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도회경과증광문과초시시권(原州都會慶科增廣文科初試試券). 1824년 3월 원주에서 시행된 과거시험 소과의 우수 답안지를 모아 관찰사에게 올리기 위해 엮은 책이다. (원주역사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전 기간 동안 치룬 소과(小科)에서 생원 2만4천221명, 진사 2만3천776명으로 총 4만7천997명의 합격자를 배출하였는데, 원주는 570명을 배출하여 서울, 안동, 충주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생원·진사 합격자를 배출한 학세권 도시이다. 이는 소과 합격자 명부인 사마방목(司馬榜目)을 분석한 통계로 원주가 학문의 도시, 교육도시라는 증거이다. 조선시대 강원도의 다른 도시는 어땠을까! 강원도의 Big 3 도시인 강릉은 282명, 춘천은 217명으로, 두 도시 모두 원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사마방목 외에 원주가 학세권 도시라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다음은 성종실록 167권, 성종 15년(1484년) 6월 15일 기사이다.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 성현(成俔)이 치계(馳啓)하기를, "본도에서 강릉(江陵)·원주(原州) 같은 곳은 풍속이 학문을 숭상하므로 인재가 많고, 그 밖의 여러 고을의 생도 중에도 총명하여 가르칠 만한 자가 많이 있으나, 땅이 메마르고 백성이 가난하므로 서적을 스스로 장만하기 어렵고, 여러 고을도 잔폐(殘弊)하므로 장만하여 줄 수 없으니, 이 때문에 학문을 폐기하게 됩니다. 《사서(四書)》·《오경(五經)》을 찍어서 도호부(都護府) 이상에 각각 2건(件), 군(郡)·현(縣)에 각각 1건을 내리어 학문을 일으키는 방도를 열어 주소서." 하였는데, 예조(禮曹)에서 이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원주·강릉에는 《사서》와 《서경(書經)》·《시경(詩經)》 각각 2건을, 나머지 여러 고을에는 《사서》 각각 1건을 박아서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국사편찬위원회 누리집, 조선왕조실록) 

사마방목이나 조선왕조실록 같은 국가의 공식기록 말고도 원주가 학문의 도시라는 것은 민간에서 전하는 속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충청도 지역에 전해오는 속담으로 '원주에 가서 아는 체하지 말라' 또는 '원주 사람 만나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원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 충청도 양반에게 필요 없을 법한 속담이지만, 원주라는 지명을 특정하면서 겸손을 강조한 것이 이채롭다. 흔히 세간에 알려진 강원도 사람을 이르는 '암하노불(巖下老佛)'이나 '감자바위'와는 비교되는 속담이다. 

이 속담은 필자가 신탁근 전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이다. 필자가 처음 원주역사박물관을 개관할 때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중 한 분이 신탁근 전 온양민속박물관장이다. 온양민속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1978년 문을 연 민속분야 전문박물관으로 아동도서 출판으로 유명한 계몽사에서 건립한 사립박물관이다. 신탁근 전 관장은 전국을 누비며 자료수집과 전시에 이르기까지 온양민속박물관 건립에 초석을 놓은 분이다. 민속학은 학문의 특성상 책상머리에 앉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민속박물관 개관에 필요한 자료수집은 그야말로 풍천노숙(風天露宿)하며 전국을 떠돌며 많은 사람을 만났을 테니 허언은 아닐 것이다. 처음 그 말을 듣고 필자는 '처음 듣는 말인데요. 그럴리가요!'라고 반문하자 충청남도가 고향인 신탁근 관장은 충청도에서 흔히 듣던 말이고 속담사전에도 나온다고 재차 강조하였다.

도시 정체성이 희박하고 도시에 대한 자부심도 크지 않은 지금 원주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조선시대 원주는 당대의 지성인 생원과 진사가 넘쳤던, 온 나라에 소문이 자자한 학문의 도시였던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