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운이 느껴지는 듯했던 지난 6일 오후2시. 죽음을 기다리는 방 앞에 섰다. 가로 세로 3m의 방에 뼈만 남은 앙상한 두 무릎을 가슴팍까지 끌어올려 꼬부리고 누워 있는 김영희 할머니(70, 가명, 췌장암). 표정의 변화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근육이 말라버렸지만 “할머니, 저희들 왔어요”하는 호스피스들의 인사에 잠깐 반가운 웃음이 떠오른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에게 점령당한 방에서 무겁고 칙칙한 죽음의 그림자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얼른 들어가 할머니 머리 맡에 자리를 잡고 앉은 윤은자씨(56)가 김할머니 담당 호스피스팀 팀장이다. 원주 C.C.C. 사랑의 호스피스 소속. 신앙인으로 봉사의 의무감을 늘 마음 한쪽에 가지고 있던 중 우연히 호스피스 자원 봉사자 교육 안내지를 보고 등록하여 교육받고 봉사를 시작한 지 올해로 7년째다. 7년간 윤씨의 손을 거쳐 저 세상으로 간 환자가 수도 없이 많지만 하나하나 다 머리에 남는다.


“딸을 둘 둔 남자 환자였습니다. 환자는 다리며 팔이며 다 말을 듣지 않아 너무나 흉하고 불편한 자세로 누워 있고, 가족들은 그저 말없이 빙 둘러 앉아 환자를 들여다 보고 있었어요. 한참을 팔 다리를 마사지하고 제자리에 놓아두자 얼굴이 환해지며 연신 ‘고맙다’를 했어요. 가족들은 그제서야 그렇게 해주는 거냐며… 급박했던 하루하루를 보내다 결국 4일 후에 눈을 감았어요.”


6명의 팀원 가운데 오늘 함께 한 이는 문경숙씨(44). 할머니 손을 잡고 연신 쓰다듬으며 볼에 비벼댄다. 호스피스 봉사 3년차라길래 “처음 봉사 나갔을 때 무섭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집에서 노인들을 돌보며 독거 노인 반찬 봉사등을 해왔어요. 그래서인지 그런 것은 없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들 옆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김할머니의 딸 이선자씨(가명)는 “간병인을 오래 썼어요. 그런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고, 어머니를 집에 모시고 오면서 간병인이 환자 돌보는 일 외에도 이일저일 하게 되니 불만도 좀 있는 것 같고 해서 호스피스를 받게 됐어요. 일을 하다보니 24시간 어머니 곁에 있어 드리지 못하는데 이분들이 계셔서 마음이 놓이고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원주 C.C.C. 사랑의 호스피스 실무책임자인 이영애 간호사(49)는 “호스피스는 치료할 더 이상의 방법이 없는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이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이하도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으로 도우며, 이들을 돌보는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경감시키기 위한 총체적인 돌봄”이라고 말했다. 이 간호사가 이불 밑에서 할머니의 발을 꺼내 마사지를 한 지 30여분 지났을까, 어느새 할머니는 팔다리를 쭉 펴고 편안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시겠어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맺혔던 관계를 풀고 화해하는 거죠. 호스피스 했던 환자 중에 아내와는 오래 전에 이혼하고 딸과도 사이가 썩 좋지 못했던 말기 환자가 있었습니다. 재혼에 실패하여 미국에 가 살고 있던 옛 아내와 딸을 어렵게 불러 화해시켜 드렸어요. 마음의 짐을 덜고 눈을 감았습니다. 관계의 개선 또한 호스피스가 하는 중요한 봉사입니다.”


함께 한 김미숙씨(49)가 “만나고 싶은 사람,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등등 환자가 삶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일은 다 해드립니다”고 거든다. 김씨는 병원, 집, 여인숙등을 다니며 봉사한 지 8년째. “모든 환자가 호스피스 봉사자를 반기는 게 아니에요. 얼마 전 4개월간 여인숙을 드나들며 자궁암 말기 할머니를 돌봤어요. 병원에서 퇴원하여 혼자 여인숙에 살고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어쩔 때는 가라고 소리 지르고 어쩔 때는 먹을 거 사가지고 오라고 그러고 사가지고 가면 안 먹겠다고 던져 버리고,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해 놓고… 겉으로는 거부해도 기다리는 눈치예요, 가만히 보면. 하루는 갔는데 숨을 몰아 쉬어 119 구급차 불러 병원에 갔어요. 거기서 임종했어요. 다행히 형제들이 보는 가운데….”


또 다른 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야기하며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죽음을 보면서 나의 삶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됩니다. 욕심을 버리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성숙해집니다.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권을 얻었다고 할까요?”








호스피스 유래


현대 호스피스 운동은 1967년 영국 여의사가 런던에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세움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로 이 활동의 필요성이 점점 크게 요구되면서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1968년에 처음 가정호스피스를 시작한 이래 현재 2천 개 이상의 호스피스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3년 강원도 강릉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14개의 병상을 갖춘 갈바리의 원에서 처음 호스피스 간호를 시작하였고, 현대적 호스피스 개념으로는 1980년 후
<김보경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