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진 (문화유산 해설사)

물질의 풍요가 가끔씩 정신의 빈곤을 낳을때가 있다.

정신이 빠진 물질의 풍부함은 일견 풍요로운듯 보이나 매우 위험하여 퇴폐 향락으로 빠지기 십상으로 역사적인 예로 로마제국의 멸망을 들 수 있으며, 물질의 빈곤속에서도 나름의 가치관이 용해된 정신의 풍요로움으로 인하여, 많은 사회학자들이 21세기의 대안으로 고유한 가치관에 바탕한 인도의 정신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전에 신문지상을 통하여 태장동의 현충탑 재정비 소식을 알게 되었다.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고, 위대한 업적과 숭고한 가치를 후손들에게 교훈으로 삼기 위해 조성된 현재의 현충탑을 볼때마다 나는 답답하기만 하였었다.

탑은 오래되어 균열이 가고 퇴락하였으며 가파른 계단으로 정상인마저도 오르기가 어려운데, 참혹한 전쟁터에서 나라를 지키다가 장열하게 산화한 호국영령들이나 고령화 되어가는 참전 용사와 그 유족들의 심정이야 어떠했을까?

급속히 발전하는 시대상황에 동떨어진 잊혀진 광장으로 쓸쓸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물질만능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진 우리의 자화상같아 한없이 부끄럽기만 했다.
만시 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새롭게 재 정비된다고 하니 가뭄 속의 단비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요즘 국가의 정체성 논란으로 나라 안이 어지럽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집단의 성격을 규정짓는 정체성 문제만큼 근원적이고 중요한 물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껏 방치하다가 뒤늦게 끄집어내다 보니 혼란스럽게만 보인다.

항상 되새겨 보며 이를 바탕으로 내일을 설계하여야 했으나 우리는 그러하지 못했다. 목전의 이익이나 편리한 물질적 욕구를 해결하느라 허겁지겁 살다보니 중요한 정신적 가치를 간과하게 되었고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고장도 예외가 아니라면 이 기회에 다시 한번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충탑을 재정비하면서 말이다.

일관된 계획없이 문제의 필요성이 있을 때마다 미시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도시의 여기 저기에 기념물이 산재하게 되었고 그 본래의 취지와 목적은 적극적으로 발현되지 못하고 바쁜 일상 속에서 외면되기 십상이었다.

호국 충절의 고장이라는 우리의 정체성에 동의한다면 현충탑 재정비를 계기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몽고 합단적의 침략과 원충갑 장군, 임진왜란시 원호 장군과 김제갑 목사, 일제 강점기를 전후한 윤기영, 민긍호 의병장의 투쟁, 그리고 많은 원주인들의 적극적인 독립만세운동의 전개, 처절한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과 우리고장 원주의 역할 등, 국난을 당할 때마다 외침에 분연히 일어나 이 나라 이 고장을 지켜온 수많은 선현들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빛나는 업적들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전시하는 기념관이나 조형물을 설치하자.

이 분들의 업적에 걸맞는 추념과 선양의 장이 되는 호국공원이 되기를 바란다.

그 후손이나 유가족, 현재 생존해 계신 참전용사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이지역의 후손들이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즐겨 찾고 사랑받는 시민공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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