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연기념물 제167호로 지정된 문막읍 반계리 은행나무.

 자연이나 사물은 보이는 그대로 아름답고 감동을 주지만 사람들은 세계 제일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더욱 궁금해하고 감동을 받는다. 어디 자연뿐이랴.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는 미디어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단어이다.

 필자도 재직 중 이런 대중의 호기심을 이용한 적이 있다. 바로 반계리 은행나무이다. 필자는 26년 동안 문화재를 관리하면서 내가 돌보는 문화재들이 가치를 인정받고 관광자원이 되기를 원했다. 2007년 무렵 처음 페이스북을 시작하면서 반계리 은행나무를 포스팅할 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라고 소개하곤 했다.

 노랗게 단풍이 물든 반계리 은행나무 사진은 네티즌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고 여러 사람에게 알려졌다. 해가 거듭할수록 10월이 되면 멀리 떨어진 네티즌들은 반계리 은행나무가 언제쯤 노랗게 물들지 물었다. 그 질문 때문에 필자는 매일 반계리 은행나무 사진을 찍거나, 가지 못하는 날은 은행나무를 보고온 지인들의 사진을 포스팅하며 반계리 은행나무가 물들어 가는 모습을 중계하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반계리 은행나무가 완전히 물드는 단풍 최절정 시기를 알려달라는 네티즌도 많았다. 대체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반계리 은행나무의 최절정기는 은행잎의 초록이 완전히 빠지고 은행잎의 10% 정도는 떨어져 바닥을 노랗게 덮었을 때이다.

 그러나 이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매일 초록이 빠지는 정도와 기상청 기후 예보를 참고해 반계리 은행나무의 최절정기를 예보하기도 했는데, 필자의 예보는 빗나가거나 하룻밤 사이 나뭇잎이 일시에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을 때도 있었다. 필자의 페이스북 예보를 믿고 멀리서 반계리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은 적도 많았다. 

 반계리 은행나무가 하룻밤 새 온 잎을 털어내는 것은 은행나무의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대체로 은행나무들은 낙엽이 지는 속도가 빠르다. 그러나 반계리 은행나무는 그 속도가 다른 은행나무와 비교하기 어렵다. 2017년에는 동틀 무렵까지 멀쩡하게 달려있던 은행잎이 불과 1시간이 채 되지 못해서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모두 떨어지기도 했으니 기이한 일이다. 은행나무가 있는 원주 반계리에는 '은행잎이 일시에 떨어지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든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엉터리 예보로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반계리 은행나무의 단풍 절정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1년을 기다려 반계리를 찾아오기도 했고, 반계리 은행나무는 필자가 바라는 대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로 자리 잡으면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반계리 은행나무가 유명해 지면서 반계리를 찾는 필자의 발걸음은 뜸해졌다.

 페이스북 포스팅 횟수도 줄였다. 반계리 은행나무가 너무 알려지다 보니 찾는 사람이 많아져 좁은 마을길은 교통이 불편해지고 마을 사람들과 언성을 벌이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은행나무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영월군에서 문화재전문위원으로 근무할 때 필자가 관리하던 하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가지가 부러져 주민이 돌아가신 일이다. 주말 당직 근무를 하던 필자는 은행나무 가지가 부러져 동네 노인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현장에 가보니 부러진 나뭇가지가 나무 주변 골목길을 덮치고 있었다. 비와 바람도 불지 않았던 평온한 날이었고 부러진 가지도 말라죽은 고사지가 아니라 생생한 상태였다. 옆으로 벌어진 가지가 아니라 위로 곧게 선 나뭇가지였다. 부러질 이유가 없는 기이한 일이었다. 

 가지가 부러져 노인을 덮친 순식간의 일은 당시 나무 바로 아래 의자에 앉아 있던 동네 노인들이 목격하고 생생하게 증언해 주었다. 돌아가신 노인은 저녁을 드시고 은행나무 아래 있는 노인들에게 가던 중 가지가 덮친 것이다. 돌아가신 노인은 필자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녔던 친구의 아버지였다.

 은행나무에 대한 또 하나 잊지 못할 일은 치매를 앓고 있던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다. 2019년 오월 외출을 못 하시는 80세가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여드렸다. 어머니께서는 평생 이렇게 큰 나무는 처음 본다며 연신 감탄하시며 불편한 걸음으로 나무 곁에 가시더니 두 팔로 안아보기까지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나무를 경이롭게 바라보고 두 손 모아 합장을 하시더니 이렇게 큰 나무를 누가 보살피는지 물어보셨다. 당신 아들이 관리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정말 잘했다는 말을 거듭하셨다.

 반계리 은행나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필자의 주장은 근거는 없다.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서 객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까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우리나라의 은행나무는 모두 31건 있는데, 그중 반계리 은행나무가 가장 균형미를 갖추고 있다. 더구나 반계리 은행나무는 숫나무여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이 열리지 않는다. 은행나무는 대부분 하늘을 향해 높게 자란다. 한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은행나무였던 용문사 은행나무는 높이가 42m이고 나무 밑둥 둘레가 15.2m이다. 은행나무가 위로 곧게 자라는 것은 목질이 연해 옆으로 퍼진 가지는 쉽게 부러지기 때문이다.  

 반계리 은행나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하다. 연세대학교 매지캠퍼스 은행나무와 도시의 가로수가 모두 노랗게 단풍들어 떨어질 때까지 반계리 노인은 완전히 물들지 않는다. 이제 반계리는 은행나무를 찾는 인파로 넘쳐날 때이다. 은행나무를 찾는 분들께 바람이 있다면 차는 멀리 두고 걸어가시길 권한다. 800년을 견뎌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목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마을길을 걷는 것도 특별한 일이다. 800살 노인 나무에 대한 예의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