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선
농협 원주시지부 과장


4월 1일 그동안 말도 많았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었다. 농업의 위기가 드디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농산물 시장은 쌀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면 개방이 되었고 쌀 관세화 유예도 금년으로 끝이나 내년부터 쌀마저 수입이 된다면 농업인들은 정신적 공항 상태까지 이를 것이라 하고 있다.


이렇게 농업의 내외부에서는 절망적인 말만 들리고 있는데 과연 우리 농업에 희망은 없는 것인가?


농업전문가들 누구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우리 농산물은 세계에서 최고라고 한다. 기후와 토질 등 농산물 생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신선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우리 농산물은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고 우리 농업에도 희망이 있다는 것인데 경쟁력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면서도 왜 우리는 FTA체결을 두려워하고 시장개방을 걱정하는가?


지난 3월 11일 허신행 전 농림부장관은 강원도내 시군 유통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생산에는 성공하고 있는데 마케팅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으면서도 상품화와 유통에 실패해 지금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주도 예외가 아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된 속박이 등 상품화 저해요인이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으며 서울과 불과 한시간 거리인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규모화가 되지 못해 서울 시장에 출하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농업부문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지만 생산부문에 집중되고 마케팅에 대한 투자와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원주 농산물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산지 공동마케팅 조직 육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산지 공동마케팅이란 농업인은 농업인대로, 작목반은 작목반대로, 농협은 농협대로, 따로따로 가는 농산물 유통을 한군데로 모으자는 것이다. 농업인은 생산에만 전념하고 상품화, 홍보, 판매등 마케팅 전 과정은 공동마케팅 조직에서 처리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일본이나 유럽 등 선진국 사례에서 많이 듣고 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이런 공동마케팅 조직을 육성하고 있는 자치단체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우리 원주도 다른 지역과의 경쟁에서 밀리기 전에 이 시스템을 빨리 구축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 산지공동마케팅 조직을 육성해야 하는가? 첫째 원주 농산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필수라는 것이다. 지금 원주 농산물 유통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상품화 부분인데 이 상품화는 공동선별이 전제가 되어야 가능하다.


둘째, 농산물의 규모화를 위해 필요하다. 규모화가 되면 시장교섭력이 생기게 되고 지금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셋째, 관례적인 유통에서 탈피해서 유통경로를 다양화해 보자는 것이다. 최근에 대형마트나 홈쇼핑 등 신유통의 등장에 따라 농산물 유통시장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유통방식으로는 이 변화에 대응할 수가 없으며 오직 공동마케팅 조직만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농업인은 생산만하고 판매는 신경 쓰지 말게 하자는 것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들에서 일하는 것도 힘든데 그 농산물을 새벽에 일찍 일어나 새벽시장에 내다 팔고 거기서 다 팔지 못하면 다시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지 공동마케팅의 최종 목표는 시장에서 가지고 있는 농산물 유통의 주도권을 산지가 주도하는 것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다른 지역과 연합해 전국적 조직을 결성하게 되면 가능하다.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농업인의 전폭적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공동마케팅은 무조건 위탁과 공동계산이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다른 곳에서 값을 조금 더 준다고 다른 곳으로 출하를 한다든가 공동계산을 수용하지 못한다든가 하면 이 사업은 절대 성공할 수가 없다. 당장의 눈에 보이는 이득만 따진다면 이 사업은 성공할 수 없고 원주 농업의 장래를 내다보고 당장의 작은 손해는 감수할 수 있다는 미래지향적인 의식이 필요하다.


토인비는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역경’이라고 말했다. 농산물 시장의 전면적인 개방으로 닥친 위기를 이제 기회로 만들어 농업을 절망적인 산업에서 희망을 주는 산업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이라도 경쟁력을 갖춘다면 지금보다도 더 좋은 미래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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