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역시 희망입니다


강물이 꽁꽁 얼어붙은 한 겨울이 되면 제게는 하나의 표상처럼 더욱 확연히 다가서는 모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의 어느 날이었지요. 그 때는 보충학습이 없었기에 방학이면 원주를 떠나서 고향집에 머물렀습니다.


눈 덮인 마을 가득히 햇살이 퍼져서 눈이 부셨습니다. 고만한 나이라 마음의 울렁임이 일었겠지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빈 들길과 강둑을 혼자서 한참 걸었답니다. 봇살 가까이 왔을 때 낯익은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봇살의 터진 얼음구덩이에서 빨래를 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올려다보시며 반갑게 웃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빨갛게 언 손으로 우리 일곱 남매들의 땟국 묻은 옷을 빨래하시느라 여념이 없으셨습니다.


옷을 입다보면 땟국이 묻듯이, 살다보면 참으로 많은 속임을 하고 죄를 짓습니다. 반성을 하면 뭐합니까? 얼마 되지 않아서 잘못을 반복합니다.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머리를 돌릴 만큼의 악취가 나지 않는 것은,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떠올라서 서툰 짓이지만 내 마음을 헹구어 내기 때문일 겁니다.


언젠가 TV에 마을 아주머니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시골마을 목사님의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저는 교직 첫 발령을 고향의 모교로 받아서 부모님 밑에서 생활했습니다. 비교적 여유로운 형편이었지만 어머니는 대단한 농군이셨습니다. 그래서 밤이면 발뒤꿈치와 손 구덕살의 터진 곳을 바늘로 꿰매곤 하셨습니다. 겨울이 되어서야 조금 한가해지셨지요. 토요일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발이 휘날렸습니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머니께서는 화롯가에 앉으셔서 무언가 열심히 쓰고 계셨습니다.


“지금 오니? 시장하겠다.”

어머니는 서둘러서 부엌으로 가셨습니다. 아랫목 이부자리에 손을 넣으며 어머니가 쓰시던 것을 보았습니다.

‘최석화최석화최석화최석화…….’

누군가 어려서 쓰다 남긴 1학년 네모 칸 쳐진 공책에 어머니는 자신의 이름을 외워 쓰려고 익히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정성스러운지 네모 칸에 꼭 들어찬 실한 글자 한 획 한 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변함없었습니다. 나는 그 처연하고 감동스런 순간을 숨을 죽이고 지키고 있었습니다.


선생이 되었다고 배우고 익히고 독서하는 것을 등한시 해왔던 내가 크게 반성을 한 것은 그 때입니다. 학습의 입문기인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많이’ 가르칠 욕심에 막대기로 쫓으며 윽박지르곤 했는데, 그보다는 흙더미 속에서 통통하게 살찐 고구마 캐내듯 아이들이 하나 한 가지 찾고 알아차리고 깨우치는 기쁨으로 공부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천연스런 배움에 대한 희열을 몽땅 앗아가 버리는 강요된 학습, 끝 간 데 없는 경쟁의 부추김, 허황된 기대심에 의한 과투자 문제등 우리 교육의 아픔과 어려움들을 곰곰이 돌아봅니다. 무엇보다 새해가 시작되는 이즈음 우리 선생들이나 학부모님 모두가 ‘한 인간에게 교육이란 무엇이냐?’라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대하여 평상심을 갖고 헤아려보면 참 좋겠습니다. 교육은 누구에게나 고통과 절망이 아닌 우리 모두의 희망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이재홍 교사는 올해 51세로 73년 춘천교대를 졸업하고 횡성 청일초등학교와 둔내초등학교, 우산초등학교등을 거쳐 지난해부터 일산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98년부터 2000년도까지 전교조 원주·횡성 지회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부터 ‘평론원주’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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