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패 모두골의 ‘방랑시인 김삿갓’을 보고

김기봉 (시인·문화관광부 지역 문화진흥법제정추진위원장)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그러나 우리에겐 ‘김삿갓’으로 더 잘 알려진, 조선 후기시대의 시인이다.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의 난에서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다.

후일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받기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어 살았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김병연은 조부를 조롱하는 시제인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로 장원급제하였다가 집안의 내력을 알고 난 후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에 오른다.

풍자와 해학으로 잘못된 세상을 조롱하면서 한 평생을 구름과 바람 그리고 산천을 벗 삼아 산 음유시인이다. 서양에서는 음유시인을 어릿광대라 한다. 그의 일생과 작품이 광대패 모두골에 의해서 연극무대 위에 올려졌다.

아직은 평생이라 이야기할 수 없지만 역시 전국을 무대 삼아, 20년 가까이 풍자와 해학으로 놀이판을 만들면서 민중과 함께 웃고 울어온 광대패 모두골. 모두골과 김삿갓은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작품 속에서는 단지 ‘김삿갓’이 연극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방랑시인과 광대가 만나,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여전히 시대를 풍자하고 있다. 액자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서구적 연극 양식이지만, 끊임없이 그들은 객석의 관객을 의식한다. 그래서 객석에서 배우가 입장하고, 객석의 불이 켜지며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한다. 그들은 돈과 명예, 지위보다는 관객들의 반응을 먹고 산다.

최근 대학 입시 수능시험의 부정인 휴대폰과 무전기까지 그래서 대사에 등장한다.
극 중에 김삿갓의 풍자시의 압권인 훈장 욕설시가 등장한다.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번역의 내용은 별 것 아니다. “서당에 일찍 와서 보니 방안에는 모두 존귀한 사람들일세, 학생은 열명이 못되는데 선생은 와서 보지도 않네” 이 시의 가치는 훈독(뜻)이 아니라 음독(소리)이다. 우리 말로 읽다보면 저절로 웃음이 난다. 김삿갓의 시어는 놀이성을 띠고 있다. 그의 욕설과 육담은 당대의 민중의 언어 놀이였다.

즉 김삿갓의 시와 놀이패 모두골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언젠가는 만나도 만나야 될 인연이다. 이삿갓, 저삿갓도 아닌 김삿갓. 극단도 놀이패도 아닌 광대패.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보았다. 나는 내년에 이 작품을 올린다면 또 보러 올 것이다.
극단 노뜰의 ‘동방의 햄릿’과 광대패 모두골의 ‘방랑시인 김삿갓’은 전국에서 알아주는 문화상품이다. 세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광대가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인가? 앞으로도 계속 공연되길 희망한다.

더욱이 두 단체 그토록 소망하던 그들만의 공간을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니, 축하할 일이다.
그나저나 궁금한 것이 있다. 외부에서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노뜰의 ‘동방의 햄릿’과 모두골의 ‘방랑시인 김삿갓’을 원주시장은 과연 보았을까? 빈 좌석을 보면서 든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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