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주시 문막읍 동화리의 노회신 벽화 무덤 내부 사신도(四神圖). 왼쪽에 그려진 그림이 4신 중 청룡이고 오른쪽 그림이 백호이다.

계묘년(癸卯年) 토끼해가 저물고 갑진년(甲辰年) 용의해가 시작되었다. 음력으로 따지면 아직 30여 일이 지나야 하지만, 2024년 용의 해는 시작되었다. 용은 지구상에 실존하는 동물이 아니니 실제 용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변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용을 만날 수 있다. 우리 문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청룡은 낯설지 않다. 해마다 연말이면 화려한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화려한 조명과 레드카펫을 오르는 스타들은 누구나 청룡 트로피를 가슴에 품고 있을 것이다. 

조금 나이가 든 사람들은 좌청룡 우백호(左靑龍 右白虎)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풍수지리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사람이 죽어서 잠든 집, 무덤 자리를 정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남향인 무덤에서 정면을 보았을 때 왼쪽 산줄기를 청룡(靑龍) 이라하고 오른쪽 산줄기를 백호(白虎)라 한다. 방위로 따지면 청룡은 동쪽이고 백호는 서쪽이 된다. 장묘제도가 바뀌어 이제는 화장(火葬)을 하고 납골당에 모시는 경우가 흔하지만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산에 무덤을 쓰는 일과 '좌청룡 우백호'는 풍수를 모르는 문외한에게도 익숙한 말이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푸른 용과 흰 호랑이는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기원을 따지면 복잡하겠지만 우리역사가 전하는 문화유산 중에는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수호신을 그린 그림, 사신도(四神圖)가 있다. 고구려의 무덤인 쌍영총과 강서대묘 같은 무덤에는 죽은이를 모신 무덤방의 동서남북 네 곳의 벽면에 사신도를 그려 무덤을 지키도록 했다.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4신이다. 푸른 용, 흰 호랑이, 붉은 새, 검은 거북을 닮은 형상인데 호랑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상상의 동물이다. 

무덤 속 벽화는 죽은 이가 내세에서도 평안하기를 기원하기 위하여 그린 것으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화려하게 채색된 무덤 벽화는 고구려 시대의 유산으로 대부분 북한과 중국 집안지역에서 발견된다. 남한에서 발견된 벽화묘는 모두 10여 기로 그 중 원주에서 발견된 벽화 무덤은 1456년에 조성된 여흥도호부사를 지낸 충정공(忠正公) 노회신(1415~1456)의 무덤이 있다. 원주 동화리의 노회신 무덤은 2008년 복선 철도 건설로 후손들이 이장하는 과정에서 벽화의 존재가 알려졌다. 노회신 무덤에는 커다란 화강석으로 2개의 무덤방을 만들었는데 하나의 무덤방 사방 벽면에 사신도와 12지신, 무덤의 주인으로 보이는 인물을 그리고 천장에는 별자리를 그렸다. 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를 마치고 지금은 원주역사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 중 우리와 가장 친숙한 신이 바로 동쪽을 지키는 신, 청룡이다. 민간에서 용은 물을 주관하는 신이다. 그래서 바닷가 마을에는 어김없이 용과 관련된 전설이 풍부하게 전한다. 마을마다 크고 작은 해신당을 짓고 용왕신을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 드넓은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남성들이 거친 풍랑에서 무사히 돌아오고 풍어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여성들의 기도이다. 바다가 없는 내륙 마을에도 용과 관련된 전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산업이 분화되기 전 농업에 의존했던 전통시대에는 바닷가 마을만큼 물이 중요했다. 

비가 오지 않아 가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비를 청하는 기우제를 지내고,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날씨가 맑기를 바라는 기청제를 지내는 것도 모두 용왕신께 비는 일이었다. 가뭄과 폭우가 심하면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도 국왕이 기우제와 기청제를 주관하기도 했다. 원주에서는 치악산 구룡사 근처에 있는 구룡소가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원주에 전해오는 용과 관련된 설화로 유명한 것은 구룡사 창건설화이다. 구룡사는 668년(신라 문무왕 8년)에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 말 고승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한다. 의상대사의 창건설화에 따르면 현재 구룡사 대웅전이 자리한 곳은 원래 깊은 소(沼)였는데, 그곳에 용이 아홉 마리 살고 있었다. 이곳에 대웅전을 짓기 위해 의상은 용들에게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를 청하였으나, 용들은 내기로 정하자고 하였다. 먼저 용들은 뇌성벽력과 함께 많은 비를 내려 주위 산들을 삽시간에 물에 잠기게 했다. 이에 의상은 부적 한 장을 그려 연못에 넣자 물이 부글부글 끓었다. 용들은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여덟 마리는 동해 바다로 가고, 눈이 먼 용 한 마리는 용소에 머물다 승천하였다. 의상은 연못에 흙으로 메워 대웅전을 짓고 구룡사(九龍寺)라 했다고 한다. 

용은 큰 희망과 성취의 상징이고 출세의 관문을 등용문(登龍門)이라 한다. 중국 황하(黃河)가 지나는 산서성(山西省)에는 삼단으로 이루어진 폭포가 있는데 그곳을 용문이라 한다. 잉어가 뛰어올라 용문을 통과하면 용이 된다고 하여 출세의 관문을 등용문이라 한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출세한 사람을 두고 '개천에서 용났다.'라는 말을 즐겨 쓰는 것도 잉어가 용이 된 것에 비유한 것이다. 용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이 있어 꿈 중에서도 용꿈이 제일 좋은 꿈이라 여겼다. 

2024 갑진년 새해를 맞이하여 원주시민 모두 용꿈 꾸시고 소원성취하시기 바란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