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숙<여성민우회 편집위원장>


첫 아이의 백일 즈음에 일을 다시 시작한 관계로 올해로 8년째 두 아이들을 개인 보모에게 맡기고 있고 두 아이 모두 5세부터 보육, 교육시설을 병행하고 있다. 그나마 개인보모의 손에서 벗어올 3월부터는 두 아이 모두 학원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취학 전에는 그나마 저녁시간까지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어 안심할 수 있지만 더 이상 개인보모에게 맡길 수 없는, 게다가 둘째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는 내년이 되면 둘 다 늦게 퇴근하는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하다.


여성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을 들라 한다면 단연코 ‘보육’이라고 말할 것이다. 보육시설에 보내도 오전 10시가 되어야 통학버스를 타는 경우도 허다하고 오후에는 2시, 종일반이라고 해 봐야 5시 전후인 경우가 많다. 이쯤되면 교육의 이념이나 시스템이 아닌, 시간을 중심으로 맡길 곳을 결정해야 하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벌어지게 된다.


새해부터는 적극적인 출산장려책으로 육아휴직이 확대되고 자녀출산 시 소득공제 확대와 육아휴직 급여도 월 30만원에서 월 40만원으로 확대된다고 한다.
또 만 5세의 보육비 지원 등등 화려한 말잔치가 눈에 들어온다. 어떤 지역에서는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셋째 아이 출산에 1백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생각하며 어떤 이야기이든 헛헛하긴 마찬가지이다.


2003년 하반기 원주시에서는 원주시 관내 어린이집 운영실태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우리 부모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법정저소득층 자녀에게도 보육료를 받은 곳은 4곳이나 되고 15개소가 보육아동의 정원초과, 9개소가 보육교사 부족, 13개소가 보육종사자들이 건강진단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9개소는 어린이 통학버스 미신고와 안전대피시설 미설치로 지적받았다. 얼마 전 대구지역의 모 보육시설에서 정원의 2배 가까운 아동을 수용하며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실태가 고발된 적이 있었는데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분노를 감출 수 없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는 속도에 비해 턱없이 느리기만 한 보육서비스와 질, 보육시설은 단지 아이들을 맡기는 곳이라는 저급한 인식과 현실이 빚어낸 당연한 결과이다.
게다가 육아와 보육은 여성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며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식으로 육아를 하찮은 일로 치부했던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결과물이다.


보육시설의 기반을 확충하고 육아서비스의 질을 높이며 보육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힘을 쏟지 않는다면 결혼은 물론이고 출산은 더더욱 하지 않겠다는 젊은 여성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여성들이 생명에 대해 무관심하며 이기적인 태도라며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양인데 이는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하며 보육에 사회적 힘을 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패턴 다양화로 인한 24시간 보육시설의 확충, 다양한 교육 수요에 걸맞는 보육시스템 개발, 양육비 부담을 덜 수 있는 국공립시설의 절대적 확충과 지원의 대폭 확대, 방과후 아동의 보육시설 확대 등은 당면한 과제이다.


이것은 이미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해서도, 단지 우리 아이들만을 위해서도 아닌, 고령화 사회를 앞둔 우리 자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뒤늦게나마 사회적으로 보육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을 퍽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이 또한 줄기차게 여성들이 외쳐왔던 성과일 것이다.


원주시에서도 백년 후를 생각하는 보육조례를 제정해야 할 것이며 보육시설 기반확충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음놓고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현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는가에 달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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