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악산 금대계곡 길은 숲이 우거지고 맑고 풍부한 계류가 흐르고 있어 봄부터 가을까지 산책하기 좋은 길이다.

한가위 지나자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 서늘한 기운이 느낄 수 있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다. 문화유산과 더불어 매력적인 관광자원 중 하나는 자연유산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경치 좋은 명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도교 사상이 유행했던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신선이 살만한 곳으로 여겼다.

옛 사람들은 좋은 경치 구경에 머물지 않고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찾은 문객(文客)들이 노래한 아름다운 '신선경(神仙景)'이 시와 문장으로 전한다. 자연환경은 낯선 지역을 방문하는 외지인에게 도시의 첫인상이다. 조선 선조 때 풍운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정철(1536∼1594)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소회를 남긴 관동별곡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江강湖호애 炳병이 깁퍼 竹듁林님의 누엇더니
關관東동 八팔百백里니에 方방面면을 맛디시니
어와 聖셩恩은이야 가디록 罔망極극하다.
延연秋츄門문 드리다라
慶경會회南남門문 바라보며
下하直직고 믈너나니 玉옥節절이 알패셨다.
平평丘구驛역 말을 가라 黑흑水슈로 도라드니
蟾셤江강은 어듸메오, 稚티岳악이 여긔로다.

관동의 관문 원주를 대표하는 자연은 치악과 섬강이고, 시인 정철이 만난 관동의 대표도시 원주의 첫인상 이었다. 자연환경은 문화유산과 달리 타고난 것이어서 불변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야말로 태초에 하늘이 내린 축복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자연 경관이 뛰어난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모두 22곳을 국립공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국의 국립공원은 산악 공원 17곳, 변산반도를 포함한 해상공원 4곳 그리고 문화유산이 중심이 된 경주이다.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산악공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치악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한다. 지질학적 특성상 금강산이나 주왕산처럼 웅장한 기암절벽과 이름난 계곡과 폭포는 찾아 볼 수 없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 중 방문객이 가장 적은 공원이다. 

다른 국립공원에 비하여 눈에 보이는 경관은 빼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옛 사람들은 치악산을 영험하게 여겼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와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동쪽의 명산 '동악(東岳)'으로 정하고 봄가을 두 차례 나라에서 주관하는 제례를 지내왔다. 치악산의 이름은 은혜 갚은 꿩에서 유래하는데, 우리나라 명산 중 생명 존중의 가치를 담고 있는 산 이름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필자는 치악산의 산 이름은 원주인의 심성을 담은 것으로 보고 2005년 '보은의 상징, 원주인의 마음 꿩'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개최하여 방문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치악산에는 고대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골마다 고대에 창건된 사원이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사찰 7개소가 지금까지 법등(法燈)을 이어오고 있다. 사원뿐만 아니라 신라 때에는 북방의 요충지 원주에 북원경을 설치하고 치악산에 성을 쌓았다. 치악산에는 모두 3개의 산성이 남아 있는데 모두 신라와 고려 때 쌓은 산성이다. 고대국가에서 치악산 자체가 천혜의  요새이자 성이었다. 북원경과 강원감영의 치소인 고대도시 원주에 읍성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치악산은 치유의 산이기도 하다. 조선의 두 번째 왕 정종 임금의 딸 희희공주가 불치병에 걸렸을 때 치악산 국향사에서 요양하면서 기도한 결과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1985년 무렵에는 60대 이상이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당대의 유명 희극인 서영춘 씨도 국향사 동악단 앞에서 머물며 요양하기도 했다. 동악단과 국향사 대웅전의 탱화들은 서영춘 씨의 시주로 조성된 것들이 남아 있었다.     
우리 정부에서 관광자원인 자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정부부처는 두 곳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환경부와 문화부 산하의 문화재청이다. 문화재청에서는 지속적인 보존과 관리가 필요한 동·식물과 동굴을 천연기념물로, 경관이 뛰어난 곳을 명승으로 지정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현재 원주에는 모두 3곳의 노거수(老巨樹)와 수림지(樹林地) 1곳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명승은 없다. 필자는 2014년 치악산에서 경관이 가장 빼어난 구룡 계곡을 명승으로 지정 신청하였으나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부결되었다. 부결 사유 중 하나는 구룡사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매표소를 사찰입구로 이전하라는 것이었는데 사찰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올해부터 문화재 관람료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다시 한 번 구룡 계곡의 명승 지정을 검토해 볼만하다. 명칭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명승은 국가에서 공인하고 관리하는 곳으로 국민들에게는 가 볼만한 관광자원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영월군의 경우 어라연, 청령포, 한반도 지형, 선돌, 4곳의 명승을 보유하고 있다. 관광도시 원주가 되려면 명승 한곳은 보유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