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앙 정부의 어느 위원회에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아는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어 “이거 관변 학자 같아 좀 쑥스럽군요.” 했더니 그 분은 의외로 “요즘도 그런 용어를 쓰나요?” 하고 되묻는 것이었다.

사실 ‘관변’이란 용어는 사전에 관청과 관계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군부 권위주의 정부가 통치하던 때는 ‘군-관-민’이 사회의 질서를 통칭하던 용어였다. ‘군-관-민 합동하여’라는 말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이 용어는 ‘민-관-군’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 사용되고 있다.


정치학에서는 통치(統治)와 정치(政治)를 구별하여 쓰기도 하는데 통치는 정책의 집행과 관련되는 반면 정치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의사의 상향적 흐름을 보통 일컫는다.
권위주의 정부는 자연 정치보다는 통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도 보다 효율적이기 위하여 조합주의적 통제를 가하는데 필립 슈미터(P.C. Schmitter)에 의하면 조합주의 국가는 사회를 잘 조직하고 각 분야마다 2개 이상의 조직을 구성하여 소위 유인과 배제 전략에 의해 사회를 일사불란하게 통제한다고 한다.


즉 여러 가지 유인책을 제공하여 친정부적 단체를 끌어들이고 반정부적 단체는 배제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난 과거 정부도 예외가 될 수 없는데 아마도 사람들이 ‘관변’이라는 말을 꺼리는 것은 그러한 유인 내지는 속된 말로 미끼와 관련지어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관을 꺼리는 이러한 현상은 좀 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의 식민 통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관에 잘못 보였다가는 큰 탈이 날 것 같아 관청 문턱만 넘어서면 굽실거리고 또 돌아나와서는 퇴퇴거리던 것이 우리의 역사적 관행이 되어왔던 것이다.

이러한 식민통치의 잔재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정부 정통성의 부재와 맞물려 정부를 반대하는 것은 일단 선명성을 인정받는 것이 되었다.

한국 시민 사회는 그야말로 ‘권위에 대한 전면부정의식(total negativism to authority)’이 그 기저에 깔려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특히 여야간 정권 교체 이후 우리 사회에는 여야에 대한 구분이나 사회의 주류 세력에 대한 논쟁, 정부와 시민 단체의 관계등 확실한 갈림축이 없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호성 속에서 아직도 지식인들은 날카로운 불신의 잣대를 가지고 금을 그어보려고 하기도 하고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가지려고 애써보기도 한다.


아직도 특히 정부 불신이 남아있기 때문인 것이다. 오랫동안 예속의 굴종을 맛본 사람들의 당연한 습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방 정부 차원에서는 그러한 불신의 선입관을 조금은 접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과거의 임명직 파견 관리보다는 정부의 대 시민 책임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선거는 실질적 책임을 담보하는 중요한 제도인 것이다.


우리 손으로 뽑은 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시민들을 위해 보다 좋은 결과를 낳는다면 멀리서 비판만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정부와 시민간의 합동 작업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것은 나쁜 결과를 막는 예방적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정부도 시민 사회의 선의의 자발성을 의지하고 행여라도 예전의 관변의 딱지를 붙이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김명숙

상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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