼 때 선생의 심정은 딱하다.

특히 적성이 맞지 않아 갈등하는 학생보다는 자신의 관심사가 분명하지만 그것을 북돋울 조건과 배후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학생들을 볼 때 선생의 심중은 그야말로 복잡하고 적막하다. 우리 과에는 올해 좀 특별해 보이는 두 명의 학생이 들어왔다. 학과가 글쓰기 학과인만큼 대개의 학생들은 문학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입학하게 된다.


그런데 두 명의 학생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랩을 하겠다는 것이다. 처음엔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워낙 랩은 음악의 한 부분이라는 나의 무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자면, 모든 노래에 가사가 있고, 그 가사는 다소간 시적 영감에 기대고 있다는 쪽에 미치자 문예창작과에서 랩을 시도하겠다는 그들의 생각이 영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랩을 하겠다는 그들의 당차고 야심찬 꿈을 우리 학과가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내게는 있다. 누군가 그들의 꿈을 받아들일 현실적 배후와 판을 만들어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이 쓰여지고 있는 순간에 전주에서는 제4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다. 생각만 해도 부럽다. 전주, 부산, 부천 등지의 도시에서는 매년 영화제가 열린다.

의정부시에서는 시승격을 자축하기 위해 뮤지컬 공연을 기획하고 있는데 원주시에서는 시청사 이전 문제로 왈가왈부가 지속되고 있는 걸 다소간 적막해 진다. 욕심같아서는 원주에도 그런 문화적 이벤트가 왕성했으면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원주에서 락 페스티벌, 독립영화제 같은 행사가 열릴 수는 없는 것일까? 매년 이미자나 나훈아 또는 한물 간 가수들을 불러다 주부 중심으로 벌이는 공연들을 접할 때도 역시 스산한 심정에 직면하게 된다.


누가 와서 어떤 공연을 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만, 장차를 도모하고 기획해야 할 청년들이 그들의 꿈을 키워낼 수 있는 배후가 없다는 것은 쓸쓸하다. 그렇게 보자면, 원주는 군대 혹은 저항성을 주축으로 하는 도시이미지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문화를 축으로 하는 유연성의 도시이미지 구축에는 아무런 관심도 성취도 없어 보인다. 문화가 없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비트 위로 흐르는 시’와 같은 랩을 창조하겠다는 우리 과의 젊은 친구 그리고 문화를 핑계로 자신의 미래를 디자인하고 있을 원주의 모든 불온하고 고운 젊은 피들에게 한 마디 남겨 둔다. 이 5월의 싱그런 힘을 빌어 그대들이 원주의 문화적 진보와 전위가 되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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