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재현한 법천리 백제무덤에서 발견된 톱니무늬가 그려진 머그컵 형태의 칠화칠기.(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전통공예는 좋은 재료 산지에서 오랜 세월 동안 대를 물려 전승되기 때문에 특정한 지역에서 발전하는 지역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어느 지역이나 주문하면 이삼일 내에 좋은 재료를 구할 수 있지만, 교통과 물류 이동이 원활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재료 산지가 아니면 좋은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전복을 비롯한 조개류가 풍부한 통영의 나전칠공예, 굵고 튼튼한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담양에서 죽세공예가 발달한 까닭이다. 원주에서 칠공예가 성행하게된 것도 칠공예의 주재료인 칠(漆)의 성분이 우수하고 생산량이 많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칠전(漆典)' 이라는 관청을 두고 나라에서 칠기의 제작과 옻나무의 육성을 제도적으로 관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통일신라 때에도 칠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고 칠공예가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때에는 나전칠기가 크게 유행하였는데 장식 기법이 정교하고 아름다워 고려청자와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나전칠기의 성행에 비하여 옻칠에 안료를 섞어 기물의 표현을 장식하는 칠화칠기는 쇠퇴하였다. 조선시대 때에는 기법이 퇴화하기는 하였지만 고려시대의 나전칠공예 전통이 이어졌다. 

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는 기존의 지리지를 참고하고 각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기술한 종합 인문지리서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당시의 행정구역 편제상 328개의 부,목,군,현의 토질과 기후를 기술하고 그 지역에 생육하기 적합한 식물을 토의(土宜) 항목에서 소개하고 있다. 원주의 경우 기후와 토질에 적합한 생산물로 7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옻칠이다.

「세종실록-지리지」 토의(土宜) 항목에 기술된 옻나무가 생육하기 적합한 지역은 328개 지방행정구역 중 경기도의 광주목, 충청도의 충주목, 단양군, 서산군, 제천현, 해미현, 전라도의 남원도호부, 황해도의 배천군, 평안도의 성천도호부, 자산군, 강원도의 원주목, 삼척도호부, 춘천도호부, 영월군, 횡성현, 홍천현, 금성현, 김화현, 양구현 등 모두 14개 지역이다. 

이 기록은 조선 전기부터 원주 지역의 토질과 기후가 우수한 칠을 생산하는데 적합한 곳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에 우리나라 전 지역의 자원을 조사하였는데 원주의 칠은 평안북도 태천의 칠과 함께 가장 우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인들은 원주에 많은 옻나무를 재배하고 칠을 채취하여 일본으로 공출하였다. 

해방 후 일본인들이 심어놓은 옻칠자원을 관리하기 위하여 당시의 원성군청에 전담부서를 두고 옻나무 식재와 칠 채취를 담당하였다. 그 후 1985년 무렵까지 원주칠조합에서 칠을 수매하여 일본에 수출하고 옻칠 공예인들에게 공급하였다. 원주칠조합이 문 닫은 후에는 칠조합의 상무로 근무했던 이명국이 한 동안 칠 수매와 공급을 계속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원주에서 칠 채취하는 사람들은 징용을 면제해 주었다"는 강원도무형문화재 칠정제장 보유자 박원동의 증언을 보아도 원주 칠의 품질과 생산량이 다른 지역보다 우수하고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칠(漆)은 옻나무에 상처를 내어 채취한 수액(樹液)으로, 접착력이 우수하고 부패를 방지하며 습기에 강한 특성 때문에 칠공예에 주로 사용된다. 칠의 주요성분은 칠산과 수분, 고무질인데 원주의 옻나무에서 생산되는 칠은 칠산(Urishiol)이 월등히 많이 함유되어 있다. 

칠공예는 나무와, 종이, 가죽, 도자기, 금속 등 여러 가지 소재로 만들어진 기물(器物)의 표면에 옻나무에서 얻은 칠(漆)을 칠하여 완성하는 전통공예의 한 분야로, 이렇게 만들어진 물건을 칠기(漆器)라고 한다. 칠기는 칠과 함께 쓰이는 마감 장식 재료와 제작기법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지만 널리 알려진 것은 나무로 만든 기물에 칠만으로 마감한 목심칠기(木心漆器), 칠에 여러 가지 안료를 섞어 만든 색칠(色漆)로 그림을 그려 장식하는 칠화칠기(漆畵漆器), 얇게 켠 조개껍질을 오려붙여 장식하는 나전칠기(螺鈿漆器), 도자기에 칠과 나전으로 장식하는 도태칠기(陶胎漆器), 직물을 칠 풀로 여러 겹 붙여 기물을 만든 다음 칠로 마감을 하는 건칠기(乾漆器)가 대표적이다.

칠공예의 역사는 기원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지역적으로는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과 일본, 베트남, 인도 등 동양에서 발전한 전통공예이다. 우리나라에서 칠공예가 보편화된 것은 기원전 1세기 무렵의 이른 원삼국시대로 보인다. 1988년 창원시 다호리 고분에서는 목심칠기와 도태칠기, 대나무에 칠을 한 남태칠기가 발견되어 옻칠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고구려와 백제, 신라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칠기유물로 보아 역사시대에도 칠공예의 전통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원주에서 발견된 칠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부론면 법천리의 4세기에서 5세기 무렵 백제무덤에서 출토된 톱니무늬가 그려진 머그컵 형태의 칠화칠기 유물이다. 톱니무늬는 이빨무늬(鋸齒文)라고도 하는데 이 무늬는 대체로 한반도와 옛 고조선 지역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우리민족 고유의 토착문화라고 볼 수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 때 원주의 칠공예에 대하여는 전하는 기록과 유물이 없어 알 수 없지만, 1970년대 까지 태장동 가메기 마을에 칠소반 만드는 공방이 밀집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대의 칠공예 전통이 현대까지 이어져 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례로 볼 때 원주의 칠공예는 통영의 나전칠기와 달리 목심칠기와 칠화칠기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