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메세지

나라가 온통 무슨 무슨 게이트 사건으로 아침이 열리고 저녁 문이 닫히는 나라, 아직도 게이트 사건은 미궁으로 혹은 은폐로, 혹은 도주로 신사년(辛巳年) 한 해가 문을 닫은 나라, 이젠 할 말도 다 잃고 그저 체념하듯 “ 해도 해도 너무 한다. 그 놈이 그 놈이지! … ” 이런 막말로 그 누군가를 향해 욕을 해대는 것이 고작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얼룩진 이 땅에 그래도 어김없이 임오년(壬午年) 새 아침, 둥근 해는 떠 올랐습니다.
우리들의 기대와 희망이 또 얼마나 좌절될지는 몰라도 여기 작은 꿈같은 소망 몇 가지를 그 누군가를 향해 띄워 보내겠습니다.


우리들의 대통령, 그 대통령이 한 마디만 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 있는 나라, 그런 지도자가 그립습니다. 정치인들이 화면에만 나오면 다이얼을 다른 채널로 돌이지 않고도 십 대 아이들이 환호하는 우상들처럼 박수갈채를 보낼 수 있는 나라, 그런 정치인들이 그립습니다. 떡값치고는 달동네 언덕 전세자금보다도 더 많이 받아먹는 높은 양반들이 없는 나라, 정말 이 나라에 기둥이 되고 백성을 위해 살신성인할 수 있는 그런 큰 인물들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현관문이나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도 잠들 수 있는 나라, 자동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하면서 누가 내 비밀번호를 훔칠까봐 흘금흘금 곁눈질을 안 해도 되는 나라, 핸드백을 옆구리에 끼지 못하고 앞에다 껴안고 걷지 않아도 좋은 나라,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기가 무섭지 않은 나라, 아아, 그리운 것이 너무 많아 배가 고픕니다.


고픈 배 더욱 고파지기 전에 더 많은 소망을 그 누군가를 향해 던지겠습니다. 무슨 자리인지는 자세히 밝힐 필요도 없지만 하여간 그 자리에만 올라가 앉으면 세상 보이는 것 없이 온통 세상 것이 다 제것인양 집어삼키는 통 큰 후예, 후예들, 감옥에 가는 것이 영광의 계급장처럼 된 나라, 대통령도 가고, 아들도 가고, 검찰총장도 가고, 장관도 가고, 국회의원도 가고, 사장도 가고, 가고 가고 또 가고 …. 그래서 초등학교 1학년 짜리 아이가 “엄마, 난 이담에 커서 잘 되면 감옥에 갈 거야! 그러면 훌륭한 사람되는 거지? 엄마!”라는 상상을 안 해도 좋은 나라, 그런 나라라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


장관이 바뀔 때마다 입시제도가 곤두박질치는 나라, 그런 와중에서 샌드위치처럼 갈팡질팡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선 교사와 학생들! 학생들만 실험대상이 되고 있는 나라, 그래도 대학가겠다고, 보내야겠다고 몰래 몰래 숨어서 혹은 도둑질하듯 일요일에 이웃 중학교를 빌어서 모의고사를 보아야만 하는 나라, 그런 나라에 지금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사교육비를 줄인다고 이상한 교육법을 제정하여 모의고사를 보게 하였다고 학교장을 징계하는 나라, 그리하여 아이들은 다시 학원에 가서 더 비싼 돈을 내고 모의고사를 몰래 봐야만 되는 나라, 그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질서! 질서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즐비한 차량들의 질주 속에서, 혹은 우회전 커브에서 얌체같이 세워 놓은 차 때문에 들리지도 않는 욕지거리를 차 속에서 혼자 씨부렁대지 않아도 좋은 나라, 그런 나라가 정말 그립습니다.
양심! 양심이 바로 서는 나라, 눈같이 흰 양심의 나라, 그런 양심만 살아 있다면 이렇게 그리워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양심은 바로 한 나라의 수준입니다. 그 수준은 또한 도덕적 질서입니다. 굳이 키에르케고르의 심미적실존, 종교적실존, 도덕적실존의 참 의미를 들먹이지 않아도 도덕적인 질서만 존중되는 그런 나라만 된다면 우리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다소 불편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행복해 할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 아침, 임오년(壬午年) 새 해는 그런 나라가 이 땅에도 서서히 뿌리내리기를 아아, 우리는 갈망합니다. 진정 그리워합니다.

이 영 춘(시인·원주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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