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예가 후삼국 통일을 위해 처음 출정했던 신림면 절골 석남사지.

나라 안팎을 떠나 세계 여러 나라의 주요 관광도시는 역사문화자원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국가와 지방 정부에서는 도시의 역사문화자원을 보존하기 위하여 애쓴다. 관광은 기업 유치 못지않은 경제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역사문화 자원을 활용하여 관광도시가 된 도시의 시민들은 단체를 조직하고 정치인들은 법을 제정하여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존하여 관광 자원화하는 일에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고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문화재청에서는 전국에 있는 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정비하고 예산을 지원하기 위하여 2023년 역사문화권 정비등에 관한 특별법(약칭 역사문화권정비법)을 개정 시행하였다. 

법 제1조 제정 목적을 옮기면 '이 법은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문화권과 그 문화권별 문화유산을 연구ㆍ조사하고 발굴ㆍ복원하여 그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비하여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이다. 기존 문화재보호법이 있는데 별도의 법령을 마련한 이유는 문화유산으로 지역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풀면 문화유산을 권역별로 구분하여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다소 정치적인 의도를 포함한 법이라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제2조 정의에서 밝힌 역사문화 권역이다. "역사문화권"이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형ㆍ무형 유산의 생산 및 축적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ㆍ발전시켜 온 권역으로 현재 문헌기록과 유적ㆍ유물을 통해 밝혀진 다음 각 목의 권역을 말한다.'고 정의하면서 역사문화권을 아래와 같이 9개 권역으로 정하고 있다. 

가. 고구려역사문화권: 서울, 경기, 충북지역 등을 중심으로 고구려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

나. 백제역사문화권: 서울, 경기, 충청,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백제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

다. 신라역사문화권: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신라와 통일 신라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

라. 가야역사문화권: 경남, 경북, 부산, 전남,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가야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

마. 마한역사문화권: 충청, 광주, 전남, 전북지역을 중심으로 마한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

바. 탐라역사문화권: 제주지역을 중심으로 탐라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

사. 중원역사문화권: 충북, 강원, 경북,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고구려ㆍ백제ㆍ신라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

아. 예맥역사문화권: 강원지역을 중심으로 예맥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

자. 후백제역사문화권: 충북, 충남, 전북, 광주, 전남,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후백제 시대의 유적ㆍ유물이 분포되어 있는 지역

역사문화권정비법에 의하면 강원도는 '중원문화권'과 '예맥문화권'에 속한다. 강원도이지만 마한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원주는 중원문화권에 속한다.

법을 개정하면 지역에서 반발이 일어나기도 했다. 역사문화권접비법에 포함되지 않으면 정부의 예산지원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지역에서 반발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21년 개정안에 충주를 중심으로 한 '중원문화권'과 강원도 영서북부와 영동을 포함한 '예맥역사문화권'이 추가로 포함되었고, 2022년에는 전주를 중심으로 한 '후백제문화권'이 추가되었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이 개정안을 제출하여 추가된 것이다.

문제는 법이 정한 문화권에 고려가 없다는 것이다. '후백제문화권'은 있는데 고려의 시작인 '태봉문화권'은 물론 '고려' 자체가 법 전체에 언급되지 않았다. 고려는 대한민국의 역사가 아닌가! 후백제 역사문화권을 개정안에 포함시킨 것은 전주 출신 김성주 의원의 역할이 컸다. 김성주 의원이 2022년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것은 전주시민들의 압력 때문이었다. 전주에는 후백제 선양회, 후백제학회, 후백제 시민연대 같은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이 후백제를 살린 것이다. 

원주는 우리나라 중세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치악산 석남사지에서 출병하여 철원에서 태봉을 세웠으니 고려의 시작이다. 1392년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이 원주에서 유배되면서 고려가 역사의 무대에서 막을 내렸으니 중세의 끝이다. 뿐만아니라 찬란하게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고려의 핵심 유적, 거돈사지와 법천사지, 흥법사지는 모두 원주에 있다. 

원주가 문화유산으로 관광도시가 되려면 역사문화권정비법에 고려문화권이 포함되어야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