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원주 지역의 유일한 공립학교인 원주향교.

우수(雨水), 경칩(驚蟄) 지나고 몸을 스치는 바람의 찬 기운이 한층 가셔졌다. 나비 날갯짓을 보고 철모르는 나비인가 싶어 달력을 살피니 3월 20일이 춘분(春分)이다. 

적도 이북, 북반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밤보다 낮의 길이가 길어지는 때이니 이제 본격적으로 봄이다. 남녘에는 벌써 꽃 소식이 들리고 양지바른 명륜동에도 산수유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곧 도심의 나무들과 멀리 치악산이 연둣빛으로 물들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저마다의 색채를 한껏 뽐낼 시기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도시도 저마다 다른 색채를 가지고 있다. 도시정체성이라고 말하는 도시의 빛깔은 도시의 자연경관(또는 자원)이나, 과거 역사의 산물인 문화유산으로 다른 도시와 뚜렷하게 구분된다. 여기에 도시정체성을 결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색채는 사람이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지금은 자연환경에 대한 사람의 의존 정도가 미미하지만 과거 전통시대에는 자연환경이 사람의 기질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과거 전통시대에는 자연환경을 빗대어 사람의 기질을 평하기도 하였는데, 원주사람들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원주사람들은 태어나는 날부터 그 부모가 자식의 명의로 먼저 곡식 한 말을 떼어 주어 재곡의 밑천으로 삼아 해마다 이자를 받아 재산을 불려 나가는데 하찮은 왕겨 한 톨도 만금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새벽부터 밭고랑에 서서 쟁기질을 재촉하고 김매기를 서두르는 등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다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웃 사람들과 서로 모여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그들은 사윗감을 고를 때조차도 "아무개는 산에 올라가 사냥을 했으니 안 된다."라고 하거나 "아무개는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으니 안 된다."라고 한다. 반드시 근검하고 인색한 사람을 골라 사위로 맞아들인다. 한 번이라도 방탕한 행동을 하면 향당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을 안에 높은 담장을 친 집들이 많고 몹시 가난한 사람은 없다.' 조선 전기의 문신 성현(成俔 1439-1504)의 글을 모아 아들 성세창이 간행한 『허백당집』 강릉·원주 풍속기의 한 부분이다.

또 조선시대에 간행된 각 도별 지도, 역사, 풍속, 궁궐, 학교, 효자와 열녀, 산과 하천, 토산물, 사적 등을 수록한 동국여지승람 원주목조에는 '산천이 아름답고 토지가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여러 고을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그 풍속은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쓰는 것을 절약하여 재물을 저축하고 물화를 늘려서 홍수와 가뭄이 재해가 되지 못하니, 실로 동쪽 지방의 아름다운 풍속이다.'라고 원주사람의 성품을 기술하고 있다. 모두 원주사람들의 품성에 대하여 '검소하고 부지런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자연환경이 사람의 기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개인이 피할 수 없는 환경적인 요인이지만, 부모와 형제 같은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와 마을 사람 등 개인이 속한 집단과 도시 구성원의 교류를 통하여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은 동서양을 관통하는 오랜 진리이다. 제도적으로 사람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종교와 학교이다.

토템이나 샤먼이 지배하는 원시 부족사회와 유교와 불교, 기독교와 이슬람, 힌두교에 이르기까지 종교는 뚜렷한 국가 또는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대의 풍류(風流)와 불교, 유교가 민족성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과거 전통시대 사람들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던 문화유산은 향교이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의 교육기관으로 유교의 이상과 지배이념을 교육했던 지방 공립학교이다. 시대를 거슬러 고려시대의 공교육기관인 국자감과 12도, 송나라 사신 서긍이 보았던 경관(經館)과 서사(書舍)의 실체가 남아 있는 곳이 없으니 아쉽지만, 향교의 모습으로 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