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 함 영기(원주고 교사)




@상황1 : 장자(蔣子)의 가르침에 고대의 큰 도둑, 도척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날 그의 부하 한 놈이 도척에게 물었다.

“우리 같은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습니까?”

“있고 말고, 어찌 우리에겐들 도(道)가 없겠느냐?”

“사전(事前)에 방안에 훔칠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의 유(有), 무(無)를 알아내는 것이 성(聖)이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고,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義)이고, 도둑질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지(智)이며, 도둑질 한 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인(仁)이라 한다.

성(聖), 용(勇), 의(義), 지(智), 인(仁) 모두가 너무나 소중한 가치이고 철학이다. 하지만 똑같은 물이라도 소(牛)가 먹으면 맛있고 유익한 활명수(活命水)인 우유가 되지만, 뱀이 먹으면 치명적인 독(毒)이 되듯이 성인군자의 가르침도 도둑놈에게 악용되면 위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염원하는 평화를 깨뜨리는 악도(惡道)가 된다.


@상황2 : 필자가 2000년 서울대학교에서 연수를 받고 있을 때 화장실에서 본 씁쓸한 낙서 한 구절,
“ ‘나’ 민족 고대생 , 설대 정치과 니놈들 나라 정치 말아먹은 놈들 자폭하라, 설대 경제과 나라 경제 망친 놈들 자폭하라.”

새해 첫날 아침부터 흉악한 도둑이야기와 명문대 학생들의 못난 헛소리를 늘어놓아 송구스럽다. 20여일 후에는 7천만 겨레의 국민들과 수많은 국내외 언론들의 주목을 받으며 노무현 정부가 희망과 기대를 외치며 출범할 것이다. 선생에게 있어 어떤 경우라도 생각은 늘 학생들과 학교에 가 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원주고 학생들 대부분은 학부모님들과 선생님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많은 기대를 받고 있고 무한한 잠재능력도 갖고 있지만 컴퓨터와 대중매체들의 상업주의적인 유혹이 워낙 강한 시대에 살고 있다보니 학업에 전념하지 않고 있다. 절대평가인 학교내신 성적을 위해 문제를 쉽게 출제해야 하고 아이들은 깊이있고 폭넓은 공부를 안 한다. 모의고사나 수능 문제가 조금만 어려우면 쩔쩔맨다.

난해한 문제를 붙들고 오래 씨름하여 해결하는 희열을 모른다. 아침 0교시부터 시작하여 9교시까지 수업을 받고 밤 10시, 11까지 자기주도학습(자율학습)을 일년 내내 하면서 각 과목별로 두꺼운 문제집을 몇 권씩 푼다. 떠 먹여 주는 밥만 먹고사는 바보처럼 난해한 문제를 자기 스스로 해결하는 열정, 집념, 창의력이 갈수록 부족해진다.

대학 교수님들을 만나보면 학생들의 학력이 매년 떨어진다고 한다. 장차 국가경쟁력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큰 생각, 넓은 마음, 심오한 철학을 추구하지 않는 천박(淺薄)한 공부가 대세인 오늘날의 학교 현장이 정말 걱정스럽다. 잠재력은 많은데 깊고 넓은 공부를 통해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는 학교에서 가르친 아이들이 잔재주만 있고 덕과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재승덕박(才勝德薄 - 재주는 있으나 덕이 없음)의 아이들만 양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울대 화장실의 낙서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얼굴과 동료 선생님들의 얼굴이 교차되면서 일년 동안 정든 우리 반 아이들의 정겨운 얼굴들이 며칠이나 됐다고 그리워진다. 재승덕박의 아이들이 자라서 곡학아세(曲學阿世 - 지식인의 양심을 버리고 권력과 돈에 아첨하는 학기(學妓)같은 가짜 지식인)하는 죄인이 되는 것인데…. 사랑하는 나의 제자들아 너희들은 스승의 순정을 짓밟지 않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꿈꾸는 내 교단일기의 주인공들이 되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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