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책을 한 권을 냈다. 제목은 '날마다 선물'. 재작년 집사람과 치악예술관에서 칠순전(회화, 서예)을 하면서 내 삶을 정리해보고 뒤돌아보고 싶어졌다. 사실 몇 년 전 중천도서관의 자서전 강좌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소시민의 삶도 가치가 있고 그의 흔적도 사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다음 먼 훗날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이 읽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원래부터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생활 습관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몇 개월 전 얘기다. 밝음의원에서 만난 이 모 씨에게 책을 드렸다. 그는 오랫동안 여성 노숙인이었고 무료급식소 '십시일반'에 식사하러 오면서 알게 되었고 내 다른 책(140만 그릇의 밥)을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아프면 찾아오는 단골 환자이기도 했다. 그녀는 책을 받은 다음 날 병원에 와서 나에게 주라고 봉투를 남겼다. 봉투에는 5만 원과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에 고맙습니다."라고 쓴 메모가 들어있었다. 기초생활비를 받아 어렵게 살아가는 그녀에게 5만 원은 무척 큰 돈이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에 전해왔다.

3년 전 밝음의원을 퇴직하는 12월 말 김 모 씨가 아침 일찍 병원에 찾아왔다. 그는 그동안 고마웠다고 내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살아있을 수도 없었을 거라며 봉투를 하나 준다. 봉투에는 그동안 고마웠다는 편지와 금 10돈이 들어있었다. 지금까지 금 10돈을 만져본 적도 없었고 이렇게 금이 무거운 줄도 몰랐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에게 얼마나 큰 돈일까 손이 떨렸다. 그는 오래전에 원주천 쌍다리 아래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이었다. 술을 많이 먹었고 '십시일반'에서 식사하면서 욕도 많이 하고 직원들을 많이 괴롭혔다.

몇 년 전 그의 나이 70일 때  근처 중국집에서 칠순 축하연을 해주었는데 친구들도 없고 가족도 없어서 10여 명만이 같이 했었다. 노숙인이나 부랑인들은 알코올 중독으로 대부분 일찍 사망한다. 7, 8년 전 그는 술도 끊고 운동도 열심이었다. 김 씨가 이렇게 오래 사는 것이 고마웠고 칠순 잔치를 해주고 싶었다. 복지사업을 하면서 70세 이상 사는 노숙인을 보지 못했다.

십시일반을 시작할 때 그에게 월세방을 얻어주고 갈거리사랑촌에도 들어와 살기도 했었다. 당뇨가 있었는데 부부의원, 밝음의원 단골 환자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서로 알고 지낸 지가 27년이 되어간다. 이제는 친한 친구 같고, 가끔 그의 집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같이 먹는다. 

부부의원을 그만두고 중앙동 밝음의원에 근무하게 되었다. 부부의원 환자들이 거의 다 따라오셨다. 너무 고마웠다. 잘해드린 것도 없는데…감사의 마음으로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졌다. 한 달에 한 번씩 점심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몇 년은 동해안 관광을 가기도 했는데 버스 한 차가 꽉 찼다. 허리 아프고 다리 아픈 어르신들은 이날만큼은 환자가 아니었다. 버스가 출발하면서부터 일어나 춤을 추며 돌아올 때까지 놀았다.

병원을 퇴직하고 점심 모임도 없어졌다. 작년 가을 오랜만에 옛 환자들과 점심을 같이 했다. 80, 90이 다 되신 어르신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오셨다. 우리는 환자와 의사 사이가 아니고 옛 친구나 친척을 만난 듯 반가웠다. 

자서전을 준비하면서 70년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지나온 삶이 행복했고 선물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고통이었고 행복인 줄 몰랐었는데 지나고 보니 선물일 정도로 큰 행복이었다. 그래서 조물주에게 먼저 감사하고 함께했던 모든 분께 고마움을 고백하고 싶어지고 얼굴에 미소가 살며시 지어졌다. 내가 해준 것보다 받은 것이 산 같이 더 많았다.  

어떻게 살아야 삶이 선물이 되고 행복할까. 이 책이 던지는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