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때 지은 부실한 건물을 철골로 보강해서 재생한 군산 메이드 마켓.

관광도시,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 지향하는 정책 목표이다.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고 선거에 나선 많은 시장, 군수 후보들이 저마다 관광도시 조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굴뚝 없는 공장'이라 불리는 관광산업은 말 그대로 자연 경관을 해치거나 공해를 유발하지 않고 지역경제를 이끌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이름난 도시들의 지역경제의 기반은 관광산업이고 경제적인 풍요뿐만 아니라 도시 이미지도 좋기 때문에 지자체장들은 관광도시를 선호한다.    

지난주 원주시 공직자들이 '관광도시 원주'를 실현하기 위하여 출장을 다녀왔다는 언론보도를 보았다. 공직사회에서 흔히 있는 '선진지 견학'이다. 보도를 보니 출장지 중 한 곳이 경기도 광명시다. 광명시는 관광자원이 흔치 않은 도시이다. 서울에 인접한 위성도시로 역사도, 자연경관도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관광도시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관광의 불모지로 알려져 있는 원주는 광명보다 훨씬 더 훌륭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광명시가 관광도시로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다름 아닌 광명동굴 때문이다. 광명동굴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금·은·동 같은 희귀 자원을 채굴하던 광산이다. 1912년 채굴을 시작해서 1972년까지 운영했으니 과거에는 '황금알'을 낳는 곳이었다. 1972년 폐광이후 버려진 광산이 다시 부활한 것은 2018년이다. 미디어파사드와 첨단 미디어를 접목한 VR체험 같은 현대적인 기술과, 공포체험관, 타임캡슐, 공룡체험전, 인터렉티브 체험전 등 새롭고 다양한 콘텐츠를 도입하여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광광객이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과거 황금을 대신하여 관광으로 '황금알'을 낳는 곳이 된 광명 관광의 핵심이다.

천혜의 자연경관이나 역사의 산물인 문화재가 부재한 도시가 관광도시로 이름을 얻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광명시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정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고 실제 많은 지자체에서 광명시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는다. 우리나라에서 금광이 광명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국의 도처에 금광, 탄광을 비롯한 온갖 종류의 광산이 존재한다. 그러니 버려진 폐광으로 이름난 관광도시가 된 광명시는 엘도라도를 꿈꾸는 자치단체에서 선진지견학 대상으로 손꼽힐 만 하다.

지난주 2박 3일 일정으로 군산에 다녀왔다. 지인에게 3일 일정으로 군산을 다녀왔다고 하니 크지도 유명하지도 않은 도시를 3일이나 머물다 왔냐며 의아해 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군산 여행 3일은 넉넉한 일정이 아니었다. 공직에 있을 때 두 번 다녀왔으니 군산 여행이 초행은 아니다.  

군산 여행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고군산열도의 아름다운 풍광 보다는 일제 강점기 때 지은 낡은 건물이었다. 군산의 근대거리는 골목마다 사람으로 넘쳐났다. 조금 알려진 음식점은 1시간을 기다려야하고 빵집 '이성당'은 손님들이 50m가 넘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가게에 들어갈 수 있다. 무엇이 이처럼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일까! 국내 최장, 최고의 출렁다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군산을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근대기에 지은 낡은 건축물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 건축물인 옛 군산 세관 본관과 신흥동 일본식 가옥 같은 멋진 근대 건축물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름 없고 볼품없는 낡은 건물들이다. 금강과 만경강이 서해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위치하고 있어 두 강이 실어 나른 충적대지는 너른 평야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곡창지대이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말할 것도 없이 수탈이 심했던 도시이다. 그 수탈의 흔적이 지금 군산 경제를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 된 것이다.

군산세관 압수물 창고로 쓰였던 건물을 재생한 카페 '먹방이와 친구들'은 특히 인상 깊었다. 빵과 음료, 자체 제작한 기념품을 판매하며 한쪽 벽면을 서가로 꾸민 인문학 카페인데, 2018년 군산문화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있다. 또한 곳은 군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공예품 작가의 공예품을 판매하는 '군산 메이드 마켓'이다. 2018년 군산시에서 수제연필, 자수, 도자기, 풍선아트, 캘리그라피 등 다양한 수공예품을 판매하고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역시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고 있다. 말 그대로 'Made in GUNSAN'이다.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지은 볼품없는 일본식 건물인데 겉은 멀쩡해 보였지만 내부의 골격은 모두 H빔이다. 구조가 부실한 외형을 그대로 살리고 철골로 보강한 것이다.

빵집 이성당, 먹방이와 친구들, 군산 메이드 마켓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모두 청년들이다. 그곳에서 만난 군산 청년들은 모두 밝은 표정이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청년들의 일터가 된 것이다. 이성당 빵집은 나이든 군산 농부들이 생산한 보리와 팥으로 젊은이들이 빵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터가 되었으니 도시 내에서 자본이 순환하는 이상적인 경제 구조이다. 군산에 머무는 동안 원주 생각이 떠오르면 우울했다. 군산 경제의 원천인 낡은 건물을 원주에서는 허물려하고 있으니 말이다. 원주 아카데미 극장은 광명시의 동굴, 군산의 세관창고처럼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