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저면 산현리에 세워진 칠봉서원 복원 조감도. 사진 위쪽 산자락의 칠봉서원과 서원 앞에 형성된 교촌을 상상하여 그린 조감도이다

조선시대 교육과 학문의 도시로 이름 높았던 원주 교육의 중심은 원주향교였다. 향교는 교육에 필요한 재정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지방 행정기관인 군현(지금의 시와 군)에서 운영하는 공립교육기관이었다. 조선 중기가 되면 지방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사립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를 서원(書院)이라 한다. 

서원은 본래 중국의 당·송 시대 때 지방교육과 도서를 발간하고 보관하던 기능을 하던 곳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설립된 서원은 1543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백운동 서원이 세워진 곳은 풍기군 순흥면인데(현재 영주시), 이곳에 서원을 세운 이유는 고려 말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도입한 안향이 공부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백운동 서원이 크게 발전하고 지방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부임하면서부터이다. 퇴계 이황은 재정이 열악한 서원도 향교와 같이 국가에서 재정을 지원해 줄 것을 건의하였다. 당시 국왕인 명종 임금은 이황의 건의에 따라 재정 지원과 함께 왕이 직접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써 주었다. 국가에서 재정을 지원하고 국왕이 서원의 현판을 내려준 서원을 사액(賜額) 서원이라 한다. 이후 전국 각 지역에 서원이 설립되기 시작하고 공립학교인 향교와 함께 지방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서원의 기능은 향교와 마찬가지로 크게 두 가지인데 유교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일과 지방 인재를 가르치는 교육 기능이다. 그러나 교육기능은 같지만 서원이 향교와 크게 다른 것은 제향의 대상이다. 향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5성과 공문 10철, 송조 6현 등 중국의 학자들이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동국 18현인데, 서원에서는 지역 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훌륭한 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낸다.
향교의 제향 공간에 모시지 못한 그 지역 출신의 훌륭한 인물의 위패를 서원에 모시고 추모제를 지낸다는 것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일이었다. 향교의 제향이 국가 주도적이었다면 서원의 제향은 각 지방마다 주체적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을 추모하는 것이니 교육과 학문의 지방자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각 문중에서 제사 지냈던 인물들을 지역 양반들이 공론을 거쳐 서원에 배향하고 지역주민이 함께 추모하는 일은 지역의 색채를 드러내고 도시의 자부심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을 추모하고 교육하는 본래의 기능 외에 서원은 지방 양반들이 여론을 조성하며 지역의 일을 결정하는 공론의 장이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 민주주의가 싹텄던 것처럼 서원은 조선 향촌의 아고라였다. 조선시대 지배층이었던 양반들이 모여 지역의 일을 결정하고 세상 소식도 서원을 통해 퍼져나갔다. 사람이 모이고 그들의 입과 귀를 통해 말이 퍼지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뜻을 모아 의기투합하기도 했다. 

전국 각처에 서원이 세워지고 세력이 커지는 것은 국왕에게 달갑지 않았다. 더구나 일부 서원은 본래 서원의 기능을 상실하고 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제사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백성들의 원성이 커지자 숙종 때부터 서원의 설립을 통제하기 시작하다가 1871년 조선 고종 때에 흥선 대원군은 사액서원 47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서원은 모두 폐지하였다.   

조선시대 원주에는 칠봉서원, 광암서원, 도천서원, 도동서원 등 모두 4개의 서원이 세워졌으나 고종의 서원 철폐령으로 모두 폐지되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