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륜동 야산 자락에 건립된 원주향교. 위로부터 제향 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 학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과 동·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대성아파트와 향교 주변의 많은 토지가 원주향교 학전이었다.

조선의 창업주 태조 이성계가 새 나라를 열면서 즉위 교서에서 공표한 2대 정책은 '농상(農桑)의 장려'와 '흥학(興學)'이었다. 농사 짓고 뽕나무를 길러 누에를 치는 농상은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이 먹고 입는 것을 해결할 수단이었다. 학문을 장려하는 흥학은 조선왕조를 지탱한 사상적 기반인 유교의 이념에 따라 백성을 교화하고 인재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백성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은 전근대 사회에서 국왕의 책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이 배부르고 따뜻하게 먹고사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다. 지금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경제정책, 일자리 공약과 같다. 유교의 경전을 공부하여 국가에서 요구하는 인재가 되는 것은 개인의 출세를 보장받는 일이고 양반의 신분 유지를 위해서 필수였다. 

흥학을 위해서 각 지역에 공립학교인 향교를 세웠다. 향교는 국가에서 재정을 지원하고 교생(학생)을 가르치는 교관을 파견하였다. 국가의 재정지원은 학전(學田)과 노비(學奴婢)의 지급인데, 학전은 교육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토지이고 노비는 토지를 경작하고 향교 운영을 위한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지금 전국 각지의 향교에서 많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모두 조선시대 국가로부터 받은 학전이다. 그러니 향교의 토지는 지방의 인재 양성을 위한 공적 재산인 셈이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토지와 노비의 수는 부와 목, 군, 현 등 도시의 규모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조선 태종 때 원주목에 지급된 토지는 44결, 노비 40명으로 원주보다 규모가 작은 군현에 지급된 토지 14결, 노비 22명보다 많았다. 

나라에서 재정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운영은 지방관인 수령에게 책임을 맡기고 수령의 주요 책무로 학교진흥을 못 박았다. 조선의 법령집인 경국대전에는 각 지방의 수령이 해야 할 7가지 책무인 수령칠사(首領七事)로 농상성(農桑盛), 호구증(戶口增), 학교흥(學校興), 군정수(軍政修), 부역균(負役均), 사송간(詞訟簡), 간활식(奸猾息)이라 명시하고 있는데, 그중 학교흥(學校興)은 관할지역의 향교를 육성하라는 지침이다. 향교의 학생들이 공부에 불편함이 없도록 시설을 보수하고, 과거시험 응시에 필요한 비용과 교복까지 수령이 책임지고 보살폈다. 수령칠사는 지금 시장과 군수 격인 조선시대 수령의 업무성적을 평가하는 기준이었으니 게을리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향교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지방 학생들을 교육하는 학교 운영과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지내는 일이다. 향교를 구성하는 건물 배치도 이 두 기능에 충실하였는데 대성전과 동무·서무는 제향을 위한 공간이고, 학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는 학교의 기능을 한다. 죽은 성현을 모시는 제향 공간과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육 공간도 서열이 있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한 중국 성현의 위패를 모셨고 동무와 서무에는 대성전에 모시지 못한 중국 성현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셨다. 이렇게 위패를 차별하여 모시던 제도는 1945년까지 이어 오다 그 후 대성전으로 함께 모시게 된다. 교생들의 기숙사도 동제는 양반의 자제들이, 서제는 평민의 자제들이 머물게 하여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과거시험의 관문인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생원, 진사가 되려면 먼저 향교의 교생(학생)으로 이름을 올려야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게 된다. 향시의 1차 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치르는 최종 시험장은 전국의 향교에서 올라온 교생들이 지역의 명예를 걸고 겨루는 각축장이었다. 그곳에서 원주향교 교생들은 늘 빛났다. 원주향교는 나라 안에서 알아주는 명문 학교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