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중소도시 반도체기업 유치 사례  드레스덴, 통 크게 보조금 지원하고 기술지원 집중 국제학교 설립 등 외국기업 근로자 정주 여건 마련 일 구마모토, 1960년부터 반도체산업 집중화 결실

▲ ①~② TSMC 반도체 8인치 웨이퍼와 공장 내부 모습 ③TSCM 공장 외부 전경 ④독일 작센주에 있는 드레스덴 시가지 ⑥드레스덴 프라운호퍼 연구소 ⑦드레스덴 World Trade Center (사진 제공: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독일 드레스덴시)

원강수 시장은 지난 14일 반도체 소재 기업 (주)지큐엘과의 투자협약식에서 "지큐엘의 공장 신설 투자는 원주가 반도체산업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 말했다. (주)지큐엘과 같은 반도체기업을 유치해 원주를 첨단산업도시로 만들겠다고 한 것. 우리 반도체기업이 글로벌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행·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해 원 시장이 취임하면서 '반도체산업'은 원주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부론국가산업단지 후보지 등에 반도체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한편, (주)지큐엘과 같은 반도체기업 유치에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 목표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것이다. 

원주와 비슷한 규모의 세계 중소도시도 반도체 대기업 유치에 성공을 거뒀다. 이는 원주시가 추진하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사업이 '쉽지는 않지만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증명해 준다. 독일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드레스덴시를 비롯해, TSMC를 유치한 일본 구마모토현이 대표적 사례다.

한 곳은 전쟁 폐허 속에서 산업을 육성했고 다른 곳은 농·수산업을 주력으로 삼던 지역이었다. 모두 원주보다 열악한 상황에서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해 결실을 거뒀다. 본지는 양 도시의 반도체기업 유치 사례를 살펴봤다.

▲ 독일 드레스덴시

유럽의 실리콘밸리 '드레스덴'
드레스덴은 독일과 체코, 폴란드 국경인 작센주의 남동쪽에 있는 중소도시다. 베를린에서 200㎞, 약 두 시간 거리에 있는데 인구는 48만 명 정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의 90%가 파괴돼 폐허나 다름없던 곳이다. 

1991년 독일 작센주(州) 정부는 대규모 조세특혜를 통해 첨단기업의 투자를 유인했다. 덕분에 뮌헨에 본사를 둔 지멘스는 소비에트 연방의 병영이었던 곳에 테크노파크(1994년)를 조성했다. 13억 유로(1조8천771억 원) 상당의 반도체공장을 설립했는데 이 과정에서 주(州) 정부로부터 4억 유로(5천776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AMD(미국 반도체기업)도 드레스덴에 'Fab 30'이라는 반도체공장(1995년)을 지었다. 2004년엔 공장을 추가로 건설해 총 24억 유로(3조4천655억 원)를 투자했다. 독일 연방정부와 작센주 정부는 지역개발 촉진 차원에서 4억8천만 유로(6천931억 원)를 지원했다. 이러한 주 정부와 연방정부의 통 큰 지원은 인피니온, 모토로라와 같은 대기업 유치에 힘이 됐다. 

▲ 독일 드레스덴시에 있는 프라운호퍼 연구소

통독 후, 드레스덴엔 기초연구기관인 막스프랑크연구소가 설립됐다. 응용연구 기반의 프라운호퍼와 라이프니츠연구소도 들어섰다. 이 연구소들은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할 정도로 높은 연구·개발 능력을 자랑했다. 지멘스, 인피니온, AMD 등의 첨단 반도체회사가 드레스덴 투자를 결정하는 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지금 드레스덴은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글로벌기업이 즐비하다. 독일의 실리콘밸리이자 유럽의 과학기술 산업도시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스프랑크를 비롯해 프라운호퍼, 라이프니츠 등의 연구소가 기술지원에 힘쓰는 동안 지방정부는 국제학교 등을 설립해 이전 기업 근로자의 정주 여건 개선에 노력했다. 지역 차원에서 반도체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좋은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었다. 

