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파트 건설로 사라지기 전 원주 남산과 추월대(현석 이호신 그림, 2017년)

도시 역사의 산물인 문화유산과 빼어난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이 녹아있는 생활공간도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훌륭한 관광자원이 된다. 성당이나 사원 같은 종교 건축과 궁이나 관청, 성곽 같은 공공 건축은 국가에서 주도하여 많은 비용과 정성을 다해 지은 것이니 보는 사람에게 위용과 아름다움을 자랑할 만하다. 더구나 시대의 사조를 담고 있어 건축사와 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칭송하는 규범이 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전쟁이나 자연 재난을 겪은 후 지어진 주거공간은 특정시기의 고난이 담겨 있다. 비록 이들 건축에서 시대적인 사조를 담은 예술성을 찾을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도시의 일부로 기능해온 마을은 정감과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오지 마을이나 전쟁 직후에 형성된 피난민들의 집단 거주지가 관광자원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피난민 마을이 남아 있는 도시는 부산이다. 한국전쟁 시기 부산은 전국에서 많은 피난민들이 모여들었고 난민들이 가파른 산비탈에 살면서 피난민촌이 형성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여기저기에 콘크리트 건물이 세워지고 도시가 현대화 되었지만 피난민 마을은 오랫동안 전쟁직후 궁핍한 모습을 간직한 채 빈민촌 으로 남아 있었다. 전국 각지의 산비탈 경사지에 남아있는 마을은 궁궐 건축보다 정감을 느낄 수 있어 달동네라는 정감어린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부산의 빈민촌 피난민 마을이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은 벽화 때문이다. 부산에서 처음 벽화마을이 탄생한 것은 2008년이다. 부산시와 남구청에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동 안동네 마을을 대상으로 선정하면서이다. 돌산 마을이라 불렸던 문현동 안동네 마을은 부산에서 대표적인 낙후 마을이었다. 마을 주민들과 미술을 전공한 학생들이 참여하면서 담장과 주택의 벽에 벽화를 그려 낙후 마을을 재생한 효과는 컸다. 이어서 감천 문화마을이 벽화마을로 재생되었는데 하늘에서 본 알록달록한 마을 모습은 마치 동화의 삽화를 보는 것처럼 정겹고 아름답다. 영화촬영지와 유명 관광지로 탈바꿈한 부산 벽화마을이 지금 은 주민들의 생활권이 침해 받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곳이 되었다.   

피난민들의 정착지는 아니지만 통영의 동피랑 마을도 벽화로 유명하다. 바닷가에 접한 해안도시에서는 산자락에 주거지가 형성된다. 가파른 산자락에 좁은 골목길로 연결된 집들은 건축적으로 눈여겨 볼만한 품격 있는 건축은 없다. 통영시와 건설업계는 동피랑 마을 재개발계획을 세우고 아파트를 건설하려 하였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도시재생 사업으로 전환하여 벽화마을을 조성하였다. 지금 통영 동피랑 마을은 전혁림 미술관, 박경리 기념관, 윤이상 공원, 통영 옻칠 미술관과 함께 통영의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한때 사람들은 궁핍이 베어있는 건물은 관광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가난의 흔적은 빨리 지워야할 대상이었다. 우리나라 민가의 전통미를 가장 잘 간직한 초가가 일순간에 사라진 이유이기도 하다. 88서울 올림픽이 결정되고 경기장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고 높은 빌딩을 지어 도시를 정비하는 등 국가의 행정력을 집중하여 순조롭게 준비를 할 때 외국에서 온 올림픽 관계자들은 놀랐다고 한다. 첫째는 개발도상국 한국이 올림픽 개최준비를 잘 한 것이고 둘째는 한국 어디를 둘러보아도 한국의 전통 마을을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원주에도 통영의 동피랑과 부산의 감천 마을 못지않은 달동네가 있었다. 바로 감영 인근에 있는 원주 남산마을이다. 원주 남산은 조선시대에는 인적이 드믄 도심 속 작은 동산이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강원관찰사로 부임한 관리들이 달을 보던 곳이다. 객지에서 공무를 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한잔 술에 시흥에 취해 시를 읊던 곳이다. 원주 남산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면 치악산과 동천(東川, 원주천), 감영과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달맞이하기 좋은 남산에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끝난 후이다.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던 원주는 폐허가 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원주에 정착하면서 남산은 집들이 들어서 피난민촌이 된다. 남산 정상에는 기도원이 세워지고 남산 언저리에는 유명한 요정이 운영되기도 한다. 조선시대 관찰사가 달맞이 하던 남산은 당시 원주에서 최고위직 공직자인 제1야전군 사령관이 찾는 번화가였다. 

2020년 아카데미극장과 가톨릭센터 등을 중심으로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근대역사문화공간재생활성화 사업에 공모신청을 하고 심사위원들이 현지를 방문했을 때였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필자에게 남산지역을 선정하면 더 유리했을 것 같았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심사위원의 조언은 남산지역 재개발 사업이 확정된지 오래고 문화재현상변경 허가까지 마치상태라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쉬운 것은 원주 남산은 지금 남쪽 지방 관광 일번지가 된 통영의 동피랑과 부산의 감천마을 못지않은 특별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원주 사람들의 달맞이 장소, 추월대와 원동성당이 남산에 있으니 감영과 중앙로 근대거리와 연계하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원주에 도시의 고향 남산은 없다. 원주 사람들은 실향민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