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수에 담가 핏물을 빼고 들통에 넣고 한번 끓여내고 하나씩 일일이 만져가며 기름을 떼내 깨끗해진 갈비를 갖은 양념이 들어간 간장에 재웠다가 푹 쪄내 푸른빛이 도는 우윳빛 사기 그릇에 담고, 그 위에 하얀 실백이나 황백 지단, 노란 은행과 깐 밤 한 두개를 살짝 올려놓고 뚜껑 덮어 놓는다. 그 뚜껑을 여는 순간 밥상의 품격은 바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
그런데 이 고상한 소갈비찜이 눈물 찍 콧물 쑥 나오도록 독하게 매운 청양고추로 만든 시뻘건 고추가루 다진 양념에 뒹굴더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이젠 교양 있고 얌전한 사기그릇 마다하고 사람 손 닿는 대로 찌그러지고 거뭇거뭇하게 그을린 양푼이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 이런 파격이 또 있을까. 이름하여 ‘양푼소갈비찜’(1인분 1만원)이 된 것. 대구 동신동이 원조라고 한다.
평원로 안쪽에 있는 금성식당에서는 바로 대구 동신동에서 수년간 양푼소갈비찜을 만들어 온 황성운 할머니가 그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혼자서 그 맛 그대로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로 예순 넷인 황 할머니는 30대 초반부터 15, 6년간 전국을 무대로 ‘끗발’ 날리던 요리 강사. 도시를 다니며 대형 예식장을 빌려 한달씩 요리를 강의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혼분식 장려 정책의 일환으로 나라에서 요리강사를 양성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황 할머니도 지원해 강사자격을 땄다고 한다.
예사롭지 않은 경력의 황 할머니 손끝에서 만들어진 양푼소갈비찜은 12, 3년 전 유명한 무교동 실비낚지집에서 낚지볶음을 먹어 본 이후 오래간만에 겪어 본 짜릿한 ‘혀의 대란’이었다.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맛 좀 봐야겠다 싶은 사람, 뭔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화끈’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
양푼소갈비찜 양념의 비결은 고추가루에 있다. 식당을 함께 하는 딸의 시가인 경북 영주서 농사지은 청량고추를 사와 식당에 펼쳐 놓고 직접 다듬고 빻아 사용한다. 고추장은 하나도 넣지 않고 고추가루에 갖은 양념을 하는데 갖은 양념의 내용물은 전혀 알 길이 없다. 갈비는 살이 연한 송아지갈비를 사용하는데 할머니가 새벽마다 직접 나가서 보고 구입해 온다.
두텁게 썬 무를 바닥에 깐 양푼에 희끗희끗 저민 마늘이 보이는 고추가루 양념을 무친 소갈비가 담겨 나온다. 휴대용 가스렌지에 얹어 놓고 다 먹을 때까지 불을 끄지 말아야 제 맛이 난다. 뜨겁고 매우니 입에서 불이 날 수밖에. 그래서 밑반찬으로 불을 꺼줄 소화기 2대, 동치미와 백김치가 같이 나온다.
동치미 국물은 한 입 떠먹는 순간 ‘이야~’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난다. 혀 양끝을 자극하는 동치미 특유의 쌉쌀함과 천연재료에서 흘러나온 달착지근한 맛이 어우러져 갈비찜은 잊어 버리고 동치미 국물만 냅다 떠먹게 된다. 백김치는 갈비찜을 싸서 먹으면 좋을 정도의 폭으로 쪼개져 포기째 나온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포기로 내놓는다고 한다. 싸 먹고 떠 먹고 하다 보면 갈비찜은 사실 별로 맵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번 달부터는 동치미 국물에 봉평산 메밀로 뽑아낸 국수를 만 동치미 막국수도 맛볼 수 있다.
금성식당은 맛도 맛이지만 요리에 대한 할머니의 정성이 남다르다. 황 할머니는 식당을 열기 전에 사람들이 잘 먹는 반찬은 뭔가를 알기 위해 반찬 장사, 야채는 어떻게 골라야 하고 또 누가 믿을 만한 상인인가를 알기 위해 야채 장사, 고기는 어떤 게 맛있고 어떻게 숙성시켜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고기 장사를 3~4개월씩 했다고 한다.
정육점은 식당 옆에서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또 음식은 물맛이 좌우한다는 신념으로 시내 약수터를 다 돌아 다닌 끝에 찾아낸 물로 밥, 동치미, 된장 등 일체의 음식을 만든다. 양푼에 끓인 된장찌개 맛도 일품. ▷문의:735-7892
<김보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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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8분만 해도 살 빠진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