연방정부의 역할도 주요했다. 통독 후 구 동독지역의 재건을 위해 1991년부터 매년 850억 유로(122조7천억 원)씩 쏟아부은 것. 2004년까지 투자한 금액만 1조2천400억 유로(1천790조2천252억 원)에 달했다. 이들 재원은 낙후된 동독지역에 진출하는 기업을 위해 사용됐다. 이는 드레스덴이 IT·NT·BT 분야의 세계적인 과학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힘을 실어 주었다. 

▲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자료 사진: 반도체 웨이퍼)

반도체산업 신(新)거점 '구마모토'
구마모토현은 규슈 중앙에 있는 인구 170만 명의 현(우리의 '道')이다. 풍부한 수자원과 넓은 부지로 일찌감치 농·수산업이 발달했다. 이곳은 '첨단산업 클러스터'로도 유명하다. 1960년대부터 반도체 관련 기업이 집적되면서 1980년대는 '실리콘 아일랜드'로 불렸다. 한때 일본이 전 세계 D램 시장의 80%를 점유했던 것도 지역 반도체 클러스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일본의 반도체산업은 시장 트렌드를 읽지 못해 쇠락의 길을 걷고 만다. 1980년대 일본 기업이 생산한 D램은 주로 메인프레임(범용 대형 컴퓨터 시스템)용으로 사용됐다. 그런데 개인용 컴퓨터(PC) 시대가 도래하면서 일본 D램의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다. 여기에 플라자합의(Plaza Accord·1985년 미국이 강제로 달러화 가치를 하락시킨 조치) 등의 정치적 악재가 겹치며 시장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대신 삼성전자와 같은 신흥 주자들은 값싼 가격으로 PC용 D램을 대량 생산했다. 기술개발에도 속도를 내 끝내는 일본 반도체 시장 전체를 앞지르는 지경까지 이른다. 일본 반도체산업은 1980년대 이후 줄곧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런 일본이 지난 2021년,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업체를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TSMC가 일본에 반도체공장을 지을 때 비용의 절반을 대는 파격적 지원을 약속한 것. 이러한 공약은 글로벌 반도체기업 유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TSMC는 일본에 제2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도 갖고 있다.

▲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자료 사진: TSMC)

이 과정에서 구마모토현의 역할이 주요했다. 구마모토현은 1980년대에 이미 반도체 집적화를 위한 외부 전문가 자문회의인 '현인회의'를 가동했다. 현·시·정·촌·기업을 포함하는 '기업유치연락협의회' 등도 운영했다.

이러한 조직 체계에서 반도체기업 유치를 위한 유기적인 협력이 이뤄졌다. 인재양성을 위해서 현립기술단기대학교의 커리큘럼도 변경했다. 반도체기업이 원하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기업진출을 적극 독려했다. 

현재 구마모토현은 대규모 반도체 제조시설 건립이 한창이다. 시설투자비만 1조1천억 엔에 달하고 향후 10년간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4조 엔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역에는 이미 금융업, 부동산업 등이 활황을 이루고 있다. 원주가 그리는 반도체 산업도시의 이미지들이 구마모토에선 현실화하고 있다. 

강원연구원 김충재 연구위원은 "TSMC 유치는 지방정부의 기업 유치를 위한 대내외 인재 모으기, 기업유치연락협의회 운영, 개별기업 담당제 도입, 동경사무소 기업 유치 직원 배치 등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의 산물"이라며 "기업 유치뿐만 아니라 사후 기업지원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 점은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플라자합의(Plaza Accord):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프랑스, 독일, 일본, 미국, 영국의 재무장관들이 이룬 합의. 쌍둥이적자(재정·무역)에 시달리던 미국이 자국의 수출경쟁력을 높이고자 달러화 가치를 강제 하락시킨 사건. 이 조치로 달러당 엔화 가치가 200엔(1985년 말)에서 120엔(1988년)대까지 평가절상됐다. 일본 입장에서는 그만큼 수출경쟁력이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 

최다니엘 기자  nice4sh@naver.com