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7시 원주문화원에서는 제28회 누리야간학교 졸업식이 열렸다. 2년 만에 열리는 반가운 졸업식 행사에는 자글자글한 주름에 흰머리가 희끗한 졸업생들부터 가족, 누리야학 교사들까지 늦깎이 학생들의 졸업이자 새 출발을 축하해주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배움에 늦음은 없다'는 말은 나이를 잊고 공부에 매진해 온 이들을 위한 표현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졸업식에는 12명의 졸업생들이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품에 안았다. 50대부터 80대까지 수십 년 전 학교를 떠났어야 했을 이들이 긴 세월을 돌아와 초·중·고등학교 공부를 마친 것이다. 특히 이날 화제의 주인공은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2년 만에 끝낸 김현순(69) 씨였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학교를 다니지 못한 김 씨는 독학으로 한글을 배우며 꾸준히 독서를 해왔다. 정규과정을 배우진 못했지만 책을 통해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늦은 나이에 시작한 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다. 김 씨를 가르친 박이화 누리야학 교사는 "김현순 님은 총명하고 빠른 이해력을 갖고 계신데다 매일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셨다"며 "코로나 때문에 시험을 미뤄서 그렇지 1년 반 만에도 초·중·고 과정을 모두 마치실 수 있는 분"이라며 거듭 칭찬했다.

독서를 좋아해 국어는 쉬웠지만 수학은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어 가장 어려운 과목이었다는 현순 씨. 구구단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그녀가 고등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도움이 컸다. 자녀들에게는 검정고시 합격이 쑥스러워 졸업식 소식을 전해지 못했다며 내년에 목표 삼은 방송통신대학교 도전은 당당히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늘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지만 쉽게 공부를 시작할 수 없었는데 누리야학을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며 "후배들이 불러주는 졸업식 노래를 늘 듣고 싶었는데 오늘은 내가 그 주인공이 돼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김 씨 외에도 이번 졸업식에서는 초·중 또는 중·고등 과정을 1년 안에 졸업하는 등 우수한 성적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한 학생들도 다수였다. 누리야학에서 17년 동안 교사를 맡고 있는 전임선 교사는 "늦게 공부를 시작한 만큼 대부분의 학생들이 열성적으로 공부하며 야학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빠른 시간 내 학습목표를 달성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몇 해 전에는 한글을 모르던 할머니가 18년 만에 초·중·고 과정을 마친 사례처럼 각자의 배움 속도에 맞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977년 원주학원으로 개교한 누리야학은 1984년 성문야학과 통합한 뒤 누리야학으로 출범했다. 원주에서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야학으로 지금까지 6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늦깎이 학생들의 공부를 돕고 있다. 

현재 교사 19명이 자원봉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36명의 학생들이 한글반, 초등반, 중등반, 고등반 4개의 반에서 학습한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저녁 시간마다 수학, 영어, 국어, 역사 등 검정고시 과목반을 운영 중이다.

황원구 교장은 "누리야학은 배움을 원하는 누구에게나 항상 열려 있는 곳"이라며 "더 많은 학생, 그리고 선생님들과 함께 오래도록 누리야학을 이끌어가고 싶다"고 전했다. 누리야학은 학생과 교사를 상시 모집한다. ▷문의: 01091588251(황원구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